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중학교에서 국악고등학교 합격하기

by 노수연

이번 주에는 ‘인문계 중학교와 국악중학교가 어떻게 다르고, 제가 어떻게 국악고등학교를 합격했는지'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고등학교 입시를 본 지 벌써 8년째가 되어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국립국악중학교

국립국악중학교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시험 보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창청음 시험, 가창 시험(동요), 구슬면접을 통해서 선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국중을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죠. 초등학생이 벌써 재수라니. 저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해는 됩니다. 국악 쪽에서는 재수, 삼수는 아무것도 아닐뿐더러 이 국중을 들어가면 국고(국립국악고등학교)는 편하게 가거든요. 정말 웬만해서 국중 친구들이 국고에 뽑힙니다. 실수만 안 하면 뽑힌다고 봐야 하죠. 심지어 학교도 바로 옆에 붙어있고 급식실, 공연장(우륵당)도 같이 씁니다. 그리고 국중은 인문계 중학교보다 시험이 훨씬 쉬워서 등급을 얻기도 좋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인문계에서 국고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문계에서 들어갔다고 하면 실력을 좀 인정받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거의 국중에서만 뽑으니까요. 물론 제가 잘해서 뽑힌 것은 아니고 저는 운이 좋게 뽑힌 것이지만… 뒤에 말해볼게요.


*국립국악중학교 = 국중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레슨실에는 국립국악중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짧은 산조 한 바탕을 연주할 수 있었고 영산회상(제일 연주가 많이 되는 곡)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막 농음을 배우는 데 말이죠. 제 마음은 굉장히 조급해졌습니다. 이렇게 실력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니 저는 더욱더 연습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항상 그 친구들보다 조금 더 하려고 노력했고 친구들이 하는 것을 들으며 비교하기도 했죠.


*짧은 산조 한 바탕 : 저번 주에 말했던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짧은 버전(10~15분)을 쭉 이어서 부는 것을 ‘한 바탕'이라고 합니다. 5번을 반복하게 되면 ‘다섯 바탕'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저는 제 상황을 중학교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에 가서 혼자 연습을 했는데, 그때마다 기특하게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붙고 나서 음악선생님이 해주신 말은 이랬습니다. “나는 너 붙을 줄 알았어. 매일 이렇게 점심시간마다 와서 열심히 연습하는데 당연히 뽑히지.”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리고 레슨 선생님도 제가 진짜 연습을 많이 하는 거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가끔 레슨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짧은 산조 다섯 바탕을 시킬 때 제가 레슨 하곤 했었는데 레슨이 끝나면 스스로 다섯 바탕을 연습했거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제가 레슨을 받을 때 친구들은 다섯 바탕을 연주해서 저도 그만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정말 뒤처지기 싫었나 봐요. 이런 점에서 선생님들께 칭찬을 굉장히 많이 받았아요.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겁니다.


+제가 국중 친구들과 조금 달랐던 점은 ‘류파'였습니다. 저번 주에 말했었죠? 류파는 스타일입니다. 국중에서는 한범수류를 배우는 반면 국고는 조금 더 난이도가 있는 서용석류를 배웁니다. 레슨선생님께서는 서용석류가 더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국고에서 배우니 서용석류로 시험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서용석류를 선택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한범수류는 국중, 서용석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나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엉엉 울다.

그렇게 제가 연습도 많이 하다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다고 스스로 느끼던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조금 놀래셨던 게 이렇게 고등학교 입시를 할 때면 꼭 한 번씩은 우는 데 저는 한 번도 울지 않았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절망’, ‘실패’ 등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런지 꽤 단단했어요. ‘국고에 붙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불안감이 탁 터지는 때가 옵니다. 원서를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적 등급이 떴을 때입니다.


제 기억에 국고는 학교 시험성적도 꽤 따졌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제 기억으로는 1등급부터 9등급인가, 10등급까지 있었는데(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5등급 이상이 아니면 국고에 붙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악기를 굉장히 잘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입시를 보는 저번 해의 등급으로 따지면 5등급은 나와야 하는데 갑자기 7등급이 떴습니다.(사실 정확한 등급은 기억이 안 나고 예상했던 등급보다는 2단계 아래로 떴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쓰고 싶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뭔가 잘못된 줄 알고 국고에 전화까지 걸었어요.(담임선생님께서 직접 걸어주셨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매년 이 기준이 바뀔 수 있다.’였습니다. 정말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긴 하지만 하필 그 년도의 국중 친구들이 공부를 잘했던 것이죠. 그래서 등급의 기준이 바뀐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날에 저는 집에 와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국고에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심지어 국고 가겠다고 공부도 꽤 열심히 해서 반에서 5등까지 올라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물론 딱 한 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생각하면 그 열정이 대단하네요. 아직도 그때 담임선생님이 제 오른 성적을 보고 “수연이 공부 진짜 열심히 했구나?”라고 말씀하신 게 떠올라요. 제가 그 역사 선생님 참 좋아했는데…(그런데 그전에 얼마나 공부를 못했으면 이런 말을 하셨을까요.)



드디어 입시를 보다.

입시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자면 복장이 꽤 중요했습니다.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정해진 옷이 있었어요. 남자는 정장바지에 흰 셔츠, 여자는 검은색 롱플레어 치마에 흰 셔츠를 입었습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모두 그렇게 입고 왔어요. 대대로 전해지는 룰처럼 말이죠. 그래서 그 치마와 옷을 산다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무조건 올백으로 묶었습니다. 단정해 보이기 위해서죠.


대금의 경우에는 대금, 피리 전공실에서 대기를 하다가 시험장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국중친구들을 보게 되었죠. 인문계에서 온 사람은 몇 명 없었습니다. 제 기억에 3~4명이 인문계고 15명 이상이 국중 또는 예중 친구들이었어요. 그때 에피소드를 하나 풀자면 한 친구가 청 뚜껑을 열다가 청이 뚫렸습니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죠. 대금은 청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청이 터져서 테이프로 입시를 보게 된다면 무조건 탈락이에요. 다시 청을 붙인다고 해도 청소리가 잘 나지 않으면 굉장히 마이너스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청은 원래 길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붙여도 예쁜 소리는 잘 나지 않아요. 정말 솜씨가 좋지 않은 이상 청을 빠르게 붙이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들이 대동단결을 해서 청, 가위, 풀, 손수건을 빌려서 청을 대신 붙여주었습니다. 처음에 본인이 붙이려고 했는데 당황을 했는지 손을 벌벌 떨더라고요. 그래서 옆에 있던 친구들이 대신 붙여주었습니다. 정말 착한 친구들이죠. 경쟁상대라고 생각해서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멘털케어도 해주고 청을 붙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시간에 맞춰 청을 붙였고 국고에도 붙었어요. 제 기수가 본다면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까지 알겠죠.ㅎ


저는 제 기억으로, 시험을 나쁘지 않게 봤습니다. 평소 연습하던 대로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제일 시험을 잘 본 날이 아니었을까요.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엄청 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은, 평범하게 연주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를 기다렸습니다.


+입시곡이 정악은 ‘송구여(웃도드리)’, 산조는 ‘중모리'였어요.



합격

솔직히 기대를 전혀 안 했던 것 같아요. 성적등급도 낮게 나왔고 대기실에서 친구들의 소리를 들으니 조금 위축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긴장을 많이 안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약간은 자포자기 랄까요?) 어쨌든 기대를 안 하고 결과를 봤는데 ‘축하드립니다. 합격입니다.’ 뭐 이런 멘트가 나왔어요.(지금 사진들을 찾아보니 있네요.) 엄청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믿기지 않았고 당장 레슨선생님,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리고 국중을 다니던 레슨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한 친구가 떨어졌습니다. 저는 처음에 장난을 치는 줄 알았어요. 그 친구는 합격할 거라고 확신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제일 먼저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저는 그 친구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미안해요. 연락은 끊겨서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여기서 ‘변수'라는 것을 처음 겪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확실한 건 없습니다.



운칠기삼

대금 정원은 최대 18명이었고 지원자가 항상 20명을 넘게 왔었어요. 그런데 이때는 19명으로 굉장히 적게 왔습니다. 그게 첫 번째 운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원은 18명이지만 매년 14~15명 정도를 뽑아왔기에, 당연히 그럴 줄 알았고 대충 4~5명은 떨어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 걸. 최대 정원인 18명이 뽑힌 것입니다. 제 친구 1명만 떨어진 거죠. 국고에서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제 기수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이론/작곡과는 절대평가인데 하필 이 해에 시험이 어려워서 예상한 인원보다 훨씬 적게 뽑혔고, 거기서 남는 TO를 대금, 피리로 채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죠.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솔직히 저는 국고를 붙을 실력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성적등급도 낮았고요. 그저 TO를 채우기 위해 뽑힌 거죠. 엄청난 운입니다.



골든타임

다들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붙고 다음 해가 되기까지를 골든타임이라고들 하죠. 모든 고등학교 중에서 국고가 제일 시험을 먼저 치고 결과가 빠르게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에서 제일 먼저 고등학교에 합격한 사람이 되었죠. 제 친구들 중에서는 과학고였나 특목고를 가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스타트를 잘 끊어줘서 고맙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제가 수업시간에 자든, 수행평가를 잘 못 보든, 신경 쓰시지 않았어요.


이런 와중에 재밌는 에피소드를 조금 말해보자면 역사 선생님이었나, 사회 선생님이었나. 얼굴만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 계신데 제가 수행평가에 해당하는 과제를 안 해오자 교무실로 불려 갔습니다. 그러더니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냐고 하시면서 걱정해 주셨어요. 저는 평소에 엄청 성실히 살았던 학생이었거든요.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 학생이 갑자기 과제를 안 해오니 이상하게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선생님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너 고등학교 가야지~’ 이런 말을 하셔서 ‘저 붙었어요!’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셔서 “고등학교 붙었다고?? 아 그러면 안 해도 돼. 아 난 몰랐네~ 가서 실컷 놀아. 이런 거 하지 마.” 이런 식으로 안도의 한숨 그리고 웃음과 함께 말씀하셨어요. 아마 이렇게까지 고등학교를 빨리 붙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신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옵니다.


저는 골든타임 때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이누야샤’와 ‘흑집사’, 그리고 오타쿠였던 영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봤어요. (시험이 끝나면 항상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시곤 하셨습니다. 시험을 어렵게 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어서 영어로서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리고 기말 시험도 모두 찍고 잤습니다. 유일하게 수업 때 자도 건드리지 않는 학생이 되었어요. 그때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시간에 연습을 조금 더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1달 정도는 악기를 아예 안 잡았거든요. 그래도 재밌긴 했으니까 다행일까요.


그리고 이 기간에 새로운 악기 케이스를 샀습니다. 연두색 악기케이스인데요. 아직도 써요. 친구랑 종로에 가죽 파는 곳까지 가서 원단을 직접 고르고 케이스 만드는 곳에 가서 주문제작을 했습니다. 제 기억에 17만 원 정도 했어요. 아직까지도 연두색 대금 케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지금도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그때 레슨 선생님이 처음에 제 새로운 케이스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엄청 웃으셨어요.ㅠㅠ(상처) 그래도 저는 이 대금 케이스가 좋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초록색 덕후의 대금케이스.(저는 초록색을 사랑합니다. 제 방의 벽이 모두 짙은 초록색이고 초록색 펜, 초록색 노트를 가지고 있고 핸드폰이나 탭 배경화면이 초록색이랍니다.)




진짜 붙었구나.

정말 실감이 났을 때는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봤을 때입니다. 신기하게 국고는 합격신고(?)를 하려면 직접 고등학교에 가서 사인을 하고 서류들을 받아야 해요. 그때 학교에 두 번째로 가게 되었는데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명단에 제 이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언젠가 그 기분을 또 느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일 설렜던 것이 교복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국고의 교복은 여러분이 아시는 교복 스타일이 아닙니다. 공연복으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독특해요. 밑에 사진을 첨부할게요.



정말 특이하죠? 하늘하늘거리는 블라우스에 특이한 조끼, 그리고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까지. (밑에 사진은 여름교복입니다!)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굉장히 이 교복을 입은 선배님들이 멋져 보였어요. 특별한 존재들 같다고나 할까요? 빨리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복을 살 때 너무 신났습니다. 집에 와서 몇 번을 입어보고 사진 찍고 그랬어요. 그 사진이 남아있긴 한데 제가 너무 뚱뚱했을 때라서 못 올리겠습니다. 근데 아직도 저는 이 교복 좋아합니다. 예뻐요. 가끔 교복을 입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킥킥 웃거나 이게 교복이냐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지만요.(학교가 서울 개포동에 있습니다.)


+당시 입시를 볼 때 중학교에서 이런 것도 해줬네요. 반 이름이 왜 저러냐고요? 저는 박문중학교를 나왔는데요, 반 이름이 진, 선, 미, 성, 현, 경, 신, 인 이었습니다. 참 특이하죠.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중3 때는 경반이었나 봅니다.


오늘은 국고에 붙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편에는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좋았던 점, 나빴던 점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