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하얀 방, 초록색 돈, 새까만 필라멘트

by 빨양c




“엄마.. 집에 언제 가?”


집에 가자는 그 말은 사실,

예전 같이 저녁시간을 보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라는 걸,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호랑은 점점 집에 언제 가냐는 물음을 던지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는 주방일에 바쁘니 그 하얀 방으로 가있으라 했고, 아빠는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면서, 손님들 테이블에 앉아 초록 소주를 한잔 두 잔 들이켜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옆에서 뭐가 좋다고 떠들어대는 지랑은 더 꼴 보기 싫었다.

그렇게 방에 갇히는 날이 많아지자, 호랑은 어느 날부턴가 숨이 턱 막혀왔다. 초록 미나리향과 하얀 공기가 섞인 일식 비린내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살금살금 식당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호랑의 귀엔 분명 딸랑 소리가 났는데, 엄마도, 아빠도, 지랑도 문 밖에 서있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호랑은 그렇게 잠시 바람을 쐴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이미 캄캄해진 밤, 밖으로 나오니 가게 안 비린내를 씻겨주는 바람이 느껴졌다.


“후아-”

바람을 크게 들이켜본다. 시원한 공기가 몸 안에 들어와 비린내를 밀어내고, 그 덕분인지 몸속 빈자리 구석구석에 껴있던 구역질이 나왔다.


웩-

저녁에 하얀 방이 쥐처럼 숨어 대충 먹은 컵라면 가닥 몇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배가 쓰려왔다. 쓰린 배를 움켜쥐고 아빠와 엄마를 자신에게 빼앗아 집어삼킨 식당 창문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봤다.

그곳은 밝았지만, 호랑은 어두웠다.

왜 자신은 지랑과 달리 저 밝은 세상에, 아빠와 엄마 같이 저 밝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원망스러웠다.

한숨을 몇 번이나 내셨을까.

시간이 꽤 흘렀지만 호랑은 그곳에 다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호랑은 한참을 바닥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해댔고, 호랑의 앞에는 컵라면 몇 가닥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호랑은 벽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다.


“이호랑!!!”

엄마의 목소리였다. 언제 꺼졌는지 가게 간판은 꺼져있었고, 작은 불만 하나 켜져 있었다.


“너 미쳤어?? 가게 방 안에 있으랬지? 누가 이런데 나와 자고 있으랬어?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 “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호랑을 두드려 깨웠다.


“나.. 나도.. 여기 있기 싫어.. 근데.. 저 안은 더 싫...”

호랑이 억울하다는 듯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소리를 쥐어짰다. 지랑이라면 똑 부러지게 말했을 것 같단 생각이 스쳤다.


촤라락-

그때 호랑의 얼굴에 밤공기보다 더 차가운 감촉의 초록물결이 하나 와닿는다. 하나가 순식간에 둘, 셋, 넷, 다섯 셀 수 없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점점 얼굴에 세차게 날아와 부딪힌다. 물결인지 알았는데 파도의 칼날 같다.

따갑고, 아프고, 그러다가 서러운 촉감.


돈이었다.

초록색 돈.

엄마가 가방에서 초록색 지폐를 꺼내 호랑의 얼굴에 내던지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돈!!! 이 돈 벌기도 힘드니까 그만 좀 찡찡대. 어린애야? 돈을 벌어야 니들 먹여 살릴 거 아냐? 엄마라고 이 늦게까지 이 짓거리 하고 싶은지 알아? 다 니들이랑 같이 먹고살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거 아냐? 어? 넌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듣는 거야 진짜! 지겹다 지겨워 정말!”


날카로운 초록 파도가 계속 날아온다. 호랑의 눈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세차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호랑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어깨만 들썩인다. 고개를 들고 엄마를 노려본다.


“울어? 야! 내가 울고 싶어. 나도 울고 싶어!!! 지긋지긋해 진짜!!!”

엄마가 마지막으로 검정 가방에 손을 넣더니 얼마 안 남은 나머지 초록 지폐를 호랑의 얼굴에 내던진다. 더 이상 던질게 없어져서인지 엄마가 구부리고 앉았던 다리를 펴 일어나 뒤돌더니 훌쩍이며 울기 시작한다.

호랑도 울고, 엄마도 운다.

한참 소리 없는 울음이 둘 사이에 울린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호랑이 엄마의 오른쪽 다리를 작은 팔로 감싸며 말한다. 엄마의 몸에 떨림이 다리를 안은 호랑의 몸에 전해진다.


“미안해 엄마.. 이제 집에 가자고 안 할게.. 조용히 있을게.. 울지도 않을게.. 내가 미안해 엄마.. 울지 마... 응? 나 좀 봐.. 엄마.. 응?”


호랑이 울음을 꾹꾹 눌러 참으려 엄마의 다리를 꽉 끌어안는다. 엄마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던 호랑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팔을 엄마에게서 떼어내더니 바닥에 떨어지고 만 검은 깃털 같던 초록 돈을 작은 손으로 주섬주섬 집어 모으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얼굴에 닿을 때는 너무도 따가운 가시 같기만 했던 그 돈이 호랑의 손에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들어 올려진다. 바닥에 초록빛이 호랑의 손에 들려 가슴 앞에 가득 채워지자, 호랑이 어기적어기적 걸음으로 엄마의 앞에 선다.


“엄마.. 여기..”

자신의 품에 가득 담긴 돈을 앞으로 내밀며 엄마를 부른다.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애써 미소를 억지로 쥐어짜본다. 그 일그러진 미소 덕분인지, 아니면 모아 온 초록돈 때문인지, 불쌍한 호랑의 목소리가 드디어 닿은 건지, 엄마가 그제야 다시 다리를 굽혀 어린 호랑을 끌어안아준다.

드디어 엄마가 자신을 안아줬다는 안도감에 호랑은 다리 힘이 풀리고 주저앉는다.


“아빠!!! 호랑이 여기있어!!!! 엄마랑!!!!”

긴장이 풀려서인지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지랑의 목소리가 들린다.


“호랑아!!!!!!!!!”

아빠의 목소리, 그리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아빠의 구둣발소리가 들린다.


‘아빠답네...’

순식간에 쌔까맣게 변해버리는 호랑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작은 목소리가 한번 속삭이고 나자, 치지직-필라멘트가 끊기는 전구처럼 불이 꺼져 새까매져버렸다. 그렇게 호랑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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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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