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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Apr 09. 2024

9. 어..? 공무원은 직접 청소를 한다?

#주 주사 이야기9



장례식장에 다녀온 지 며칠이 흘렀다. 공무원으로 첫 출근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서 그런가 확실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자자 청소합시다!"

일상경비와 일반지출의 차이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호조 시스템 상에 적용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유심히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1 팀장님의 목소리가 고요하던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응? 청소?'

분명 귓가에 '청소' 두 글자가 들렸음에도 왜인지 현실감 없는 그 단어에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갸웃거린다.


쿵-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박 주사님이 언제 일어났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채 자신의 키보드를 들어 모니터 아래 수납장에 집어넣는 게 보인다. 그리고는 물티슈를 꺼내더니 자신의 책상을 슥슥 닦고는 쓰레기통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뭐지? 갑자기 사무실에서 무슨 청소지? 그것도 이 시간에?'

휴대폰 액정에 뜬 시간을 보니 17:32. 퇴근 30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불안해하는 내 시선과 달리 박 주사님과 마찬가지로 옆에 앉아있던 고 주사님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파란 걸레를 손에 들고 자신의 책상부터 시작해서 창틀을 닦기 시작한다. 창틀 옆 어정쩡하게 서계시던 3 팀장님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자리 뒤쪽 벽에 걸려있던 낡은 나무틀에 갇힌 태극기를 떼어내 유리를 닦기 시작하신다. 그렇게 우리 과의 사람들이 갑자기 창문을 열고, 빗자루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고, 먼지를 털고, 쓰레기통을 비우기 시작한다.


'어...? 공무원은 청소를 직접 하는 거야...?'

나는 이 낯선 광경에 어울리지 못한 채 한참을 내 자리에 서서 어찌할지 몰라한다.

사기업에서는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을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들이 계셨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자주 여사님들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사무실 직원들 자리마다 있는 쓰레기통을 비워주시고, 바닥을 쓸고 닦아 주시는 모습에 늘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아침에 편의점에서 당시에는 먹지도 않았던 커피를 사서 여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 내 소문을 들은 일부 회사 직원들은 사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시키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하냐며 수군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뭐 내 알바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있는 거고,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실천하며 살 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새벽같이 나오셔서 사무실 곳곳을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들에 익숙해있던 나였어서 그런가, 이렇게 사무실을 직접 쓸고 닦고 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이게 맞아...? 그냥 비용처리하고 사람 쓰는 게 업무에 집중하는데 낫지 않나?'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약 20년 전에 고등학교 교실을 청소했던 때가 떠오른 나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눈에 3팀의 아주 체구가 작은 주사님이 끙끙대며 자신의 체구와 별로 차이가 없는 커다란 공업용 청소기를 끌고 오는 걸 발견한다. 뭔가 어색한 광경이긴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내 몸은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날아간다.


"아, 주사님. 이걸로 바닥 청소하면 되는 거죠? 무거운데 제가 할게요. 이리 주세요."

군생활 2년에, 사기업 회사생활 10년 짬밥이다. 청소를 직접 하는 광경이 조금은 이해가 안 됐지만, 어느새 내 몸은 가장 고되 보이는 일에 다가서 있었다.


"아.. 이거 제 담당이라... 그냥 제가 해도 되는데... 어... 어..."

먼지를 빨아들이는 청소기를 빼앗다시피 뺏어든 내 손길에 당황한 주사님이 중얼거린다. 일주일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사기업에 있을 때는 옆 자리 동료가 힘들어하면 무슨 일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고, 못주면 물어보기라도 했는데, 이곳 공무원 조직은 그렇게 다가서면 다들 왜인지 당황한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담당 사업이 있고, 맡은 업무가 분업이 잘 돼있어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렇게 청소를 돕겠다는 말에도 어찌할지 몰라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료의 모습을 보게 되니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무거운 청소기를 이리저리 끌며 바닥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는데 그런 내 눈에 쓰레기통 앞에서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쉰 채 주저앉아있는 박 주사님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지...'

박 주사님의 어깨너머로 보니 쓰레기통 수납함 안에 먹다 남은 진득한 커피가 플라스틱 컵과 함께 와르르 쏟아져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박 주사님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말없이 컵들을 주워 비닐 속에 넣고 있다. 아마도 커피가 쏟아져 있어서 치우기 난감해서 한숨을 쉬는 건가 싶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보니, 사기업에서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들이 치워주시는 게 당연했기에 나 역시도 책상 위 혹은 탕비실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마시던 음료를 그대로 놓고 간 적이 여럿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쓰레기들은 다음날이면 말끔히 치워져 있었기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것이 일상이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걸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렇게 지내왔는데, 지금 박 주사님의 저 한숨을 보고 나니,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걸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옛 모습이 겹쳐 보여서였을까? 평소에 나와 달리 나는 박 주사님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모른 척 말없이 청소기를 끌고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시선을 피한다.


사무실을 직접 청소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있자니 왜 사기업에서의 옛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진 건지 모르겠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묵묵히 청소를 이어가는 내 눈에 창가에 우아하게 서서 난초에 물을 주고 계신 1 팀장님이 보인다. 아마도 1 팀장님의 청소 역할은 화분에 물 주기 인 듯 싶다. 그때서야 사무실에 있는 화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과장님의 자리 앞쪽 창가에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난초 십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이전 직장 사기업에서 근무하며 막내였던 시절 매주 한 번씩 나는 난초들에 물을 주었었다. 당시 회장님, 사장님, 이사님의 자리에 난초들이 몇 개 있었는데 나는 왜인지 난초를 가꾸는 게 좋았어서 꽤나 열심히 관심을 줬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저 과장님의 난초들보다 그 수는 적었지만, 나는 그중 난초 하나에 꽃을 피우게 한 적이 있다. 뭐, 사실 내가 한 거라곤 평소처럼 물 잘 주고, 아침마다 기분 좋게 말 걸어주고 그런 것 밖에 없었지만, 기특한 난초 중 하나가 단단했던 꽃망울을 탁 터뜨리더니, 여리여리한 꽃잎으로 내게 웃어주었다. 난초에 꽃이 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맨날 값비싼 도자기 속 하얀 돌무더기 사이로 초록색 줄기만 쭉쭉 뻗는 게 난인 줄 알았는데. 아니, 조금만 관리 안 해주면 그 초록색 줄기가 순식간에 노랗게 딱딱하게 썩어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꽃이 피니 신기했다. 그리고 그날 회장님은 날 불렀다. 난초에 꽃이 피면 회사에 좋은 일이 생긴다나. 그런 지금 들으면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며 많은 직원 앞에서 나를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지금이야 그렇지만 그때는 회사 오너에게 뭐라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난초 꽃이 핀 날 회사에 딱히 좋은 일은 없었다. 오히려 수주할 것이 확실시 여겨졌던 해외 바이어가 마음을 바꿔 경쟁사에 사업을 통째로 맡겼다는 불행한(?) 소식만 날아들었을 뿐.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우아하게 물을 주고 계신 1 팀장님 앞 난초들을 보고 나서인지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같은 나인데, 이렇게 청소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사님, 같이 하시죠. 여기 제가 잡을게요. 거기서 그냥 부으시면 될 것 같아요."

옛 생각에 미소를 띤 채 청소기를 돌리던 던 내 눈에 세단기 앞에 쭈그려 앉아 풀풀 날리는 갈린 종이 먼지에 파묻혀 끙끙대는 박 주사님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쓰레기통 앞에서 모른 척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박 주사님을 향해 평소의 나답게 몸을 날려 도움을 건넨다.


"어... 어..... 아..."

역시나 박 주사님은 다른 공무원 분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동료의 도움에 어색한 듯 어리둥절하시지만, 그 반응을 예상했어서인지 나는 능숙하게 종이를 가득 담긴 비닐을 꽁꽁 싸맨다. 복사 용지 갈기, 정수기 물 갈기, 그리고 이 세단기 갈린 종이 비우기까지, 이런 일은 사기업 다닐 적 막내일 때 하루가 멀다 하고 했던 거라 그런지 꽤나 능숙하게 처리해냈다. 그 막내를 거의 7년 넘게 했으니 몸이 기억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왜 사기업은 직원을 매년 채용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 년씩 막내 생활하는 게 당연했던. 결국 나중에는 막내를 떼는 걸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렀더랬다. 그런 거에 비하며, 매년 신규 공무원이 충원되는 이런 조직이 얼마나 소중한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나 내 도움이 불편했을까 싶어 비닐을 묶은 나는 서둘러 박 주사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고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옆 자리에 앉아있는 직장 동료와 상사인 팀장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이었는데 왜인지 공무원 조직에서는 사기업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추 청소가 끝나가는 듯 해 나는 공업용 청소기 선을 정리한다.


"이 청소기는 여기에 두면 되나요?"

나는 원래 이 청소기를 담당했다는 작은 체구의 동료 주사님께 말을 묻는다.


"아... 네... 고마워요..."

고맙다고 하는 주사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도 고맙다고 하는 공무원도 있구나 싶다. 다들 고마운 마음은 있어도 입 밖으로 내는 걸 왜인지 어려워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고맙다고 용기 내 말할 수 있는 동료가 그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좋아진다. 이상한 일이다. 당연했던 건데, 당연하지 않은 현실 속에 있는 내가 어색하다.


청소기를 한쪽으로 치우고 손을 닦으러 화장실로 가려는데 사무실 저 멀리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낑낑대고 있는 박 주사님이 보인다. 쓰레기가 들어있는 게 분명한 커다란 비닐 세 개에 파묻힌 박 주사님이 아마도 분리수거장으로 쓰레기를 옮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역시나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하고 혼자 씩씩대고 있다. 도와서 같이 하면 손쉽게, 금방 할 수 있는게 뻔한데 왜 공무원들은 자기 혼자 다 끌어안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라고 있는게 옆 동료들 아닌가?


"박 주사님!! 같이 가요!!"

나는 그런 박 주사님을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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