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독후감 18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노수연

책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작가 : 박민규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박정민 배우님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책이었고 릴스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었던 책이었기에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교양인 ‘미술과 인문학'에서 배웠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길래 더 궁금해졌다. 나도 이상하게 그 그림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제목과 영감을 받은 작품 때문에 유럽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쓴 책인 줄 알았지만 아니어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외모

이 책에서 제일 우리를 정곡으로 찌르는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왜 외모를 보는가.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계속해서 비교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는가. 작가는 외모에 대해서 불공평한 시합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시합이다.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외모에 관한 한,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다. 선빵을 날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인간에겐 기회가 없다. 어떤 비겁한 싸움보다도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77p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외모 때문에 자신을 스타일링하는 실력에 대해서도 차이가 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말들을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외모로 인해 받는 대우가 좋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외모에 일찍 눈을 뜨게 되고 패션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빠르게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고 화장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반면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외모를 꾸며도 놀림을 받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살이 찐다면 맞는 옷이 없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굉장히 힘들어진다.(내 경험이다.) 물론 처음부터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옷을 잘 못 입는다. 자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패션에 관심도 없다. 주변에 옷 잘 입는 사람과 못 입는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의 외모가 다르지는 않은가? 일반화를 시키면 안 되지만 일단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외모가 좋을수록 패션에 관심이 많고 잘 꾸민다. 항상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통계적으로 그렇다. 나도 외모와 패션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는 중이다. 스타일링만으로도 사람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옷 잘 입는 사람들이 부럽다. 어쨌든 자신을 스타일링하는 능력을 더 일찍 갖게 되는 것과 그 능력을 가지게 될 확률이 적어지는 것은 살면서 외모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않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31p


이 문장은 작가의 성찰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모를 생각했던 본인을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나도 이 문장을 보면서 한참을 성찰했다. 나는 평소에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난 얼마나 외모를 많이 보았던가. 누군가를 얼마나 못생기고, 잘생기고, 예쁜지 평가를 했던가. 말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까내렸던 것일까. 나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외모를 포기할 수 없었다. 정말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아야 한다면, 내가 남에게 잘 보이도록 노력하는 화장도, 옷도 포기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살아야 한다. 내가 외모를 꾸미는 것은 곧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난 평생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모를 하나도 보지 않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이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이 세상은 보잘것없는 인간들로 끓어 넘치는 곳이다. 내가 아무리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기 때문에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외모를 꾸며야 한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가. 당신들은 과연 외모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


나는 평생 내 외모를 꾸미며 살아갈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외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에서 산다고 해서 내가 남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외모로만 판단하지 않는, 외모만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이 외모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본능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지금부터라도 첫인상을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외모를 자동적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외모를 판단하는 순간 가지게 되는 이 죄책감을 없애줄 수 있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올까?



작품

인간은 과연 실패작일까, 인간은 과연…성공작일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인간은 과연 달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과연…스스로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달까지 갈 수 있었을까? 달 위를 걸어다닌 인간조차도, 그러나 스스로의 내면에는 발을 내리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오던 새벽의 골목길에서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160p


나는 줄곧 이 세상이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다.(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면(내면)을 마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기에 나의 괴리감은 커져만 갔었다. 하지만 이 삶을 그저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그 어떤 작품에 값을 매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심심해서 끄적인 그림이라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실패작과 성공작을 나누지만 세상에 명확한 기준은 결코 없다.


대학교 수업 중에 ‘학문과 사고'라는 글쓰기 강의가 있었다. 교수님은 ‘오리가 실수로 페인트를 밟아서 만들어진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전시를 할 수 없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적어오라고 했다. 나는 이 주제에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 수업 때 교수님이 내 글을 예시로 들면서 그런 추상적인 이유로 결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에게 전시를 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님의 지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굴러간다는 것은 알지만, 이 강의의 제목이 ‘학문과 사고’ 아닌가? 과연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모두가 인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주제에 정답은 없다. 개인만의 기준으로 오리가 만든 그림은 작품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한 사람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인간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그리고 박민규 작가님이 있기에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인간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삶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실패와 성공으로 나뉜다고 해도 <작품>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한결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누군가에겐 실패를 한 삶처럼 비치더라도,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예쁘지’ 않더라도 나는 한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구도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보기 좋은 것만 작품인 시대는 벌써 끝났다.



나를 찾는 것.

내가 이 책을 정말 사랑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나랑 가치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님이 이 소설을 통해 강력하게 독자들을 설득하는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했다.


아니, 당연한 거야. 인간은 대부분 자기와 자신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166p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이하 동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174p



사랑

이 책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해야 한다.’이다. 이 사랑은 꼭 이성 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랑을 말하고 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것도 없는 서로를…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지. 왜,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한 줌의 드라마도 없이… 어디 좋은 곳 한번 가보지 못한 채…어딜 가봐야 눈에 띄지도 않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이… 이를테면 부인께서 참 미인이십니다 라든가, 그런 소리 한번 듣지도 못하면서…그래도 서로를 버리지 않고, 버릴 수 없어 서로를 거두는…여보 이제 어쩌지? 이런 걱정을 매일같이 하면서도…제아무리 어떤 놈이 세금을 거두고 새마을 운동을 시키고 해도…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그런대로…어쩌지 밥을 새로 해야 하는데, 하면서…말하자면 영화화 될 리도, 될 일도 없으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데도… 근근이 놀러간 여행지에서 잇몸을 다 드러낸 사진 한 장 찍어가며… 그래도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해가며…가끔은 불쌍해서…살아갈수록 자주 불쌍해서…그렇다고 돈 한 푼 생길 일도 아니면서… 그래선지 이 웬수야 웬수야 해가며… 도대체 어쩌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냥 서로를 사랑하는… 신문과 방송이 외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야. 어때, 예수가 걸친 옷만큼이나 초라하지?


기적이란 그런 거야. 236p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03p



결국

내가 아무리 모든 깨달음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끊임없이 비교하고, 외모를 평가하고, 돈만을 쫓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없으면 난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난 거기서 굉장한 답답함을 느꼈고 마음이 아팠다. 비교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세상을 살아볼 수 없다는 그 좌절감이 굉장히 컸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조건 없이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인이 되어 나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못생겼더라도, 돈이 많지 않더라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여주인공에게 굉장한 깊은 공감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생겼다는 것에 정말 크게 감사하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수한 만큼 쉽게,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아이들과 같은 정신연력을 지닌 어른들도 많습니다. 어떤 성자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해도, 제 삶은 결국 이들과 함께… 이들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중략)


저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싸움을 할 때마다 또 새로운, 더 지독한 별명 하나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메주였던 별명이 미친 메주가 된다거나… 호박이나 돼지에서 괴물이나 산돼지로 변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아아… 참으로 무덤덤하게 저런 단어들을 쓰고 말았습니다. 스스로도 조금 놀라고 있습니다. 누구의 입이 아닌, 제 손으로 또박또박 눌러쓴 저 단어들을 보면서 말이에요. 아시는지요?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당신이 제게 가져다준 ‘변화'란 사실을 말입니다. 또 그런 생각에…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 합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전해준 감정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살아온 어둠에서 절 건져주는… 따뜻한 빛과 같은 힘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283p



질문과 대답들.

이 책이 ‘천년의 사랑'보다도 더 깊게 자리 잡은 책이 되었다. ‘천년의 사랑'이 이 책 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했던 질문과 생각들이 이 책에 더 많이, 더 자세하게 쓰여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놀랍게도 작가님의 생각이 내 생각과 계속해서 일치하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질문들을 누군가 정리해서 대답해 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문장 하나하나 들이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이 분은 나보다 얼마나 많고 깊은 질문에 대답을 해오셨을까. 나도 언젠가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제일 공감되는 생각 중에 하나는 인간이 이상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줄곧 인간은 참 신비로운 존재라고, 이상하고 별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요한의 말처럼 인간은 이상한 것이었고.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어둠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없이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없이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낙서를 하듯, 그런 생각들을 끼적이고 끼적였었다. 311p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이지 이 삶은…


뭐 하는 짓일까? 341p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를 스치거나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겨우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다.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없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은, 말이다. 344p


내 생각을 그대로 가져다 써 놓은 듯한 이 문장은 나를 굉장히 차분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의 진리들을 써 놓은 철학책이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정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빛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4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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