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었지만 책의 소개를 하겠습니다. 책 ‘달리기 인류'에서 저자 마이클 크롤리는 달리기 선수들의 훈련과 생활을 관찰하러 직접 에티오피아에 갑니다. 저자가 에티오피아에 도착해서 첫 러닝을 시작하자마자 훈련하는 선수들을 마주치게 되고 합류해서 같이 뛰게 됩니다. 선수들 쪽에서 먼저 같이 뛰자고 외쳤고 뛰다가 힘들어진 마이클은 점점 뒤처지게 되었죠. 하지만 선수들은 그를 버리지 않고 여기서는 함께 달린다며 다시 같이 뛰었습니다. 저한테는 참 신기했어요. 일단 선수들은 저자가 모르는 사람일 테고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속도가 맞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함께 뛰자며 먼저 손을 내밀고, 혼자 떨어지면 다시 와서 합류시키고, 늦춰질 때마다 힘내라고 “아이조!”하며 격려의 말을 외쳤습니다. 결국 끝까지 같이 훈련을 마쳤죠. 그리고 저는 다음 문장에서 뼈를 맞았습니다.
“혼자 뛰는 건 그냥 건강을 위한 거예요.” 그가 단호히 말했다. “달라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달려야 해요. 자기 페이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도에 맞춰야 해요.” 49p
물론 저는 선수도 아니고 기록욕심도 엄청 크지는 않습니다만, 솔직히 마라톤을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5km까지만 건강 달리기라고들 하잖아요? 확실히 저는 그냥 건강을 넘어서 잘 뛰고 싶은 사람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달라져야 하는데, 요즘 저는 혼자 편한 페이스로만 뛰었거든요. 그리고 인터벌 훈련을 한다고 해도 혼자 하니까 페이스 조절도 어렵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잘 뛰는 사람들과 함께 뛴다면 분명 실력이 더 올라갈 텐데 말이죠.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러닝크루에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아직 초반이라 같이 뛰는 게 어색해요. 그래도 이 러닝크루에는 고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뛴다면 제 실력도 늘지 않을까요?
+저번에 언급했던 페이스메이커도 이런 느낌입니다. 제가 5km와 21km의 최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뛰어준 사람들 덕분입니다. 내가 한 번도 뛰어 보지 못한 속도를 함께 달려줄 사람이 있다면,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면, 성공할 확률은 높아집니다. 정말 실력이 늘고 싶다면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실력 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함께 뛰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코치님은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저는 사실 재능이라는 걸 크게 안 믿어요. 에티오피아는 뛰어난 선수를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선수들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게 문제예요.” 94p
선수들은 함께 훈련하면서 상대의 페이스, 강점, 약점을 익히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선수의 보폭까지도 알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 몸처럼 서로 호흡이 완벽했다. 함께 수없이 많은 훈련을 거듭한 결과, 똑같이 효율적이고 절제된 보폭으로 달리고 있었다. 96p
저는 이 부분에서 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은 제가 첫 하프를 뛰기 전, 마지막으로 장거리 훈련을 했던 날이었습니다. 중반까지는 노래도 없이 훈련을 해서 오직 발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이 모두 똑같이 맞춰지는 것이었습니다. 딱, 딱, 딱, 딱 그것도 일정하게 같은 케이던스로 말이죠. 모두 실력이 달랐지만 같은 페이스로 뛰어서 그런지 합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 소리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한 팀이 된 것 같았거든요. 이 장거리 훈련을 같은 멤버로, 적어도 3번 이상은 함께 훈련을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마지막 훈련에서 똑같이 발소리가 맞춰지는 게 진정한 한 팀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팀워크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암하라어 속담이 있었다. ‘여러 가닥의 실이 모이면 사자도 묶을 수 있다.’ 훈련은 개인적으로 진행되는 적자생존식 경쟁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98p
저는 함께 뛰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뛰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이렇게 뛰고 저 친구는 저렇게 뛰고. 아직도 러닝 자세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것처럼 각자 뛰는 모습이 천차만별입니다. 어쩌면 지금 제 달리기 자세는 이 친구들이 함께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잘 뛰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거든요. 친구들처럼 상체를 더 움직여보기도 하고 보폭을 훨씬 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달리기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늘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러닝크루에 들어가서 또 달리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잘 뛰고 싶다면, 혼자 말고 같이 뛰는 게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달리기를 하면서 친구와 아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제가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제 기억으로 러닝동아리 친구와 단 둘이 장거리 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너졌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말이죠. 스스로 아주 못됐었던 이야기들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저의 멍청함과 죄를 고백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이 친구들과 만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슨 10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가까워졌습니다. 저번에 만날 때도 “우리 무슨 알고 지낸 지 10년은 넘은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어요. 우리는 같이 뛰면서 할 말, 못할 말들을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러닝이 끝나서도 같이 밥을 먹고, 밤을 새워서 놀면서 모든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달리면서 말하면 모든 것을 실토하게 돼요. 책에서 ‘곰리'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달리기가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을 보다 솔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발걸음, 호흡 그리고 집중 상태로 인해’ 질문에 서슴없이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157p
에티오피아의 선수들은 훈련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이를 증명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저는 분명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꼈으니까요.
소제목을 조금은 저급한 말로 지어봤는데 이 보다 재밌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라토너들은 다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대회에 나가면 평소보다 흥분되고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뭔지 그런 것들이 나와서 평소의 페이스보다 오버페이스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기록이 잘 나오기도 하죠. 평소에는 못 뛰던 거리를 뛰어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뛰는 건 똑같은데 왜 우리는 평소보다 더 힘이 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과학자도 아니고 이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같이 뛰는 것.’ 저는 이게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아무리 크루가 커서 훈련 때 많은 사람들과 같이 뛰었다고 해도 마라톤만큼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훈련할 때는 주변에서 응원하는 사람도 없죠. 하지만 마라톤 대회에서는 몇 천명, 많게는 몇 만 명이 함께 출발합니다. 저는 분명 거기서 나오는 어떤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라톤에서 재밌어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 구경’입니다. (조금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변태는 아니에요.) 특히 오르막을 오를 때면 엄청난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을 하곤 해요. 정말 장관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지하터널’입니다. 이 지하터널을 통과할 때면 항상 다 같이 전쟁터에 뛰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점점 커져가는 함성 소리는 사람을 짜릿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 터널 속에서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것 같아요. 뛰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 공간이 더 꽉 차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웃긴 건 처음 이 지하터널을 지나갈 때는 다들 힘이 남아있어서 소리가 우렁찬데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터널에서는 힘들어서 소리가 많이 작아집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마라톤은 같이 뛰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작은 대회도 길을 통제하는 경찰이나 자원봉사자들이 항상 응원을 해주죠. 저는 그때마다 정말 힘이 납니다. 이 사람은 나를 처음보고, 나도 이 사람을 처음 봤지만 그 응원이 정말 힘을 준다는 게 신기해요. 마라톤은 결코 혼자 뛰는 경기가 아닙니다. 제 기록은 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긍정의 에너지를 나눠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마라톤에서 서로 같은 길을 향해 달리고, 그 사이에 많은 분들에게 물과 간식을 얻어먹고, 응원을 받기 때문에 기록이 더 잘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생각해 보니 자원봉사자님들과 도로를 통제해 주시는 분들, 모르는 사람들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해야겠습니다.(나중에 마라톤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지금 유일하게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 달리기입니다. 예전에 태권도, 발레,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했지만 결국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학원을 그만두면 함께 하는 사람이 없기에 안 하고, PT를 그만두니 자연스레 헬스를 안 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달리기는 달랐습니다. 달리기의 장점이기도 한데 공간과 시간 제약이 없으니 사람을 만나서 같이 뛰기가 좋아요. 그리고 대회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대회를 위해서 같이 훈련하기도 합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까지 계속해서 뛸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덕도 큽니다. 부모님은 건강에 좋은 것이니 마라톤이나 러닝화 관련해서 지원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살을 뺀 영향도 큰 것 같아요. 20kg 정도 뺐습니다.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 지원해 주시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시간이 되시는 날은 매번 마라톤 대회 때마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세요. 이렇게 항상 지원을 해주시고 마라톤 하는 것을 좋아해 주셔서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바로 러닝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은 항상 어떤 대회가 있는지 알려주고 마라톤 관련 소식을 알려줘요. 그리고 많이 경험해 본 친구들이 팁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월하게 마라톤 대회들을 나갔죠. 서로 엄청 챙겨줍니다. 그리고 톡방에 매일 훈련한 기록을 올려요. 그러면 자극도 되고 응원도 하게 됩니다. 계속 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선수들이 자기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잘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선수가 중심에 있고, 바로 옆에 매니저가 있을 거고, 그다음으로 가족, 교회, 자선 단체 그리고 그 선수의 삶에 중요한 여러 존재가 주위에 있어야 해요. 그 모든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 선수가 성공할 수 있어요.” 259p
저는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끼리 매니저가 되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힘든 훈련을 함께 할 수 있는 크루가 있죠. 참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네트워크가 깨지지 않길 바랍니다. 계속 함께 뛸 수 있기를.
흔히 공동체의 에너지는 개개인의 에너지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문화가 그랬다. 선수로서의 삶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에티오피아 달리기의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그토록 압도적인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발을 따라 뛰고, 모범을 보고 배우거나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달리기를 가능케 하는 건, 관리와 규율은 물론 그 바탕에 있는 호기심과 모험심이었다. 3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