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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미티 Jul 31. 2023

지금까지 시간 중 딱 1년을 삭제한다면?

소소무물 | 38번째 이야기



치타 미티

요즘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아침 루틴이 무너지고 저녁에는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죠. 그러던 중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갑자기 여름방학처럼 느껴졌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했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친구의 공감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다가도 놀리기 바쁜 시간이었어요.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말하더라고요. 


"이제 만 나이로 나이를 하니까 난 더 어려진 거야! 나한테 1년이 삭제된 거라고."


예전에는 엄청 중요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내 나이가 지금 몇이더라'하고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년생이다.'라고 말하는 게 쉬워졌죠. 나이를 말할 때면 숙연해지는 세대에게 한 살이라도 어려진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인 듯해요. 


그때 친구가 말하더라고요. "난 내 삶 중 1년을 삭제한다면 그 새끼(?) 만난 시간을 삭제할 거야."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3초 정도 정적이 있다가 모두 웃어버렸어요. 그리고 각자 누구를 삭제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죠. 첫사랑 그 자식, 최근에 만난 나쁜 놈. 마지막으로 "만 나이로 삭제했다 치자! 퉁!"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 혼자 상상을 해보았어요. 나에게 1년을 삭제한다면 언제를 삭제해야 할까?

꽤 어렵더라고요. 누군가의 만남을 쿨하게 삭제할 순 있겠지만, '1년'이란 단위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는 듯해서요. 꽤 많은 사건사고+추억이 담긴 시기잖아요? 그래서 키티언니에게 묻고 싶었어요. 키티언니가 지우고 싶은 1년은 언제일까.


저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대학교 졸업 1년이었어요. 오랫동안 있었던 대학 육상부의 마지막 전국체전을 준비하고 있었죠. 전국체전이 끝나면 본가로 들어가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했어요. 마지막 체전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쉬움 가득한 채 트랙을 떠났어요. 

게다가 거의 7년 만에 본가로 들어가는 생활이었기에 너무나 행복했지만 실상은 엄마와 이렇게 싸울 수 있구나 알게 된 때였죠. 갑자기 변해버린 아이덴티티와 생활환경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 방황했던 시기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할 겨를도 없이 눈 뜨면 독서실로 가서 앉아만 있어야 하는 일은 너무 괴로웠죠. 그 시기에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무엇을 해보고 싶지?'라는 고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그때 배운 것도 많지만, 굳이 1년을 정해 보자면요!)


키티언니의 삭제 1년은 언제인가요?





키티언니


미티님, 만 나이로 즐거워진다는 건 그래도 어리다는 겁니다. 저는 이제 만 나이로 해도 딱히 어리지 않아서 감흥이 없어요 ㅋㅋㅋ 그리고 점점 나이에 대한 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물론, 20대는 한 살, 한 살 차이가 컸어요. 미성년에서 성인이 되고, 대학생인가 싶을 무렵 직업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취준이란 터널을 지나 겨우 취업을 해 일을 배워가고 이직도 하면서 해마다 새롭게 어려웠습니다. 매해가 스펙터클 하게 느껴졌죠. 그래서 스물몇 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납니다.


그러나 ‘3’이란 앞자리가 어색했던 30대 초반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 자체도 엄청 큰 변화였으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하루가 비슷했습니다. 정말 큰 사건을 제외하면 몇 살에 일어난 일인지 헷갈리기도 해요. 하루, 한 달, 일 년이 어쩜 이렇게 빠르죠? 굳이 삭제하려고 들지 않아도 삭제당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ㅎ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삭제한다면 2018년 4월부터 약 1년 정도를 지우고 싶어요. 당시 건강이 안 좋기도 했고 글을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미티님과 만났던 회사였죠. 한 달은 본가에도 다녀오고 여유롭게 쉬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교육도 듣고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집필에 매진한다는 포부와 달리 애매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오랜 시간 앉아 있었지만, 정작 글을 쓰는 시간은 적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괴로웠어요. 밤마다 ‘오늘도 몇 자 못 썼네. 도대체 뭐 했지? 한심하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들쑤셨습니다.  열심히 했는지 아닌지는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잖아요. 취준 기간만큼이나 심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책을 하면 할수록 유튜브를 보고, 딴짓하는 시간은 늘어만 갔어요.


그러나 운 좋게 제안을 받아 웹소설 한 편을 출간했습니다. 결과는… 치킨 값 겨우 벌었습니다. 꾸역꾸역 완결을 낸 것이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는 포트폴리오가 되어 다행이었지만요. 음, 저 1년을 삭제하면 지금 회사도 없어져 버리는 걸까요? 그건 곤란한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지만 삭제하지 않고 박제해 놔야겠습니다. 원래 흑역사에서 더 많이 배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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