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출산을 다 잡겠다고 외쳤지만 현실은 입덧지옥
회사 선배에게 호기롭게 출산휴가만 쉬고 복귀하겠다고 패기롭게 말하던 하루가 지난 뒤, 입덧이 찾아왔다. 배달의 민족 메뉴판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더니 결국은 토하러 화장실을 가는 내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그래도 임신 4~6주에는 먹는 건 가능했는데 그 순간을 넘어가자 먹는 것의 문제를 넘어 음식 냄새를 맡으면 토하러 가게 되어 걸어가는 것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제일 힘든 곳이 바로 푸드코트가 있는 대형 건물들이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일하는 건물에 푸드코트가 있었다. 임신 전에는 냄새를 맡으며 오늘은 어떤 점심, 저녁을 먹을까 상상하던 나의 즐거움이 고통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정도의 수준이 되니 사람 냄새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도 버스를 잘 안타는 나였지만 이 시기에는 택시만 탔는데 택시에 따라 냄새가 심한 택시에 탔을 때에는 출근길 10분이 '제발 토하지 말자'라는 나 자신과 타협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침덧까지 와서 내 침 냄새에 토하기도 하고 심지어 드라마에서 보는 덧은 굉장히 우아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입덧을 하면서 토하는 모습은 마치 입으로 어떠한 괴물을 낳는 것이 연상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신체의 변화가 급격하게 오자 나는 회사에서 뭘 더 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일상 회복이 더 시급한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임신 6주에는 인생 역대급 눈 다래끼가 났는데 약을 먹을 수 없고 염증은 점점 커져가서 결국은 생으로 찢어서 치료를 하게 되었다.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수월히 임신하는 사람들도 있건만 나는 뭘 하나 해도 수월히 간다라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았지만 임신마저 그렇다는 게 화가 났다.
결국 임신 8주쯤에는 이 모든 걸 임신 40주까지 겪어야 된다는 사실에 지쳐 남편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해버렸다. 남편은 같이 안쓰러워하며 냉장고 문도 열지 못한 채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그 와중에도 회사를 쉰다라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옵션지였다. 물론 회사에서 남들 몰래 몇 번씩 휴직을 찾아보기도 했었으나 휴직을 했을 때 태어날 아이를 탓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는 입덧으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탓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내가 나의 무언가를 더 포기한다면... 난 나를 안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에 분명 아이를 탓할 것이 뻔했다.
결국 임신 8주~12주까지는 회사에서 모든 음식을 끊고 이동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식빵을 입에 넣고 있으며 끼니는 때울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이온 음료만 먹는 게 가능했던 상황으로 집에서 이온 음료를 싸와서 회사에서 먹을 양만큼 매일 가져왔다. 임신하기 전에 회식을 너무 좋아했던 나이지만 회식은 꿈도 못 꿀 지경인데 이 시기에 정말 고마웠던 것이 팀 분들이 인지하셨던 인지하지 않았던 간에 회식을 잡지 않았다. 최소한 회식에서 소외가 된다라는 생각을 느끼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여러 가지가 해소되지 않았고 점차 불안감에 휩싸였다. 출산은 도대체 언제 하는 것이며 그때까지 내 정신력이 버틸 수 있는 것이며 그 이후의 승진이라는 것을 바라볼 수가 있는 건지... 다행히 임신 전에 약 1여 년 정도 정말 추진하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계약 체결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오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 이 프로젝트에 집중해서 일하는 시점에는 입덧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에 몸이 무거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이 프로젝트의 미팅이 있는 날에는 나의 인생에서 성취감이라는 걸 줄 수 있는 이 마지막 끈을 놓기 싫어 쥐가 오는 다리를 붙들고 회사에 나갔다.
이게 계약 체결이 된다면 나는 아마 출산 휴가로 쉬는 3개월의 공백을 그 누구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에 몰입했고 임신이라는 게 입덧을 했지만 상대방 예비 파트너사에서는 내가 임신했다는 걸 바로 초기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입덧으로 인하여 키가 166cm인 내가 몸무게 45kg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어느 순간 스스로 정리를 했다. 이 시기에 내가 말하기 전까지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고 지지해 준 팀원들에게도 고마웠다. 나의 성향을 잘 알아서 나에게 먼저 와서 일을 정리하는 게 어떻냐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나는 할 수 있다며 지지해 주고 모든 순간을 그저 함께해 주었다. 나는 내가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프로젝트들은 메인 자리에서 멀어지고 후배들의 업무를 지원해 주는 서브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출산이 이제 꽤 멀게 느껴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상황을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는 겨를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속상했지만 내가 진짜 해내고 싶은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집중과 선택이라는 인류의 공통적 인생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덜 했다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와중에 법적 분쟁이 있는 프로젝트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점점 배가 불러와 나의 업무 개입도가 커졌다. 그 이유는 배가 불러오는 임산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어떠한 안건이라도 내 앞에선 부정적인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으니까...
당시 나는 방송 업계 쪽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임산부가 배를 쏙 내밀며 미팅 자리, 현장 어디든 쏘아다니는 모습은 안된다는 이슈들을 해결하기도 했고 또는 나의 삶을 응원해 주는 작가님도 생겨 같이 일하는 여성,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진 인맥도 생겼다. 다만 메인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끝까지 현장, 일의 현장에서 절대 빠지지 않았던 나는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밤 11시 이후에는 집을 들어가는 옵션지를 선택했고 그 뒤는 누구보다 든든한 나의 후배들에게 맡기고 나올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나의 아이를 위해서 했다고 하기에는 어불성설이다. 난 지금도 나와 나의 아이를 걸고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해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나를 위한 거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아등바등 모든 것에 붙잡았는데 한 걸음 떨어져서 필드에서 활약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했고 무엇보다 후배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부른 배를 만지며 해결사처럼 등장해서 어떠한 문제던지 해결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이 시기에 충분히 심취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승진을 잊게 되었다.
다만 승진을 잊었다고 해서 내가 일을 후순위로 놓거나 버렸다는 게 아니라 그저 승진을 잊고 오히려 일에 몰입하는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해도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입덧이 사라졌다.) 살짝 뒤로 물러나니 나와 조금만 타협하면 일의 다른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시기가 내가 승진과 출산 사이에서 고뇌하던 기로에서
그 어떤 사이가 아닌 나 / 일 / 아이 이렇게 세 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명확히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P.S. 나는 임신의 자잘한 신체 불편한 증상들을 모든 겪은 사람일 뿐. 절대 임신은 저와 같지 않아요. 정말 무던지 수월히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저랑 같은 증상이 있더라도 미비하게 겪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글을 읽고 지레 겁을 먹거나 오히려 더 일하면서 겪는 임신 기간에 두려움이 생긴다면 그렇게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어쩌면 뭐든 저렇게 집착했던 제 마음에 기인해서 제가 저런 증상들을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