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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Mar 19. 2024

8. 죽지 말라고.

#주 주사 이야기8




"주 주사님, 저기 정문 앞에 차 대주시겠어요? 팀장님 기다려야 하니까... 오늘은 또 얼마나 걸리시려나 에혀..."

박 주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른 차 운행에 방해되지 않게 정문 구석 한편에 차를 멈춰 세운다. 박 주사님 눈치를 보자 하니 화장실에 간 팀장님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눈치라 나는 배차받은 관용차량 실내를 훑어본다. 차량 선팅이 되어있지 않은 유리라 운전할 때 눈이 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비게이션도 차량 기본 내장형에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아 아무래도 내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 주사님, 혹시 장례식장 이름은 알 수 있을까요? 미리 찾아놓으려구요."

나는 어두운 표정의 박 주사님께 용기 내어 물어본다. 


"아... 음, 팀장님 오시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잘 몰라서."

보조석에 앉아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박 주사님이 답한다. 아침부터 회의실에서 있었던 고 주사님과의 언쟁 때문인지, 아니면 동료 공무원의 안타까운 사실을 들어서인지 오늘은 유독 박 주사님의 표정이 좋지 않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는 내비게이션을 열었던 휴대폰 화면을 바꿔 초록창에 '공무원 자살' 다섯 글자를 입력해 본다. 


<죽음과 가까운 직업, 공무원>


내 눈에 제일 먼저 기획기사로 보이는 헤드라인이 들어온다. 


'죽음과 가까운 직업이라...'

공무원이 되기 전 사기업에서 10년을 근무하는 동안 '직업'이란 단어와 '죽음'이란 단어가 함께 붙어 쓰이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저 두 단어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일도 당연히 없었다. 


'직업이란 단어와 항상 같이 있던 단어는 죽음이 아니라, 해고였는데...'

나는 낯선 두 단어가 섞여있는 헤드라인을 터치해 본다.


<과도한 민원 업무-2018년 민원 건수는 600만 건, 5년 지난 2023년은 1,470만 건으로 2.5배 증가. 

하지만 공무원 수는 5년 동안 단 10% 증가, 그마저도 일선 공무원 수는 급감 및 스스로 그만두는 면직 급증>


기사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꽤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는데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민원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렇게 업무량이 급증하면 사기업에서는 직원 수를 늘리거나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줄이거나 두 가지 방향으로 조절해나갔다. 회사는 당연히 직원 수 늘리는 것에는 극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어서, 대부분 불필요한 사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리했었다. 당장 있는 사업 부서를 없앨 수는 없으니, 누가 정해놓은지 알 수 없는 '정리해고 대상자'에게 총대를 메게 한 후 일정 시간 잊히는 시차를 잠시 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인력과 사업을 통째로 정리해 버렸던 것 같다. 주변 동료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괜히 그것에 불만을 품으면 그 시차에 끌려들어 가 같이 정리될 수 있으므로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던 씁쓸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왜 자살하냐? 그만두면 되지.>

화면을 따라 기사를 주-욱 내려보던 내 눈에 첫 번째 댓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게... 업무량 많다고 죽긴 왜 죽지? 직장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일 텐데. 그렇게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할 용기면 그냥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딴일 찾으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들은 왜 그렇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건지 아직 공무원이 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덜컹-

나는 갑작스러운 문소리에 놀라 휴대폰에서 눈을 뗀다. 옆에 앉아있던 박 주사님도 놀랐는지 나와 비슷한 손놀림으로 휴대폰 액정을 까맣게 만들어버린다.


"출발하지. 하늘 장례식장."

왜인지 불편한 얼굴의 팀장님이 뒷좌석에 올라타며 내게 말한다. 나는 차량 내비게이션에 장례식장을 검색한다. 다행히 길 안내 화면이 바로 나온다.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된 게 분명해 보이지만 일단 안내가 시작된 길로 차량 엑셀을 밟고 출발한다. 



***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마이크와 카메라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옆면에 붙어있는 유명 방송국의 스티커가 그들의 신분이 기자일 것 같다는 내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공무원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렇게 관심이 있는 뉴스거리였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사기업 다닐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내가 공무원이 되서인지 남일 같지 않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사람의 죽음 앞에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그들의 소란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진다.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팀장님과 박 주사님 뒤를 따라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선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장례식에 오는 건 꽤나 생소한 일이지만, 그래도 꽤나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고인의 영정 앞에 가지런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옆에 있던 박 주사님은 장례식 경험이 많이 없는지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내 팀장님을 따라 절을 시작한다. 그렇게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으레 장례식에서 하던 대로 상주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그런 내 눈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품이 너무나 큰 까만 아이 정장을 입은 네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설마 하는 내 마음속 작은 의심의 울림을 그 작은 아이의 왼쪽 소매에 커다랗게 걸터 매어져 있는 까만색 두 줄이 깨부순다. 그 아이의 옆에는 아이의 엄마이자 고인의 아내일 내 또래 정도 돼 보이는 젊은 여성이 새까만 상복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앞에 선 팀장님이 아이 엄마에게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나는 그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여 마음을 전하고는 몸을 낮춰 짙은 잿빛의 두 줄을 무겁게 왼손에 걸치고 있는 작은 아이의 손을 한 번 꽉 잡아준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작은 아이만큼이나 더 작은 아이의 손을 꼭 잡을 채로 속으로 가만히 마음을 전해본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영정 속 저 고인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작은 의문이 그런 내 마음속으로 슬며시 들어온다. 


'그래도 자살은 아니지. 오히려 어떻게든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 그깟 민원, 그깟 공무원.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핏덩이 같은 아기와 젊기만 한 아내를 두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 진짜 이기적인 거야.'

내 마음속에 스며들어오던 고통이 고인에 대한 원망으로 뒤바뀐다. 그런 고통스러운 원망이 혹여나 작은 아기 손에 흘러갈까 나는 서둘러 손을 떼고 다시 일어서 자리를 옮긴다. 


"잠깐 앉았다가지. 아, 식사는 됐어요."

팀장님이 장례식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으며 말한다. 장례식 장 입구에서 들렸던 소란스러움과 달리 장례식 장 안쪽은 사람이 거의 없어 고요함만이 흘렀다. 팀장님도 그걸 느꼈는지 굳이 앉았다 가시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엔 시에서 청사에다 분향소까지 설치해 준다던데?"

"순직처리? 그게 가능해?"

"모르지 뭐. 또 여론보고 하네마네 하겠지? 그렇지 뭐..."


동료 공무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둘러앉아 속삭이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소리에 왜인지 내 마음이 부산스러워지는 것만 같아 나는 시선을 거둬 벽 한쪽 작은 창에 눈길을 던진다. 아침의 따뜻한 햇살이 작은 창을 부술 듯 뚫고 들어와 장례식장 한쪽을 비추고 있다. 그 눈부신 창가 반대쪽에는 여전히 작고 어린 상주가 모든 걸 다 잃은 듯 어둠 속에 무너져 내리는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죽음과 가까운 직업... 공무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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