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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나쁜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by 빨양c


사실, 게을렀던 건 아니야.

사실, 한글자도 쓸 자신이 없었던 건 맞지만.

사실, 그렇다고 하루도 글을 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회사일도 잘해내고 싶고,

집안일도 잘해내고 싶고,

사실 무엇보다, 너에게 좋은 아빠로 남고만 싶지.


그렇게 매일,

내일은 너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소리치지 말아야지.

자상하게 알려줘야지. 인내심을 갖고 웃으며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줘야지.

매일 밤 너를 재우고 수면등에 살짝 반사된 너의 얼굴을 보며 다짐하고,

사실 그렇게 또 다짐하고. 그렇게 말야.


그렇게 어렵사리 잠이 들고, 일어난 아침.

그때의 다짐을 아직 분명히 기억하건만,

나는 또 너에게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닐 일에, 화가 나고, 소리가 커지고.

그렇게 울상이 된 너와, 더 울적해져버린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회사 사무실 의자에 앉아 9시 땡 업무 시간이 시작되지만,


내 마음은 내게 한마디 투욱.

"오늘도 너는 나쁜 아빠였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어른이라는 너는 또 그랬네.

어젯밤의, 아니 매일 밤의 다짐이었던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던 그 바램들이,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에, 모두 사라져버렸네. 니 손으로 다 망쳤네.

넌 늘 그 모양이지. 넌 늘 나쁜 아빠가 되네. 넌 그것밖에 안되네."


사실, 한마디가 아니네.

공허해진 사무실 모니터를 멀뚱히 바라보지만,

마음에는 죄책감과 자책감과, 그래서 공허한 쓸쓸함이.


'후.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매일 다짐하고, 매일 나쁜아빠가 되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나는 자꾸만 나쁜 아빠가 되는 것 같을까.'


오늘도 죄책감과 자책감의 그 사이 언저리에서

길을 잃고 나쁜 눈만 깜빡이고마는 나는,


이런 나쁜 아빠에게도,

늘 빛보다 밝은 웃음을 지어주는 너에게,

내일은, 내일 하루 만큼이라도 제발 좋은 아빠로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오늘 밤도 다짐하고, 또 다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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