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보다는 나의 하루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임신 기간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입덧과 함께 반주를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나는 임신 직전에는 술 마시는데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고 야근을 하더라도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반주를 함께 하는 것이 소소한 나의 일탈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입덧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고 만삭과 함께 날이 더워오면서 내 몸의 체온은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체온으로 바뀌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상황과 날씨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하게 떠오르지만 임신 기간으로 나는 임신하던 그 해 여름은 단 한 잔의 맥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단순히 술을 마시고 싶다기보다는 임신 기간에 묵혀있던 갈증들을 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나는 아이를 낳는 그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이야 말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시원한 맥주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겠다고.
그리고 드디어 20시간의 진통을 통해 40주의 입덧 지옥을 탈출하고 울렁거림에서 벗어나자 그야말로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시원한 무언가를 먹고 싶은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출산 당일은 피로감과 함께 몸이 힘들어서 그날 하루를 그렇게 보냈지만 그다음 날이 되자 허기짐은 갈수록 더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신생아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 산모님, 모유수유하러 오세요~
- 네...?
모유가 아기에게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모유수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훨씬 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임신 10개월은 오롯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내가 아이를 품고 있는 것 외에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 난 이후는 나에게는 주어진 선택지들이 있었다. 남편은 나의 선택을 따른다고 했고 나는 분유를 먹이는 것을 선택했지만 병원에서 나에게 모유수유를 하러 모유수유실로 오라는 전화가 나에게는 상당히 익숙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화법이었다. 전화를 받은 뒤 남편과 잠시 고민을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한번 보고 나서 결정을 해보라고 이야기를 주었다.
모유수유실에 내려가서 아이를 안아보자 신생아실 유리너머로 봤던 것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따뜻했다. 내가 엄마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내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잠들고 있었다. 모유수유실에서 다른 엄마들은 모유수유에 열심히였다면 나는 모유수유 하는 척(?) 아이를 맘껏 안아봤다. 킁킁거리면 맡는 아기 냄새는 내가 맡았던 세상의 그 어떤 냄새보다 가장 포근하고 귀엽고 따뜻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난 그 향을 맡기 위해 모유수유실을 2박 3일 내내 갔지만 모유수유를 한다는 개념보다는 내 아이를 안고 있고 싶었고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후, 조리원으로 이동을 하면서 나는 남편과 모유수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론은 기왕 시작한 김에 초유는 먹이면서 맘껏 아이를 안아보고(?) 일주일이 지나면 분유로 바꾸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출산휴가 이후 복직해야 되기 때문에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렵다고 판단이 되었고 남편 또한 아이를 먹이는 일에 있어서 같이 분담하고 싶다는 의견이 컸다.
조리원에 입소하자마자 며칠간은 모유수유를 하지만 그 뒤는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조리원 부원장샘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난 뒤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함께 곁들인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그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40주를 참아온 나에게 참으라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마치 리오주인임을 포기하고 엄마로 살아라라는 이야기로 같았다.
물론 나는 출산과 함께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이면서 나를 지키고 싶었기에 모유수유가 아닌 다른 옵션 지를 선택했다. 물론 모유수유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유수유를 하는 일이 꼭 나를 지키지 않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지만 늘 하루를 내가 가진 100%를 모두 쏟으면서 사는 나에게 모유수유까지 오는 것은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모유수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 내가 분유를 먹이기도 했지만 남편과 함께 있는 때에는 남편이 직접 먹이며 오히려 분유 수유에는 나보다 더 탁월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P.S.
나는 마지막 모유수유는 아이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 쨰에 마무리가 되었고 조리원을 나가자마자 단유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단유를 하자마자 시원한 아이스 카페라떼를 먹었고 조리원에서 나오자 어느덧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껴 있어 쌀쌀한 바람이 불어 아이를 낳고 2주 만에 따뜻한 오뎅탕에 시원한 소맥을 남편과 함께 겻들였다. 여름 날의 더움과 답답함이 가시는 선선한 바람과 같은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