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35번째 이야기
연휴의 마지막 날, 본가에서 실컷 먹고 놀고 자다가 혼자 있는 방으로 돌아왔어요.
뭘 해야 할까 (계속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이 마음도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고민하다가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개운하게 씻은 뒤 넷플릭스로 조인하였습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선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쉽게 찾게 돼요. 모험하는 마음이 사라진 걸까, 익숙한 것이 편해진 걸까 모르겠어요.
오늘의 선택은 '원데이'라는 영화입니다. 클릭했더니 이미 1/3을 본 상태였네요. 아마 5번째쯤 보고 있는 영화예요. 이상하게 계속해서 보게 되는 영화들 있잖아요.
저에겐 이터널 선샤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화양연화, 노트북, 노팅힐 등의 영화가 있어요. 그중에서 이터널 선샤인과 화양연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였어요.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람..'이라며 뭉툭한 감정으로 지켜보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숫자가 지나갈수록 영화 속 주인공들의 절절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캐릭터들을 온전히 바라봐야만 보이는 전체가 있는 듯해요.
반대로 원데이는 언제나 똑같은 감정을 주는 영화예요. 흔히 주인공 주변엔 나쁜 놈은 없어요. 그냥 남자 주인공이 나쁜 놈(?)이죠. 여자와 남자가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날, 그날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요. 한 사람은 사랑으로, 한 사람은 우정으로 시작된 날이 매년 하루씩 그들에게 스쳐 지나가요. 그리고 서로의 사랑이 완성이 될 때쯔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죠. (스포일까 봐 여기까지만)
이런 영화들을 왜 자꾸 찾게 되는 걸까요? 전 답을 모르겠어요. 해피엔딩이지도 않고, 버라이어티 한 장면도 없는데 전 계속 이런 영화들을 찾아요. 자꾸 보다 보니 주인공들의 미묘한 표정이 보이고 대사 하나도 마음에 남아서 붙잡고 싶어지는 뭔가가 있는 듯해요. 떠도는 넷플릭스 안에서도 나만의 선택지가 있는 느낌도 나쁘지 않고요. 주구장창 보면서도 다시 선택하고 싶은 이 영화들은 아마 저의 취향 중 하나겠죠? (그렇기엔 마니아가 너무 많은 장르들이긴 하지만요)
제 마우스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키티언니의 영화도 궁금해집니다.
싫증을 잘 내는, 새로움에 눈과 귀가 트이는 인간이라 반복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 책 등도 마찬가지로 신작 위주로 보곤 합니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실제 시청 시간보다 길 때가 많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죠?ㅎㅎ
그런 제가 반복해서 봤던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입니다. 총 3편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는 단연코 1편이 으뜸이에요. 지극히 제 기준에서는. 브리짓 존스는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거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브리짓을 비롯해 남주, 서브 남주, 친구들 모두 다채롭게 모자랍니다. 종종 목 막히게 답답하다가 뒤로 갈수록 시원한 사이다를 날리죠. 엔딩까지 잔잔하게 웃기고 사랑스럽습니다. 한입 입에 넣으면 기분 좋아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그래서 기운이 빠질 즈음이면 이 영화를 찾습니다.
마이너스로 빠졌던 기운을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0까지 끌어올렸다면, 다음은 '라라랜드'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시작하는 군무 씬부터가 기합이 뽝 들어가게 하죠. 영화 내내 흐르는 노래도 좋지만 두 사람이 꿈과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힘이 채워져요. 반면, 미아와 세바스찬이 커리어와 사랑의 곡선은 교차하여 반대로 나아갑니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꾸준히 멀어져 가죠. 마지막, 가정법으로 연출한 장면도 미련이나 후회가 아닌 사랑했고 고마웠던 사람이었음을 표현했다고 해석해 봅니다.
두 영화들을 종종 찾아보는 이유는 힘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내면에 힘이 바닥났을 때, 웃음을 주는 사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처럼요.
ps. 미티님이 원데이를 자주 보는 건 나쁜 남자가 취향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