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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꿈같은 꿈

by 빨양c




며칠이 흘렀고, 호랑은 꿈만 같았다.

그때 처음 봤던 축제에서 고상하게 노래를 부르던 그 모습 그대로 폐급은 멋지게만 보였다. 그런 멋진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자신의 말에 웃어주고, 신발끈이 풀렸다며 신발을 묶어주기도 하는 현실이, 정말 꿈만 같았다.

꿈도 이렇게 행복한 꿈을 꿔본 적도, 앞으로 다시는 꿀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환상적인 꿈이라는 생각이 매 순간 들었다. 그렇게 깊어지는 호랑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호랑의 러브장은 차곡차곡 한 장 한 장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몰랐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다채롭고, 풍성하게, 화려한 빛깔로 가득 채워진 러브장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러브장을 전해주진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호랑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러브장만 그에게 건네주면, 그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될 거라는 확신. 그같이 멋진 남자의 여자친구가, 그래 멋진 여자친구가 바로 이호랑, 자신이라는 확신. 자신의 눈엔 영 별로인 저 지랑의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근사한 저 남자가 자신의 머진 남자친구라는 확신. 매일이 행복했고, 매 순간이 꿈결 같았다.


예전 언젠가 웅웅 거리는 까만 모니터 속 화면에서 봤던 이지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가끔 떠올라 마음이 이따금씩 불안해지긴 했지만, 어느새 지워진 싸이월드 속 그 글. 그리고 이 무리에서 느낀 지랑과 지랑의 남자친구의 사귀는 관계. 그리고 지랑 남자친구의 확신에 찬 무리를 지배하는 힘 앞에 지랑을 향한 폐급의 마음은 사라졌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세상 다정한 폐급의 모습에, 특히 노래방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주는 폐급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그 불안은 이미 사라지고, 이 남자의 여자친구가 된 자신에 대한 확신만이 남았다.


“오늘도 같이 놀아서 즐거웠다. 곧 또 보자.ㅎㅎ”

호랑의 미니홈피에 폐급이 남긴 일촌 친구 남긴말이 그런 확신을 더 해주었다.

별거 아닌 그 한 줄이, 중2의 호랑의 세상에는 아주 단단하고 튼튼한 벽을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부모님에게서 보호받지 못하는 자신의 가냘픔을 보호해 주는 단단한 껍데기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확신을 통해, 멀지 않은 언젠가 노래방에서 노래가 끝나면 에코 가득한 노래방 마이크를 통해, 자신에게 고백할 폐급의 모습과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당장이라도 빵 터질듯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간신히 감춘 채 고개를 끄덕여 고백을 받아주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둘의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는 무리의 모습이 따라왔다. 그리고 당연히 그 무리에는 지랑이 있을 것이었다. 힘만 무식하게 센 지랑의 남자친구와는 비교도 안될 다정한 자신의 남자친구를 부러워하는 눈빛을 애써 감출 지랑의 모습.

“아 달콤하다 달콤해.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자! 완성이다 완성. 이제 고백만 받으면 이걸 건네줘야지. 얼마나 감동받을까?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대단해! 설마.. 오늘 고백받는 거 아냐? 어떡해!! 벌써 떨려!!”


호랑이 러브장 마지막 장에 커다란 분홍색 하트를 그려 넣고는 러브장을 품에 꼬옥 안으며 말한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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