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인간실격
작가 : 다자이 오사무
출판사 : 민음사
엄청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인간의 나약한 면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책 표지에 에곤실레의 그림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화가여서 소장하고 싶기도 했다. 에곤실레의 초상화가 ‘인간실격'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TMI이지만 내 핸드폰 케이스도 에곤실레의 그림이다.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그의 그림이 좋다.)
다자이 오사무는 책의 초반부터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한 것에도 의문을 갖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깨어있는 사람이 되려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도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일까. 정말 모두들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군.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어서, 가족이 삼시 세끼 시간을 정해 놓고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밥상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알을 씹는 것은 집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하는 행위가 아닐까 15p
우리는 왜 하루에 밥을 3번 먹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시간은 어떻게 정하게 된 것일까. 그는 일종의 의식 같다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마치 종교인들이 시간에 맞춰 기도를 하는 것 같다. 나는 무교인데 최근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일요일에는 교회를 갔다고 했다. 내가 교회를 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들은 항상 그래와서 전혀 이상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쩌면 식사시간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 집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면 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점심, 저녁을 꼭 챙겨 먹는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도 ‘점심 먹어야지.’라고 한다. 심지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많이 먹는다. 쓸데없이 배부르게 먹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기괴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을 그대로 부풀린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매우 두꺼운 가면을 쓰며 살아간 사람이었다. ‘익살'이라는 가면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했지만 매번 상처받고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그는 진정으로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익살은 그저 그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가면이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나타나면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마 다자이 오사무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같은 종류의 사람은 서로 알아본다. 숨길수가 없다.
사람들은 겉으로 멀쩡한 사람이 우울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처럼 똑같이 상처받은 기억이 있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거나 소문을 내거나 안 믿는 사람들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고백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말을 했을까. 나에게 우울증을 고백한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도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독후감 중-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서로를 싫어할 수 없다. 그래서 다케이치와 요조가 친구가 되었고 도깨비 그림을 보여준 것이다. 약방의 부인도 마찬가지다.
여기 장래 나의 동료가 있다고 생각한 저는 눈물이 날 정도로 흥분해서 “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야.”라고 왠지 모르지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케이치에게 말했습니다. 39p
아아, 이 사람도 틀림없이 불행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한 법이니까 하고 생각했을 때 언뜻 그 부인이 목다리를 짚고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123p
요조(다자이 오사무)는 그 갑갑한 가면을 벗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서 모든 이에게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것을 이해해 줄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도깨비 그림을 매우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아 요조는 솔직한 모습이 제일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 소설이 그가 두꺼운 가면을 겨우 벗고 진짜 얼굴을 아주 잠시나마 보여준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라는 도깨비의 이야기이다.
아아, 이 일군의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게 상처 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38p
그는 인간을 믿고 싶어 했고 사랑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기대하는 만큼 실망을 했다. 그는 인간을 믿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116p
나는 인간의 추악하고 어두운 면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었다.(나의 대답 중 ‘좋은 점만 보아야 할까, 나쁜 점도 보아야 할까’가 이런 입장의 글이다.)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도 나처럼 그런 일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 믿음이 요시코의 배신과 정신병원에 버려진 일들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다. 정말 인간은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추악한 것일까? 정말 세상이 이토록 어두운 세상이라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인간의 밑바닥을 직접 경험했기에 되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나도 ‘인간’ 자체를 절대 좋게 보지 않는다. 정말 더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믿지 않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눈 꼭 감고 믿는 것이다. 미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어두운 면들을 일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만약 요조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그때는 정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지금도 인간은 참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좋게 보지 않는다. 가끔은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 자체를 혐오할 때도 많다. 나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이기적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런 악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모순되는 나를 혐오한다. 그래서 요조에게 공감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것이 ‘익살'이라는 똑같은 페르소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가면을 썼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믿기로 결정했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왜 다자이 오사무는 끝내 그러지 못했을까. 이것은 주변인(환경)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건 없이 끊임없는 사랑을 주는 부모님이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 무한한 사랑의 원천이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랑이 나를 살게 한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다. 그리고 내 가치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 큰형, 넙치, 호리키, 요시코 그 누구도 요조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지 않았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만약 우리 부모님 같은 분이었다면 요조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인간으로 살 수 있었을까. 그는 그저 운이 없었던 것뿐일까.
결국 나는 요조 본인의 문제가 아닌 주변인들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조가 나처럼 인간을 무서워하고 혐오했더라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나는 또 한 번 자살은 타살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주변인들을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136p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92p
저는 어찔어찔 현기증이 나면서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놀랄 것 없어 등등의 말을 거친 호흡과 함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요시코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계단에 못 박힌 듯 서 있었습니다. 114p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132p
처음에도 말했지만 이 책에는 세상에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요조를 볼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그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조금은 정신적으로 나아지는 것 같은 부분들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결코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여 항복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고 살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그가 세상과 싸웠던 그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 책을 쓴 것 자체로도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세상을 살아보려는 처절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저항을 자살로 해석했다. 내가 죽어가는 것을 저항하지 않는, 그러니까 자살은 과연 죄입니까? 세상에 저항하며 살지 않고 죽는 것은 과연 죄입니까? 세상에 모든 것들을 그만두는 것은 죄입니까? 왜 우리는 움직여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사는 것이 무저항입니까, 아니면 자살이 무저항입니까? 우리는 세상에 저항하고 나만의 질서를 세워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나를 아프게 한 모든 것에 저항을 해야 하나요? 그래야만 죄가 아닌 것입니까?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때까지 다자이에게 있어 자살은 일종의 “처세술 같은, 타산적인 것”(잎)이었던 면이 크다.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죽음으로 면책받으려 하는 처세술이라는 뜻이다. 174p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고뇌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은 생각들이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인생의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 인간에 대해 의문을 갖고, 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져야 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성 없는 사회는 결국 소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조의 고뇌를 인정할지 인정하지 않을지가 다자이를 받아들일지 부정할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183p
+독후감을 다 쓰고 민음사에서 인간실격을 해석한 영상을 봤다. 이 영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의 몫이다.', '인간은 하나의 집단이나 사회, 국가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기만의 우주를 갖고 있어서(생략) 사람들끼리 서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신화와 철학의 강의에서도 교수님이 그러셨다. '한 인간을 만나는 것은 한 우주가 들어오는 것이다.'라고. 나도 이 생각을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이해와 공감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대답에서 풀겠다.) 그리고 내가 집단보다는 개인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고 생각하는 것은 '나'다. 표면적으로 사회가 나를 옭아매더라도 내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세상이 아니다. 내 세상은 나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