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나의 그날
임신 34주를 넘어가자 내가 봐도 나의 배는 아이가 언제 태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의 태동이 너무나도 활발해 아이의 뱃속 발차기에 눈물을 훔치는 날들도 있었다. 잘 때마다 오는 다리 쥐로 인하여 숙면이 뭐죠?라는 상태가 되었고 소화불량이 너무 오래되어 어떠한 음식도 나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계속했다.
미리 들어가서 쉬라는 주변 지인들의 권고도 있었으나 난 늘 웃으며 꿋꿋하게 나갔던 것 같다. 다만 나간 이유가 월급이나 커리어 때문은 아니었다. 이전화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임신 어느 순간부터 임신과 커리어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나간 것은 정말 만일의 응급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봤는데 아이러니하게 응급상황에서 빠르게 대처를 당할(?) 수 있는 것은 회사였다. 회사에는 다년간 나를 알고 나의 컨디션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선후배들이 있었고 가정에 아이가 있는 선배님들이 있어 나보다 더 응급상황에 밝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혼자 있어서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남편을 부르는 시간보다는 회사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와 아이를 위한 처치들이 더 신속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 같다.
그러던 중 임신 36주가 되자 아이의 태동이 미비해졌다. 담당 의사는 진료 날짜를 다시 잡고 그때는 출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유도 분만을 하자라고 이야기 주었다.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고 생각보다 아이가 빠르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안을 떨쳐 낼 수 있었던 건 업무 시간에는 일에 몰입하면서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 온전한 몰입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전까지는 가진통을 어떻게 느껴?라고 생각했으나 내 몸으로 직접 오는 그 고통은 가진통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새벽에 남편을 깨워 얼른 가진통 주기를 체크해 보니 10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 3분 간격이 될 때까지 버텨보자 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날 뜬 눈으로 출근을 했다.
내가 가진통 상태라는 걸 회사에 인지했으나 태연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가진통 상태에서도 업무 미팅, 서류 작업, 시사회 참여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보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상을 보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진통이라서 10분마다 오는 고통에 나의 온 신경을 집중하느니 가진통이 오지 않는 순간들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출근하기 전, 가진통의 주기는 5분 주기였다. 남편에게 오늘은 정말 낳으러 갈 수 있겠다고 단단히 일러두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로 출근했다. 나 또한 내가 언제 낳으러 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며
"오늘은 진짜 낳으러 갈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를 했고 다른 사람들은 여느 날처럼 웃으며 나의 진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오후는 내가 담당하던 작품의 사전 시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찾아오는 가진통에 나는 애써 '우리 아이가 음악을 좀 아네'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작품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어느덧 퇴근 시간인 6시가 다가왔다. 그동안 틈틈이 인수인계를 하긴 했지만 가진통이 3분 단위 근처로 오니 인수인계를 더 해줄 여유는 없었다. 에코백 안에 마지막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 계약서들을 구겨 넣으면서 후배에게
"전화로 마무리 인수인계 해줄게!! 미안해!!"
라는 말을 남겨놓고 나는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남편은 이미 집에서 퇴근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디서 아기 낳기 전에 소고기를 꼭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는 글을 본 나는 남편에게 전화로
"버거킹 시켜놔!! 소고기 먹어야 된데!!!"
라며 당당히 저녁메뉴(?)를 주문하는 여유를 부렸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와퍼주니어세트를 먹으며 병원 분만실에 전화하여 진통 3분 간격인데 지금 당장 분만실로 가도 되냐는 질문을 쏟아내었다. 다만 음식을 다 먹은 뒤에 전화 통화를 할 여유는 없어서 나는 쩝쩝 거리며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간호사에게는 그런 내가 거짓말을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산모님, 지금은 아니신 거 같아요... 어? 산모님, 지금 병원으로 오세요!!"
간호사는 나와 통화를 하던 중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유는 진통이 오는 순간 나는 먹는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아픈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주기로 간호사가 나의 진통 주기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았다. 나는 미리 챙겨놓은 출산 가방을 남편과 챙겨 들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들어가서 분만대기실에 들어가니 오후 10시. 나는 그제야 회사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 오늘은 진짜 아이 낳으러 왔습니다.
라는 카톡을 남겼다. 다들 반응은
- 드디어
- 그게 오늘이라니
- 드디어 오늘 낳으시네요
뭐랄까. 이미 나의 출산이 빨리 오길 바랐던 사람들의 느낌이었다.
진통 2시간 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우리 엄마의 유전자를 믿었으나 엄마의 유전자는 내 안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나는 진통 20시간을 겪었다. 중간부터는 무통 주사 천국을 맛보며 다음날 오전에는 가방에서 구겨 넣었던 계약서들을 꺼내며 후배에게 전화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정신이 있냐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무통 주사의 효과가 좋은 편이었는데 무통 주사 이후에는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 유선상 인수인계를 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5시 30분.
나는 시사회를 뚫고 와퍼주니어세트를 먹고 인수인계를 넘어 드디어 우리 딸을 품에 안을 수가 있었다.
P.S.
내가 이렇게 나의 그날을 세세하게 적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는 이날 이후 회사에서 정말 유명인사가 되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출산 당일에 정상 출근, 퇴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뭐랄까. 복직 이후에는 나의 인생 우선순위가 커리어라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글을 찬찬히 읽은 분들은 아실 것이다. 이 날 그 어디에도 커리어는 없었다. 그저 나의 평안, 안정을 중요 순위로 넣고 선택한 나의 행동들일뿐. 그 선택이 남들과 조금 달라 결과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