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냐 니네.”
바로 그때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 크기에 걸맞지 않은 속도로 폐급의 목을 틀어쥐고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인다.
“니 새끼 뭐 하고 있냐. 경고했지. 선 넘지 말라고.”
지랑의 남자친구의 쏜살같은 주먹이 폐급의 배에 연달아 꽂힌다.
“커걱”
비명소리도 내뱉지 못하는 폐급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울컥하며 쏟아져 나온다.
“내가 사람 잘 안 패거든. 근데 패면, 팰 때까지 패. 그래서 사람 안 패는 거고.”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누구의 말소리도 나지 않는다. 휘두르는 주먹 소리와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두 수컷의 일방적인 파열을 보던 지랑은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반대편 먼 곳만 응시하고 있다. 그런 지랑의 마음에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 호랑이 아직 안 와서. 저 미친놈 말을 호랑이가 듣지 않았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얼른 정리해야겠...’
“비켜. 난 여자는 안 패지만, 내 여자를 건드린 놈을 지킬 때는 여자로 아니, 사람새끼로 안 보니까.”
지랑의 귀에 순간적으로 차분해진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무리 중 도착한 누군가가 남자친구를 말리는 것이라는 생각과 호랑이 오기 전에 서둘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려 다시 현장을 살핀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살짝 들긴 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모른 척,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을 아는 척, 현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불안은 차가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파고든다.
“이...호랑.................?”
지랑의 눈앞에 자신의 남자친구와 폐급 사이에 바들바들 떨며 서있는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호랑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유독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호랑의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떻게 저렇게 생긴 게 똑같을 수 있는지, 정말 이호랑이 작정하고 자신의 행세를 하면 자신조차도 깜빡 속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찰나의 순간 스친다.
“그만...때려....”
지극히 호랑이스러운 말이었다. 지랑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 자신을 위해서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꺼져. 이호랑. 두 번 말 안 해. 그 뒤에 놈은 선을 넘었어.”
지랑의 남자친구의 말이 떨어졌고, 그 말과 동시에 지랑이 호랑과 남자친구 사이를 막아선다.
“됐어 그만해. 내가 정리할게. 됐어 이쯤이면.”
지랑이 남자친구를 향해 먼저 말한다.
“...”
남자친구는 지랑의 말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뒤로 돌아선다.
“이호랑. 니가 낄 자리 아냐. 니가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 저 폐급.. 아니, 쟤가 헛소리 한 거니까..”
남자친구에게 말할 때와 다르게 지랑이 호랑의 눈치를 살피며 말 끝을 흐린다.
“너나 꺼져. 저 무식한 새끼 데리고. 사람 패는 게 자랑인 새끼랑 사귀는 년이 뭐? 낄자리?”
호랑이 지랑에게 소리친다. 호랑의 말을 들은 건지 뒤돌아서있던 지랑의 남자친구의 어깨가 움찔한다. 지랑은 호랑의 두 손을 낚아채고 현장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하하하. 눈물 나네. 쌍둥이는 다 이런가? 야! 이지랑. 너 근데 그거 아냐? 니 남친이 이호랑이랑 나 이 무리에 데려온 거? 꿩 대신 닭이나 가지라고 했지만, 역시나 좀 놀아보니 닭은 별로더라고. 훨훨 나는 꿩 잡는 게 재밌지. 하하하!!”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폐급이 피범벅이 된 이빨을 시뻘겋게 드러내며 소리쳐 웃으며 말한다.
발악하는 호랑을 끌고 가던 지랑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호랑은 갑작스럽게 바뀐 지랑의 분위기에 질러대던 소리를 멈춘다. 지랑의 남자친구가 지랑을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지랑은 그런 남자친구에게 강한 눈빛을 쏘아 보낸다. 그 눈빛을 맞은 남자친구가 몸을 날려 폐급을 향해 다시 한번 강하게 주먹을 내리꽂는다. 폐급의 고개가 축 늘어지고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다. 지랑이 한숨을 내뱉는다. 어찌할 줄 모르는 세상이 정적으로 가득 매워진다. 한숨을 다시 들이마신 지랑이 호랑의 두 손을 끄집어 잡고 걸음을 옮긴다.
“놔!! 놓으라고!!!!! 난 니가 제일 싫어. 너 같은 거랑 똑같은 게 제일 싫어!!!!!!!”
호랑의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
적막뿐이던 세상에 가늘게 뻗어나갔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