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독후감 17화

츠바키 문구점

by 노수연

책 : 츠바키 문구점

작가 : 오가와 이토 / 옮긴이 : 권남희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내가 한참 러닝크루 사람들에게 ‘달리기 인류' 책을 권하고 다녔다. 연합런을 할 때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는데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딱 한 분이 읽어서 후기까지 남겨주셨다. 그것이 고마워서 그분이 추천한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이 바로 ‘츠바키 문구점’이다.



대필

이 이야기는 할머니에게 대필의 직업을 물려받은 한 소녀의 대한 이야기다. 별명은 포포다. 포포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대필을 의뢰받아 살아간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사연을 듣게 되고 공감하며 그들의 상황을 잘 마무리해 준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이 되는 그런 소설이다.


내 시대부터는 ‘대필'을 잘 모를 것 같다. 나도 그런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다. 2018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도, 대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었기에 ‘대필'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이올렛 에버가든과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글씨체와 종이, 도구 그리고 우표

바이올렛 에버가든에서는 타자기로 편지를 썼지만 이 책에서는 직접 손으로 편지를 쓴다. 그런데 그냥 손으로 쓰는 것이 다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을 다르게 쓴다. 여자 글씨, 남자 글씨를 다르게 쓰고 종이의 질감을 생각하며 고른다. 그리고 의뢰인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붓과 펜을 고른다. 우표도 편지 보내는 사람의 감각을 보여준다며 편지 내용과 연관시키거나 계절, 상황, 그리고 의뢰인과 편지를 받는 사람의 관계까지 생각해서 결정한다. 엄청난 정성과 고심을 통해 편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상대방이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내가 그래도 배려를 많이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예의와 배려가 아닐까. 내가 편지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며 쓴 적이 있나 싶다. 다음에 편지를 쓰게 될 기회가 온다면 이런 요소들을 생각하며 쓰리라 생각했다.


경사라고도 조사라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편지다.(이혼을 알리는 편지다.) 계절을 조금 앞서간 꽃무늬 우표를 붙이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지만, 그것으로는 너무 평범하다. 두 사람이 오래 살았던 가마쿠라 기념우표도 결과나 내용을 생각하면 밋밋한 느낌이 든다. 선대가 남긴 우표 파일을 꼼꼼히 넘겨보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딱히 감이 오는 게 없어서 인터넷으로 십오 년 전에 발매된 우표를 검색해 보았다.

십오 년 전이면 부부로 맺어진 해.

같은 세월을 쌓아온 우표를 붙이는 데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65p



밤에 쓰는 편지는 요물이 낀다.

나도 항상 느끼는 것이다. 글쓰기는 아침에 쓰는 것이 맞다고 느껴진다. 밤에 쓰는 글은 너무 감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다. 밤에 쓴 글을 다음날 읽어보면 너무 과하거나 감정적인 부분만 도드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밤에는 그런 감정적인 것들을 텍스트로 적어놓거나 일기형식처럼 적는다. 그러면 낮에 일기가 텍스트에서 글을 쓸만한 주제를 얻게 된다. 그런데 책에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신기했다.


밤에 쓰는 편지는 요물이 꼈다고, 생전에 선대가 종종 말했다. 선대는 그래서 해가 진 뒤에는 대필을 별로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7p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께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행동(결정, 고민)은 오전에, 반복되는 일(루틴)은 오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사람이 지치기 때문에 생각을 적당히 한다고 한다.) 대필은 어떤 펜으로 쓸지, 어떤 종이를 쓸지, 어떤 우표를 쓸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포포에게도 오전에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의 대필은 Chat GPT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의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가끔 답장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윗사람에게 예의 있게 보내고 싶을 때, 내 입장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고 싶을 때 등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Chat GPT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내가 쓴 내용을 토대로 예의 있게, 상대방을 배려해서 글을 고쳐준다. 물론 가끔은 어순도 안 맞고 내용이 어색할 때도 있지만 대충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는 알게 된다. ‘Chat GPT가 없었을 옛날에는 대필이 정말 필요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편한 친구면 한동안 방치해 두어도 상관없지만 은사나 손위사람에게, 그것도 아주 정중하고 훌륭한 편지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모른다. 글씨를 못쓰면 더욱 그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답장을 기다리게 한 데 죄책감이 커져서, 결국 대필을 찾는 사람도 많다. 110p



글씨는 그 사람 자체다?

나는 항상 글씨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글씨로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예측은 맞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다.


글씨는 그 사람 자체다. 선대도 곧잘 말했다. 글씨를 보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138p


‘역시'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움과 품격이 넘치는 여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글씨체가 나아지지 않아서 대필을 의뢰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글씨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인품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카렌 씨처럼 아무리 해도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글씨를 못쓰는 것은 마음이 더러워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다. 144p


어쩌면 글씨체만 보고 사람의 성격을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 것이다. 사람의 단편만 보고서 그 사람을 결정짓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나도 글씨체만 보고, 사람의 한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결정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나의 편견을 깨준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었다.



편지

나는 직접 손으로 쓰는 글이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필사를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이다. 손편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사람을 주기 위해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고른다. 그 종이와 펜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땀, 온기, 숨, 흔적이 담겨있다. 그래서 더 와닿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닐까.


아주 사소한 엽서여도 손글씨로 쓴 것이라면 거기에는 쓴 사람의 생각과 시간이 진하게 남는다. 167p



기록을 남긴다는 것

‘왜 인간은 기록을 남기려 할까?’라는 생각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돌았는데 이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죽기 전에 ‘글'을 통해 ‘나'라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기록'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자세하게 풀어서 쓸 예정이다.)


그렇게 수많은 대필을 했으면서, 선대는 절대 자신을 잃지 않았다. 나라고 하는 것을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사라져도 여전히 남긴 글씨 속에서 맥맥이 살아 있다. 거기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글씨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166p



인상 깊었던 문장들

그러나 어쩌면 세상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연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다 보면, 설령 혈육인 가족과는 원만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지지해 줄지 모른다. 231p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손과 손톱은 간단히 보이지만, 등도 엉덩이도 거울에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보다 주위 사람이 더 많이 나를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이렇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타인은 더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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