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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Q Feb 07. 2019

<시골에서의 기록> 첫 번째

엔진톱을 쓰다.

<시골에서의 기록> 첫 번째.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참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다. 가장 흥미롭고 힘들었던 것은 농사였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이어졌던 노동이었다. 농사일에 필요한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일손을 돕는 든든한 동료는 역시 기계였다. 장정이 여럿 달려들어도 쉽사리 이뤄내지 못할 일을 기계라면 금방 해치우고도 남았다. 트랙터가 억 단위의 물건이었으니 그만한 값어치는 한다고 할까.


어제는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던 엔진톱(흔히 전기톱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엔진톱이 맞다.)을 꺼냈다. 집 앞을 가로막던 죽은 나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손으로 톱질을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무 하나를 자르고는 나자빠졌다. 문명인으로서 기계를 사용하기로 했다. 엔진톱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두세 해 전이었으니 꽤나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다. 우선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던 엔진톱을 청소했다. 톱날이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윤활유가 사용되는데 그 때문에 온통 기름에 절은 톱밥이 끼어있었다. 일부를 분해하여 칫솔로 털어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엔진톱은 '존스레드Jonsered'사의 제품으로 스웨덴제였다. 영어로 쓰인 매뉴얼도 꼼꼼하게 읽어가며 다시 사용방법을 익혔다. 쓰지 않고 몇 달만 지나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뉴얼에는 엔진톱의 사용법, 점검방법은 물론이고 나무를 자르는 방법과 안전 수칙이 매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식물성 윤활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꼼꼼하게 청소를 끝낸 뒤 잠을 청했다.

떡국으로 점심을 먹고 엔진톱을 들고 나섰다. 예초기나 엔진톱처럼 소형기기에서 사용되는 엔진은 '2행정기관'이라고 부르는데, 이 엔진은 휘발유에 엔진오일을 소량 혼합하여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로 인해 좋지 않은 배기가스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톱날 보호를 위해 윤활유도 보충하고 예초기에 쓰던 휘발유도 채웠다. 엔진톱을 사용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종종 영화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굉음을 지르며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기계였기 때문에 퍽 긴장이 된다. 매뉴얼을 다시 읽은 뒤 지시사항에 맞추어 자세를 잡았다. 우선 평평한 곳에 엔진톱을 내려놓고 왼손으로는 몸통에 달린 손잡이를 잡는다. 반드시 체인 브레이크는 채워놓는다. 혹시나 시동이 걸리며 톱날이 회전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다. 오른발로는 핸들을 밟아 바닥에 고정시킨다. 사용하지 않아 차가운 엔진에서는 초크를 개방한 다음 연료를 뽑아 올리는 펌프를 5~6차례 꾹꾹 눌러준다. 그리고 시동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아당기면서 저항감이 느껴지면 다시 집어넣었다가 힘차게 당겨준다.


마치 봉인에서 풀려난 괴물이 포효하듯 엔진톱은 찢어질듯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고장이 났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시동은 잘 걸렸다. 문제라면 예전에 사용하던 연료가 남아있었는지 갑자기 희뿌연 연기가 폴폴 올라왔다는 점이다. 덜컥 겁이나 시동을 껐다. 여전히 엔진 하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혹시 불이 나거나 터지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고민스러워진다. 봉인에서 깨어난 괴물이 다시 잠잠해지고 연기가 나지 않으니 시동을 걸어본다. 어라. 이번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몇 차례 다시 시도를 했지만 반응이 없다. 또 고민이 커진다. 다시 매뉴얼을 찬찬히 읽어본다. 시동을 한 번 걸었던 '따뜻한 엔진 warm engine' 상태에서는 초크를 개방하지 않는단다. 지시대로 시도하니 다시 괴물이 눈을 떴다. 굉음을 내는 녀석을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원래 이렇게 소리가 지랄 같은 녀석이었던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체인 브레이크를 해제한 다음 몇 차례 레버를 당겨주면 엔진 출력이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온다. 굉음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제 나무를 자르는 일만이 남았다. 우선적으로 집 앞 아름드리 밤나무 옆으로 지저분하게 자라난 작은 은행나무 두 그루를 목표로 삼았다. 핸들을 단단히 부여잡고 대망의 첫 커팅을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굉음에 비해서 영 나무가 잘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두꺼운 통나무도 숭숭 잘라내던 녀석이었는데 힘을 주어 나무에 가져다 대어도 신통찮다. 작전상 후퇴. 고민이 다시 자란다. 문제는 톱날 같았다. 낡은 톱날이 상당히 마모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예전에 윤활유를 제대로 보충하지 않은 채로 마구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어젯밤 청소를 하며 톱날이 마모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절삭 능력이 떨어졌을 줄은 몰랐다. 새 톱날을 가져와 교체하기 시작했다. 톱날을 교체하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새 톱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를 잘라낸다. 은행나무 두 그루는 금방 나동그라졌다. 후후. 나의 승리다.


집 바로 옆의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큼직한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들 때문에 빛이 잘 들지 않아 나무들이 길고 곧게 자란 곳이었다. 큰 나무들 사이로 나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나무의 기울기와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고 나무가 쓰러질 방향을 정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무가 쓰러지지 않거나, 다른 나무에 걸려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경우가 자주 있단다. 쓰러질 방향을 정했다면 그 방향으로 나무 밑동에 '수구'를 만든다. 수구는 삼각형으로 나무 밑부분을 잘라서 해당 방향으로 잘 쓰러지도록 함이다. 수구를 만들었다면 그 반대 방향에서 '추구'를 한다. 수구 한 곳보다 약 1센티 정도 위쪽을 잘라내면 나무가 수구 방향으로 쓰러진다. 이 과정에서 나무가 엉뚱한 방향으로 쓰러지거나 쓰러지면서 튀어 오를 수 있으니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하면 3m 이상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지름이 크지 않은 나무들이어서 어렵지 않게 원하는 방향으로 다 쓰러뜨릴 수 있었다. 휴.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집 앞에는 지름 3~40센티, 높이 3~4미터의 향나무 한 그루가 죽어있었는데 그게 늘 풍경을 가리니 못마땅했다. 엔진톱의 봉인을 해제한 이유도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름이 두꺼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주변에는 지긋지긋한 들장미와 바윗돌이 곁 하고 있어서 엔진톱을 들고 움직일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그냥 두자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지만 찜찜함이 가시지 않아 사부작 거리며 향나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추 정리를 끝내고 보니 해볼 만하다. 앞서 몇 그루의 나무를 무참하게 쓰러뜨렸으니 자신감도 좀 붙었다. 엔진톱과 함께라면 이 정도쯤은 간단하게 패배시킬 수 있으리라. 목이 말라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는 전장으로 향했다. 먼저 수구를 냈다. 향나무 특유의 향기가 엔진톱의 매캐한 매연 사이에서 피어오른다. 수구를 끝내고 마침내 추구를 시작한다. 있는 힘껏 부여잡고 향나무 밑동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굉음은 더욱 커진다. 한참을 잘라낸 것 같지만 녀석은 쓰러질 기미가 없다. 엔진톱을 내려놓고 힘껏 밀어보니 두꺼운 향나무가 기우뚱거리며 빠지직 소리를 낸다. 이때다 싶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녀석을 앞뒤로 밀고 당겼다. 빠지직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 나무가 와지끈 무너진다. 양 손을 치켜들고 쾌재를 불렀다.

혹시나 사고는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꽤 긴장을 한 터라 밤이 되니 허리가 쑤신다. 고생한 엔진톱은 보관하기 전에 윤활유와 연료를 모두 꺼냈다. 여기저기 윤활유에 찌든 톱밥들을 솔로 털어내고 다시 창고로 집어넣었다. 톱밥에서 향나무 향기가 피어오른다. 잠시 두었던 현관에서도 향나무 향이 난다. 그만큼 향이 짙다. 귀농을 한 뒤로는 이런 생소한 경험들이 나의 삶에 순간순간 스며든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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