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의 온도

by 루바토 노트


왜 어떤 사람과 일하면 일이 쉽게 풀릴까. 같은 자료를 다루고, 같은 회의를 해도 덜 피곤하고 결정이 빠르다.

그런 사람이 팀에 있을 땐 일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문서를 보자마자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고, 질문이 생기기도 전에 필요한 설명이 이미 덧붙여져 있다. 다음 행동까지 이미 설계된 듯한 감각, 나는 이런 순간들을 볼 때 일머리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말처럼 명확하진 않다. 누구는 업무 이해도, 누구는 눈치, 또 어떤 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말한다. 경험마다 정의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일머리는 재능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지금 하는 일을 함께 보는 사람이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혼자 일하면서도 마치 누군가 옆에 있는 듯, 다음 단계를 설계하는 자세. 그게 일머리를 만든다고 믿는다.


작년 연말, 사내 이벤트로 대규모 앙케이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사연을 뽑아 상품을 주는 이벤트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답변이 도착했다. 문제는 그 모든 답변을 팀원들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공정하게 뽑자는 원칙까지 생기면서 팀원들은 이미 벅찬 업무에 더 큰 부담을 지게 됐다.


나는 먼저 답변을 훑어가며 내용이 빈약한 항목은 후보에서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형별로 묶었다. 기준을 정리해 공유하고, 그 안에서 투표만 진행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자 모두가 빠르게 납득했고, 이견도 없었다. 불필요한 논의도 줄어 회의는 단숨에 마무리됐다.


일머리는 작은 불편을 먼저 감지하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는 늘 다음 사람을 염두에 두고, 어떤 흐름이면 혼선을 줄일지 떠올린다. 그렇게 지나간 자리엔 설명이 남아 있고, 방향이 정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그런 반복이 팀의 피로를 줄이며 신뢰를 쌓아간다.


물론 이런 태도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더 나은 방식을 동료들과 고민하며, 일의 기준과 방향을 조금씩 익혀온 결과였다. 그런 팀원들이 모일 때, 일은 더 단단하고 유연해진다. 일을 잘한다는 건 흐름을 같이 만들어가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editor 승

아직은 철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픈 에디터 5년차. 결혼 등을 이유로 독립하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는 3n년차 캥거루족이다. 독립은 미뤘지만 불안과 동거하며 눈치껏 성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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