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 고립
수연 : 고립
사고 후 두 달.
나는 세상에서 숨었다.
사직서를 등기로 회사에 보냈다. 휴대폰은 서랍 깊숙이 전원을 끄고 넣어 두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쌓여갔을 것이다. 열어보지 않았다. 그들이 기억하는 김준우는 180센티미터의 건장한 남자였다. 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회식 자리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남자. 지금의 나를 보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내 세계는 이 아파트 현관문 안쪽으로 수축했다.
***
밤이 되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김준우였다. 양복 재킷이 어깨에 딱 맞았다.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회의실 문을 열면 후배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바로 나였다.
깨어났다.
이불 속에서 손을 움직이면, 가느다란 손가락이 만져졌다. 가슴 위에 올린 손이 부드러운 살에 닿았다.
아, 꿈이었구나.
매일 아침. 매일.
더 무서운 꿈도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여자였다. 완전히. 거울 앞에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빗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뒤에서 안아주었고, 나는 웃으며 그 품에 안겼다.
행복했다. 꿈속의 내가, 분명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 꿈에서 깨어나면 — 땀에 젖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게 악몽이었나. 아니면 내 무의식이 원하는 것인가.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
지수가 대신 모든 것을 처리해 주었다.
매일 아침 7시, 지수가 출근 준비를 했다. 셔츠를 다리고, 화장을 하고, 정장을 챙겨 입었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두 달 전까지 내가 하던 일이었다. 넥타이를 고르고, 구두를 닦고, 서류 가방을 챙기던 일상.
"다녀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심해서 다녀와."
현관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멀어졌다.
텅 빈 거실 한가운데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지수가 돌아올 때까지의 긴 시간. 나 혼자 이 몸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
하루가 얼마나 긴지 처음 알았다.
TV를 켜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오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 모두가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나만 이 유리창 안에 갇혀 있었다.
***
컵을 자꾸 깼다.
손을 뻗는데, 내 손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었다. 싱크대 위 선반까지의 거리가 달랐다. 문을 통과할 때 어깨를 틀었는데 허공만 스쳤다. 의자에 앉을 때 엉덩이가 닿을 거리를 잘못 계산해 철퍼덕 주저앉았다.
35년간 살았던 몸의 지도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긴 팔, 넓은 어깨, 큰 손. 뇌는 그 몸에 맞춰 명령을 내렸다. 실행하는 것은 다른 몸이었다.
어느 아침, 물을 마시려고 컵을 잡았다. 힘 조절이 안 됐다. 예전의 큰 손으로 쥐던 감각대로 힘을 줬는데, 가느다란 손가락이 컵을 놓쳤다. 바닥에 부딪혀 깨졌다. 파편을 치우다가 손을 베었다. 피가 맺혔다. 하얗고 작은 손 위에.
싱크대에 기대어 섰다. 피가 나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는 — 무엇을 할 수 있는 거지.
***
어느 날,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덤벨을 꺼냈다.
사고 전, 나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던 남자였다. 우람했던 팔뚝. 단단했던 가슴 근육.
5킬로그램. 준비 운동용으로 가볍게 휘두르던 무게였다.
집어 들었다. 손목이 꺾이는 듯한 통증. 덤벨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마루가 찍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팔뚝에 근육은커녕 핏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얗고, 가늘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그 팔뚝을 쥐었다. 손가락이 한 바퀴 돌아 남았다.
***
샤워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뜨거운 물줄기 아래 서면, 없어진 것이 더 선명해졌다. 손이 습관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비누칠을 하려는 습관. 35년간 매일 반복했던 동작.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손끝이 닿으면 느껴지는. 낯선 것.
그 아래로는 보지 않았다. 거울도 피했다. 최대한 빨리 씻었다.
***
어느 날, 지수의 노트북을 켰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 전환 적응'
검색 결과를 읽었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글들.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몸에 갇혀 있다고 느꼈다는 사람들. 수십 년을 고민한 끝에 전환을 결심했다는 사람들.
그들은 원해서 여자가 되었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글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들이 묘사하는 감각들. 감정이 예민해졌다는 것.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 어딘가 익숙했다. 나도 느끼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 사실이 무서웠다.
검색 기록을 지웠다. 노트북을 닫았다. 읽었던 글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어느 날, 참다 못해 서재의 옷장을 열었다.
지수가 없는 낮이었다.
네이비색 정장이 걸려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 승진했을 때 입었던 것. 빳빳한 울 원단. 옷걸이에 걸린 채로 어깨 라인이 반듯하게 서 있었다.
손을 뻗었다. 원단에 손끝이 닿았다. 까칠한 감촉. 35년간 익숙했던 그 감촉.
입어보고 싶었다. 미친 짓인 걸 알았다. 그래도 꺼냈다.
셔츠 단추를 잠갔다. 칼라가 목을 감싸는 느낌. 넥타이를 매려고 했다.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윈저 노트. 오른쪽을 왼쪽 위로, 아래로 감아서, 고리 사이로 —
거울 앞에 섰다.
어깨 패드가 축 처져 있었다. 바지통이 펄럭거렸다. 허리는 남는데 엉덩이에서 걸려 단추가 잠기지 않았다. 셔츠 안으로 가슴의 윤곽이 보였다.
거울 속에 웬 여자가 아버지 양복을 훔쳐 입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오래 바라보았다.
옷을 벗었다. 접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두었다.
책장 앞에 섰다. 대학 시절부터 모아왔던 경제학 전공 서적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전문지들. 밤을 새워 작성했던 분석 노트들.
한 권을 꺼내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읽히던 수식들이 그냥 기호로 보였다.
덮었다.
재활용 봉투를 가져왔다. 한 권씩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지 못했다. 책. 잡지. 노트. 양복들. 넥타이들. 구두들. 명함들.
봉투가 찼다. 하나 더 가져왔다. 그것도 찼다.
현관 밖 수거함까지 세 번을 왕복했다.
서재로 돌아왔다. 책장이 텅 비어 있었다. 옷장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가빴다.
뭘 한 거지.
***
그날 밤, 지수가 늦은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는 베란다 창가에 서 있었다.
"안 자고 뭐 해?"
"지수야."
지수의 손을 잡고 서재로 갔다. 서재 문을 열었다.
지수가 텅 빈 책장을 보았다. 텅 빈 옷장을 보았다.
"다 버렸어."
지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장 입어봤어. 네이비색.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거."
목소리가 떨렸다.
"안 맞아. 아무것도."
멈췄다. 숨을 쉬었다.
"김준우는 죽었어, 지수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흔들렸다.
"난 그냥... 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령이야."
***
지수가 주저앉아 나를 안았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수를 이렇게 안아주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녀의 품에 안기는 쪽이었다. 어깨가 좁아서 품 안에 묻혔다.
"아니야. 넌 유령 아니야."
지수가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넌 내 남편이야. 김준우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넌 여기 있잖아. 내 눈앞에."
지수가 젖은 뺨에 입을 맞췄다.
"내가 벌어올게. 내가 지킬게. 네가 예전에 나한테 했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할 차례야."
눈물이 더 쏟아졌다.
"미안해."
"미안해, 지수야. 네가 이렇게까지 고생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해. 돈도 못 벌고, 그냥 네 짐만 되고 있어."
"뭐가 미안해. 넌 짐 아니야."
지수가 내 얼굴을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그게 뭐 어때서."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 대신 지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단단했다.
고마웠다. 미안했다. 그리고 — 어딘가에서 안도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가장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된다는 것. 그 안도가 죄책감과 뒤섞여서 —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