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맨날 제일 먼저 와있더라? 시간이 많은가 봐?”
폐급이 말한다.
“그러는 너는 오늘은 웬일로 빨리 왔대? 안 와도 되는데, 시간이 남아도나 보지?”
지랑이 날카롭게 응수한다.
“하하. 아니지아니지. 내가 얼마나 바쁜데. 오늘 엔터테이먼트 사장님이랑 계약도 하고 오신 몸이라 이 말씀.”
폐급이 오른쪽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붙여 경례하듯 눈썹에서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거만하게 지랑에게 말한다.
“아? 노래? 난 이해가 안 가더라. 니 노래 좋다는 애들. 별로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지랑이 말한다.
“아, 뭐, 넌 랩 좋아하지? 맨날 배치기? 반갑습니다? 마이동풍? 현관을 열면? 그런 노래 부르는 것 같던데. 요즘 힙합은 하나도 안 멋있던데. 발라드 좀 들어. 내 감미로운 목소리로 된 발라드 같은 거. 크크”
“어 그래, 아 얘넨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짜증 나네. 그냥 집에 가버릴까.”
지랑이 폐급의 말에 들으란 듯 응수한다. 그러면서도 무리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 무리에 분명 호랑이 올 것이고, 자신이 없는 자신의 무리에 호랑만 뒀다가는 저 폐급과 무슨 사달이 날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특히 요즘 유독 미니홈피에 감추는 기색 없이 낄낄대며 난리를 펴대고 있는 호랑과 저 폐급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야, 너 내 깔 할래? 그 무식하게 힘만 쎈 놈보다 미래 발전 가능성을 따져보면 내가 훨 낫지 않냐?”
폐급은 나름 머리를 굴렸다. 이 무리에서 놀면서 알게 된 점 하나는 지랑이 겉으로는 우왁스럽고 생각 없이 노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특히 자신의 미래의 발전에 대해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뭐?.. 뭔 소리냐 너?”
천하의 이지랑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호랑에게 뭔가 빠져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지랑이었기에 전혀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다른 방향의 말이 폐급에게서 나오자 믿을 수 없었다.
“어. 너 좋다고.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고. 난 내가 원하는 거 갖고 말거든. 나랑 사귀자. 그놈 버리고.”
폐급이 어디서 나온 지 모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랑에게 말한다. 여전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지랑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뭐야 그 표정은? 흐흐. 설마 몰랐어? 아! 아니 아니, 그건가? 이호랑? 니 동생이 걸리는 거야? 걱정 마. 몇 번 놀아보니 알겠더라. 생긴 것만 똑같지 너랑 완전 다르다는 걸.”
“이 미친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잘도 씨부리네. 너 내가 경고했지. 내 동생 건드리지 말라고. 넌 지금 두 가지 실수를 했어. 하나는 나 건드린 거. 다른 하나는 내 동생 건드린 거.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 역시는 역시네. 쓰레기 같은 놈. 야 말 걸지 마라. 악취 묻을 거 같으니까.”
지랑이 폐급을 노려보며 말한다.
“여여. 천하의 이지랑이 이 정도로 이렇게 화를 낸다고? 하하. 역시 사실인 거 같네. 동생 이호랑이 니 발작 버튼인 거. 근데 이거 어쩌냐? 너 지금 이러는 거. 완전 내 스타일인데? 내가 좀 변태 같긴 하지. 너무 매력적이잖아 이지랑? 역시 너. 내 여친이 되어야겠다 하하!”
폐급의 말에 지랑은 상종하지 않겠다는 듯 걸음을 옮긴다.
“야, 가냐? 대답이나 해주고 가. NO라고 안 했으니 YES? 오늘부터 넌 내 거다 이지랑! 하하!”
자리를 비우던 이지랑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챈다. 그 손길에 지랑의 상체가 휘청이며 넘어질 뻔한 걸 폐급이 지랑의 어깨를 잡아 세운다. 놀란 지랑이 황급히 폐급을 밀쳐내려 강하게 저항하지만 폐급은 꿈쩍도 안 한다.
“뭐야? 하하하. 이지랑. 이것밖에 안된다고? 에이 별거 아니네. 너도 이호랑처럼 금방 재미없어지는 거 아냐?”
폐급은 지랑에게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웃으며 말을 잇는다.
“뭐 하냐 니네.”
바로 그때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린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