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게 자식이라더니
이직한 회사에서 나름 차근히 자리를 잡고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아이 생각은 바쁘지 않았을 때의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야근과 갖가지 업무 이슈들과 싸워가며 하루들을 쌓아갔다.
아이를 가지기 전 여름, 나는 홍콩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사수들을 다 모시고 후배와 함께 넷이 가는 출장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원래도 해외 출장에 가면 제대로 잠을 들지 못하는데 현지 언론에 나가는 사수의 인터뷰 일정까지 겹쳐지니 긴장감이 최고치에 달하였다.
밤늦게 까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영업을 위해 새벽까지 현지 예비 비즈니스 파트너분들과 술을 마시며 성과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렇게 3박 4일의 출장에서 돌아오자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정도라고 생각했으나 2주를 넘어가자 무서웠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면역력 저하로 인하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자궁 경부에 감염되어 출혈이 난다고 했다.
바이러스가 있는 자궁 경부를 지지는 간단한 수술을 하게 된 나는 그동안 먹고 있던 피임약을 중단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까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일로 인해 수술 시간을 놓치게 되었고 병원 문이 닫기 전, 급하게 병원을 찾아가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자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기보다는 불편하겠지만 아예 못할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하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그렇게 혼자 간단한 수술을 받고 급하게 퇴근해서 집에 온 남편과 집에 돌아오고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들었던 순간은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내가 이렇게 일만 하다가 병에 걸려서 아이를 못 낳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로 인해 몸이 약해져서 오는 생각이지만 그날 하루는 그 생각이 날 잡아먹어 나는 남편을 등지고 누우며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에 젖어 갔다.
그 뒤 몇 개월간은 회복하는 기간을 가지며 피임약을 먹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그와 동시에 몸을 좀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큰 수술은 아니지만 수술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나의 몸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에는 바쁘더라도 요가 수업을 꼭 받으면서 운동을 했고 일을 하면서 속상했던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기들이었다.
여전히 나의 인생에서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그 순간들.
심지어 나는 회사의 팀 리더가 우리 팀을 격려해 주기 위하여 간 해외 워크숍에서도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며 동료들과 동료애를 다졌고 수영을 맘껏 하기 위해 끊었던 피임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그냥 우연히 정말 우연히 불현듯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모든 가임기 여성들이 그렇듯 이번에도 생리를 안 하는 불안함이 임신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하여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임신테스트기를 봤는데 이게 웬일.
두 줄이었다.
"오빠"
"어 왜"
"나 임신한 거 같아"
"나 지금 집게 갈게"
남편은 출근했던 회사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억이 정확히는 나지 않지만 남편은 날 보자마자 꼭 안아주며
"내가 육아휴직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 이 사람은 참 아이를 갑자기 가진 나의 당혹스러움의 근원이 되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우리 같이 병원을 가자. 내가 병원 검색해 봤어."
라고 말하며 둘이 손을 잡고 같이 병원으로 갔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출산까지 가능한 가장 큰 병원으로 가서 그날 어떻게 병원 접수했는지는 모르겠고 어느 순간 나는 의사 앞에 앉아있었다.
의사는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라면 임신이겠지만 한번 더 검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피임약을 먹었는데 괜찮은지 술을 많이 마셨는데 괜찮은지부터 물어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이미 그때부터 "엄마" 였던 것 같다.
엄마가 아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건강을 물어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리오주인님 이 시죠? OO병원입니다. 임신이고 4주입니다."
이미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뒤라 임신이라는 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서로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우리 둘은 마주 않아 각자 직장으로 출근해서 상사와 면담할 내용들을 기반으로 우리가 결정할 사항들을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 부부는 오후 사무실 출근을 했다.
이미 생명으로 찾아온 우리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난 사무실에 가자마자 나의 임신 소식을 동료들에게 알렸다.
(혹시 모를 일이 있을까 봐 회사에 공식적으로는 12주 이후에 알렸다.)
그리고 오후 4시. 나의 상사가 카페로 나를 불렀다.
"리오주인님아, 너라면 이미 남편하고 어느 정도 이후 일을 다 이야기하고 왔을 거라고 생각해. 맞지?"
"네, 선배님."
"그래. 너와 너의 남편은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니?"
"선배님, 전 육아 휴직은 쓰지 않고 출산휴가만 쓰고 사무실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그의 살짝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제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 그렇구나. 그래 너도 남편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네, 그리고 제가 내년에 승진연차인데요."
"응 그렇지."
"전 내년에 승진하고 싶고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임신이어서가 되기는 싫어요."
"너라면 당연히 그렇지."
"그래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승진에 절대 누락되지 않도록 일을 할 예정입니다."
나를 오래도록 봐온 선배는 긍정의 눈빛으로 날 쳐다봐줬다.
'너 다운 결정을 했다.'라는 생각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눈을 볼 수 없지만 아마 나는 확신에 차 있었을 것이다.
정말 확신에 차 있었다기보다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일부러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의 불안함을 가리고 싶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무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