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36번째 이야기
5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경기도에 있는 키티언니는 못 보셨겠군요. 아침 6시 40분쯤 서울 지역에 있는 사람이 진행한 '미라클 모닝 사건(?)'을 말이죠.
그날따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어요. 늦어도 6시 40분쯤엔 달리기 준비를 마치고 나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아 오늘 그냥 쉴까'란 말이 턱 끝까지 차 있었죠.
그래도 나와의 약속이니 지켜야지라는 마음으로 어슬렁 거리며 운동복을 꺼내고 있는데 그 순간...! 휴대폰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울리더라고요.
'서울 경계경보' 였어요. 어린아이와 노약자부터 대피를 준비하라는 알림을 본 순간 멍하더라고요. 재빠르게 네이버를 들어갔는데 웬걸. 네이버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동생에게 연락을 하고 뭘 해야 하지 고민하다 우선 샤워를 재빠르게 했습니다(?) 뭔가 전쟁을 나가면 깨끗한 물로 씻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뭔 소리냐며 자신은 그런 경보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기다려보라며 긴장을 시킨 뒤, 노션을 켜서 대피 리스트를 짰어요. 그때 휴대폰에서 경보 해지와 함께 잘못된 알람이었다고 연락을 받았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뉴스를 새로고침 했죠.
시간이 지나 노트북의 [대피 리스트]를 보니 뭔가 진지해지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듯했죠. 와, 정말로 뭘 챙겨야 하는가.
그래서 일단 생존 말고, 나에게 중요한 7가지를 챙겨보면 어떨까 하며 리스트를 짜보았어요. (생존을 위한 생존 가방은 따로 구매해 놓는 게 좋겠어요)
1. 노트와 펜 : 뭔가 상황에 대한 기록을 무조건 남겨야 함
2. 휴대폰과 충전기 : 통신이 안될 테지만, 혹시 모름. 사진 기능 가능함
3. 책 : 힘들 때 나를 위로할 책 한 권은 있어야지ㅠㅠ 하지만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음. (이건 따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어요)
4. 속옷 : 속옷을 여러 개 챙기면 빨래를 못하더라도 위생상 좋지 않을까..
5. 컵 : 물을 받아먹고, 음식도 넣고 하려면 컵이 필수템임 (캠핑할 때도 컵 은근 유용)
6. 겉옷 : 전기도 안 들어오고 계절이 바뀌면 추울 수 있음.. 위험해..
7. 손목시계 : 애플워치는 무슨. 일단 오래갈 거 같은 시계 하나를 챙겨서 시간과 일자를 체크해야지
우선 대피 리스트를 짠 저에게 친구들은 파워 J냐며 놀렸지만, 저는 진지했습니다. 후-
막상 쓰고 나니 키티언니의 대피 가방도 궁금하더라고요. 과연 무엇을 챙기실까
오해십니다. 저는 그때 국가의 모닝콜받기 전에 깨어 있었어요.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 아침 8시에 오시기로 했기 때문이죠.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라 일찍부터 작업하시더라고요. 허허.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세탁해 놓은 털 크록스가 영 마르지 않아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바로 듣지 못했어요.
대신 욕실에서 나오니 남편이 구겨 놓은 종이컵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경계경보를 보고서 인터넷 뉴스를 살피며 지갑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경보 해지 알람이 다시 울렸습니다. 실은 손에 든 것도 몇 개 없기도 하고 뭘 챙겨야 할지도 몰라 다 내려두고 얌전히 에어컨 기사님을 기다렸어요.
전쟁이 아니더라도 잦아진 지진이나 이상 기후 등을 생각하면, 생존 가방이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물론 평화로운(?) 일상으로 인해 금세 잊혔을 겁니다. 이렇게 미티님이 상기시켜주시지 않았다면 다시금 아웃 오브 안중이었을 테고요. 미티님의 리스트는 뭔가 무인도에 가져갈 7가지와 동일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생존 가방이니 궤는 같이 하겠죠?ㅎㅎ
저의 생존 아이템 7가지는,
1. 노트와 펜: 기록보다는 두려움에 성급해질 때 쓰면서 생각해 보면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서요.
2. 휴대폰과 충전기: 당연히 챙겨야 할 것 같은데.. 정전이라 꺼져버리면, 벽돌 대신 쓰죠, 뭐. 무거워서 쌉 가능.
3. 속옷, 겉옷: 속옷은 2~3개 정도 챙겨서 필요 따라 수건으로 쓰고, 얇은 패딩, 바람막이 챙겨야죠.
4. 에너지 바: 햇반은 돌리기 힘들고, 통조림은 무거우니 바로 먹을 수 있는 에너지바를 챙기겠어요.
5. 물병: 물이든 먹을 거든 담을 수 있으니까요.
6. 칼: 맥가이버 칼 같은 거 있잖습니까. 위기 상황(?)에 두루두루, 휘뚜루마뚜루 사용할 수 있겠죠.
7. 손전등: 전기가 안 되면 얼마나 어두컴컴하겠습니까. 밤에 건물 안에 있더라도 필요할 거예요.
열심히 리스트업 하긴 했는데요.
준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에어컨 바람 쐬고 누워 있으니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