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기간 남편의 육아휴직 선언에 따른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연애 시절부터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남편은 나의 임신을 알자마자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연애 시절과 달라진 남편과의 육아 휴직 약속에서 달라진 거는 나였다. 원래는 나도 육아휴직을 하고 그 뒤에 남편이 이어서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으나 승진을 하지 못한 채 임신을 한 나에게 남편은 육아휴직을 추천하지 않았다.
남편의 육아휴직 선언을 오롯이 믿었던 건 나의 회사 동료들이었다.
- 아이 낳으면 어떻게 할 거야?
- 남편이 육아휴직 한다는데?
- ㅇㅇ
(ㅇㅇ이라는 표현이 문어체는 아니지만 그 말을 대체할만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마음속에서 제일 걸리는 건 시댁 식구들이었는데 시댁에서는 임신의 기쁨에 가려서인지 혹은 정말 당연하게 생각하셔서 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다. 여느 결혼 양가 생활이 그렇듯 나나 남편의 자랑들로 가득 찬 양가 부모님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곳이기에 걱정이 앞섰지만 두 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 너희들이 알아서 하겠지, 리오주인이 몸 조심해라
쿨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였지만 시어머님이 남편 임신 했을 때 입덧으로 고생을 많이 하셔서 내 걱정이 먼저 앞섰다고 하신다.
오히려 가장 남편의 육아휴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큰 시간이 걸렸던 것은 바로 남편의 직장이었다. 처음에는 농담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 또한 남편의 직장 반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연애 시절 남편의 육아휴직 선언이 나에게도 농담처럼 들렸으니까.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임신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육아휴직 선언을 받아들였다.
남편 직장 동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내 배가 꽤 불러오기 시작한 뒤였다. 남편은 직책자들에게도 자신의 육아휴직 시점을 전달했고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과 예상하는 육아 휴직 시점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남편의 팀장은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만 (혹은 덤덤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남편은 대기업 '담당'급의 조직에서 최초의 남자 육아 휴직자였기 때문이다.) 남편의 직속 상사는 점점 이를 초조하게 느껴지는 게 나 또한 느껴지기 시작했다.
술 회식 자리에 가서도 육아 휴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던 남편은 남편을 사회 초년생 때부터 봤던 직속 상사가 육아휴직은 와이프가 하는 게 어떻겠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라며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했다. 남편의 직속 상사는 정말 아끼기 때문에 이야기해 준다면 아이를 키운다는 육아 자체가 정말 힘든 거이기 때문에 자신의 핑계를 대고 와이프가 육아휴직을 쓰는 게 어떻겠냐라는 개인적인 조언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가 나에게 온 거는 남편은 오히려 이 이야기를 계기로 육아휴직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결심을 했다고 한다. 배가 꽤 불러왔지만 당시 나는 팀에서 No.2 자리가 공고했고 비록 남편처럼 특급 승진을 하지는 못했지만 팀에서의 입지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이에 남편은 직속 상사에게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의 직장에서의 위치를 말해주고 내가 와이프에게 육아휴직을 권고하려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냐라는 반문을 했고 이에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직속 상사가 원망스럽냐라는 질문도 받았는데 원망스럽진 않다. 오히려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그 말을 남편에게 해주었다는 건, 남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의 직장 생활이 온전히 이해받는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만약 내가 팀에서 입지가 탄탄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이러한 일들이 임신 40개월 동안 특별한 하루의 에피소드가 아닌 매일 겪는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직속 상사의 벽을 넘자 육아휴직 준비는 일사천리로 준비되었다. 휴직에 들어가는 시점을 팀원분들과 이야기 나누었고 나는 출산휴가 날짜와 남편의 육아휴직 날짜를 맞추기를 시작했다. 이미 입덧이 심했고 쉬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개인 친분 지인들은 출산 2~3주 전에는 출산 휴가에 들어가는 것을 조언했으나 나는 고집스럽게 끝까지 일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유명한 출산하고 정상퇴근해서 분만실에 들어간 여자가 되었는데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 왜 그랬냐고. 어떻게 버텼냐고. 그 누구도 나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이 저마다 자신들의 결론으로 지레짐짓 나는 회사일에 올인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