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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Aug 09. 2020

'오지라퍼'의 속사정

에세이를 빙자한 연애편지

코로나 사태로 방구석 '확 찐자'가 되어가던 어느 주말. 그날따라 감바스에 맥주 한 캔이 간절했다. 요리 무식자인 나는 어디 한 번 고급진 술안주를 만들어보자며 한껏 들떴다. 올리브유를 항금 부어 가스렌지에 올리고 콧노래를 부르는데... 


아뿔싸, 불이 붙었다!


조그맣던 불씨는 몇 초 상간에 화르륵 타올라 눈앞에서 번쩍였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현관에 비치된 소화기는 생각조차 안 났다. 다행히 경비원의 도움으로 불길을 잡았지만, 이미 온 집안에 연기가 자욱했고 벽과 가구는 까맣게 그을린 뒤였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회사 직원숙소. 경보음이 울려대는 통에 뛰쳐나온 동료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신 반복하고나서야 사태는 일단락됐다.

'오늘 일은 부모님께 알리지 말아야겠다.'

온통 흩뿌려진 소화분말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재채기만 해도 어디 아픈 거 아니냐 걱정하시는 분들이니, 혼자 떨어져 사는 딸내미가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어떠실까?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함이겠지.

애써 침착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전화가 울렸다. 남자친구다.

"뭐하고 있었어?"
"아... 오빠... 나..."

팔당댐이 물을 방류하듯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동안 그에게 방금 얼마나 큰 일을 겪었으며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구구절절 늘어놨다. 나를 타이르는 침착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쿵쾅대는 가슴이 진정됐다. 어른인 척했지만 국 난 몸만 큰 스물아홉 어린애였다.

부모님께도 들키기 싫은 '진짜 내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다.






서로의 첫인상은 꽤 강렬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나를 보며 그는 '오지랖 넓은 애'라 생각했고, 나는 세상 선비 같은 그를 보며 소위 '꼰대'라 느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지라퍼'에게도 사정은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들에게 상처 받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터득한 '상처 받지 않는 법'은, '이래도 내가 좋아?' 전략. 초반에 날 것의 나를 남김없이 보여준 뒤 그래도 내가 좋으면 관계를 이어나가고 싫으면 애초에 관계를 시작하지 말자는 것이다. 언뜻 도도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방어기제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니, 상대가 훗날 진짜 내 모습을 접했을 때 느낄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랄까.



그는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내게 '그래도 네가 좋다'며 자연스레 다가왔다. 민낯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만나도 귀엽다며 웃고 가끔 못난 감정을 내비쳐도 곁에서 현명하게 이끌어줬다. 초반에는 이전 연애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으레 그렇듯, '이 꿈 같은 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결국 내 모습을 받아주지 못해 떠나가겠지'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 같이 그 꿈 같은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 남녀 사이에 첫인상이 중요하다지만 '오지라퍼'와 '꼰대'의 만남이 이만큼이나 애틋한 걸 보면 인연은 따로 있나보다.



사실 경상도 여자인 내게 사랑은 아직도 쑥스러운 주제다. 그런데 어떤 모습이든 좋다며 바보 같이 웃는 그를 보고 있 나도 모르게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라 믿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순간마다 깨닫는 기분이란! '날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내가 매력이 없나?' 끊임없이 방황하던 소심쟁이가, 당신을 만나 어깨를 활짝 펴고 천방지축 여고생의 모습으로 돌아가다니. 당신은 바닥까지 내려간 내 자존감을 끌어올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이끌어냈다. 대단한사람. 그 어려운 걸 해내다니!






가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중 꽤 자주하는 상상이 있는데 바로 부모님의 장례식장 풍경이다. 생각도 하기 싫은 장면인데 왜 자꾸 그런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슬프게 밝은 모습의 부모님 영정,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국화, 피어오르는 향... 그리고 그 밑에서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힘들 때마다 생각해왔다.
'내가 부모를 잃은 것도 아니고, 이까짓 것 이겨낼 수 있어!'

아마도 내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프고 힘든 상황은 부모님의 죽음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진지한 만남을 시작할 때면 그 상황에 놓일 우리 둘을 상상하곤 했다. 내가 가장 초라하고 힘들 때 묵묵히 어깨를 다독여줄 사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부모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든든하게 지켜줄 사람, 멀리 떠나시는 부모님의 영혼이 안심하고 딸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바로 그대가 내가 상상해온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언제나 내 편일 당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나다운 나'를 세상에 맘껏 내보인다.

고맙습니다.

그 커다란 그릇으로 있는 힘껏 나를 담아내줘서.



"너랑 있을 때 내가 가장 나 같아서." - KBS '연애의 발견' 마지막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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