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현실 육아의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던 나날들
우리 집 아이의 생일은 9월이다.
이미 출산휴가 이후 복직이 결정되어 있던 나는 아이의 주민번호가 나오자마자 "아이사랑" 앱을 설치하고 집 근처 어린이집들에 0세 반 입소대기를 걸었다.
마음 한편에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회사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디서 주워들은 '국공립이 좋더라'라는 말을 맹신한 채 국공립 위주로 어린이집 세 곳에 대기를 걸어두었다. 뭘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고 아주 편안한 맘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때까지 나는 저출산이 문제라는 국가에 살고 있다면 당연히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는 부모가 희망한다면 쉽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깨지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맘 속 1순위 어린이집에 입소 대기를 하니 대기번호 38번이라는 숫자를 받게 되었다. 만 0세 반 총 입소 정원은 4명인데 38번째라니... 너무 까마득한 대기번호를 본 맞벌이 부부는 할 말을 잊게 되었다.
10월 사내 어린이집 공고가 떴는데 공고를 보고 좌절감이 들었다. 다음 해 3월에 생기는 만 0세 반은 8월생부터 입소 가능하다는 입소 조건으로 회사 어린이집은 더 이상 나의 육아 옵션지가 될 수 없었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9월생의 적격 여부를 재차 확인했지만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 순간부터 집 근처 어린이집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면서 매일 "아이사랑" 앱에 접속하며 대기번호만 확인을 했다.
나의 초조함은 아이를 실제 내 손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커져갔다. 성인 대 성인의 대화를 익숙한 내가 내 보호가 오롯이 필요한 아이를 하루종일 돌보니 산후 우울증이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나마 몇 개월 안 되는 기간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남편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아이와 단 둘이 지낸다고 생각하니 남편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물론 아이러니하게 내 남편은 아이와 둘이 같이 있으면서 우울증이 오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큰길 건너 가정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입소가 가능하여 상담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처음 만나본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어린아이의 개월수에 놀라며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하원 도우미를 꼭 써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었다. 아이가 잘 적응하더라도 오후 3시에는 하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여러 번 강조해서 나에게 전달했다.
이미 시터 선생님을 격일로 고용하고 있었기에 하원 도우미 선생님을 고용한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교육기관에서 당연하게 하원 도우미 선생님을 말하는 모습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늦은 하원에 대한 아이의 어려움과 힘듦은 이미 임신 기간부터 고민했고 긴 고민 끝에 아이의 힘을 믿어보자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마인드컨트롤 해왔는데 보육기관의 추천이라니...
이제 한 고개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하원 도우미 선생님이라니...
앞으로 수많은 세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그 이후 신학기 입소 상담들이 시작되면서 다른 어린이집 두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어린이집 상담 이후에는 남편과 함께 백일도 안된 아이를 안고 직접 어린이집으로 가서 상담을 받았다. 당분간 육아의 주양육자가 될 남편의 의견도 충분히 듣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 작은 아이를 마주했을 때의 원장님들의 반응이 천지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맘 속 1순위였던 어린이집에서는 작디작은 나의 아이를 보자마자 걱정과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상담을 가던 시간에 연장반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있는 나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힘듦만이 가득했다. 얼마나 커리큘럼이 잘 되어 있고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보육기관임을 강조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원장 선생님의 걱정 가득한 얼굴만이 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나의 아이는 처음 내 마음속의 3순위였던 민간 가정 어린이집으로 입소하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곳 역시 상담 갈 때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갔는데 가자마자 나이가 있으신 모든 선생님들이 진짜 막내가 왔다며 서로 안아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원장님과의 상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셨다.
원장님 또한 맞벌이의 어려움에 공감해 주시면서 아이를 잘 보살피고 있을 테니 큰 걱정 말고 믿겨 맡겨달라는 이야기를 주셨다. 남편도 이 어린이집을 갔다 오고 나서는 표정이 편안해졌고 둘 다 '이곳으로 보내자'라는 확신이 들어 이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나는 이 어린이집에서 만 2세반 졸업까지 보내면서 양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나와 남편,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아이를 키워냈다. 난 아이가 그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무사히 승진을 제 때 했고 일과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면서 차곡차곡 연봉을 높여나갔다.
아마도 이 어린이집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육아와 일 사이에 갈등을 하며 성장보다는 갈등과 고민으로 나의 시간들을 채우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입소가 해결되었으니 남편은 본격적으로 육아휴직을, 나는 복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지까지는 스타팅 포인트였을 뿐 이제서야 우리의 진짜 달리기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