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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글 등긁.

by 빨양c




"아니아니, 아빠 등글등긁하고 마싸지하고 자장자장 해야지!"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너를 재우려 수면등을 켰는데, 그 불빛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먼저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는 나.

그런 나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잠자기 싫은 너는 오늘도 3단 코스를 내 귀에 속삭였어.


1. 등글등긁, 등 긁어주기.

2. 마싸지. 다시 주물주물 마싸지 해주기.

3. 자장자장. 심장에 자장자장 다독여주기. 자장노래는 때에 따라 다르고.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였을 거야.

내 기억에는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엄마 배에 대고 자장자장을 해주었단다.

노래는 부부천재-사랑은.

그래서인지 어느덧 4살이 된 너는 잘 때도 꼭 그 노래를 듣고 자지.

네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 노래는 꽤 어려운 단어의 가사가 많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

자장가로서 딱 좋은 노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너는 늘 그 노래를 원하고 있어.


등글등긁과 마사지는 네가 태어나고,

온 세상이 깜깜한 새벽, 수면등 하나에 의지해

왜 잠에서 깼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깬 채로 네 옆에 멍하니 앉아,

네가 잘 자는지 하염없이 보던 어느 날,

그러다 뒤척이는 널 볼 때면 아빠는 어김없이 등을 긁어주고, 다리를 마사지해주었단다.


이 아빠가 어렸을 적,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도 아빠인 내게 그랬다고 하더라고.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등을 긁어주면 스르르 잠이 늘 잘 왔어.

지금의 나라는 아빠와, 그때의 나의 아빠의 다른 점은

나의 아빠는 꼭 말했어.


"자, 이제 너도 아빠 등 긁어줘야지."

나는 참 자식답게도(?) 내 등을 긁어주는 건 좋은데, 내가 아빠 등을 긁는 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


"이제 됐어?" , "이제 됐지?", "언제까지 해! 에잉 나 안 해!!"

그리고 꼭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왔지.

아빠 등은 너무 넓었고, 아무리 긁고 긁어도 아빠의 등은 끝없이 느껴졌거든.


너의 등을 긁을 때면, 지금의 너처럼 어렸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단다.

그리고 신기해하지.


'아들 등 긁는 건 하나도 안 힘드네. 1-2시간은 너끈히 긁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왜 다른 걸까 너의 등을 긁어주며 생각해 보니,

그때의 어린이였던 나는 손이 작았을 거고, 아빠의 등은 넓어서 힘들었겠다-


지금 내 손은 너의 등만큼이나 크고, 너의 등은 내 손바닥 정도로 작으니,

내 손이 너의 등을 몇 번 쓱싹쓱싹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어릴 때 나의 아빠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했네. ㅎ_ㅎ


"자 이제 아빠차례. 아빠도 긁어줘."

나도 어김없이 너에게 이런 말을 남기지.

그럼 너는 나를 닮아서인지(?) 특유의 시크함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작은 손을 들어 내 등에 올리고는

샤륵샤륵, 간지럼인지 모를 손가락을 움직이다 스르르 잠이 들고.


너의 눈에도 내 등은 하염없이 넓어 보일까.


그때의 나는 마냥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고만 했던 등글등긁이,

그때의 아빠에게는 큰 행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나도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도.

감사한 일이지.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그때의 아빠가 나를 긁어줬던 그 시원함과 비교할 바는 못되겠지만,

그때만큼이나 큰 행복이 너의 작은 손에서 내 등에 전해진단다.

덕분에 오늘 밤도 나는 행복하게 잠이 들어.


오늘도 사랑한다, 아가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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