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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20. 2020

2020년 여름이었다

올해 여름 도둑, 코로나와 장마

“워터파크도 못 갔는데 가을이라니!”


부쩍 선선해진 아침 날씨, 근 3주만에 유치원에 가는 첫 아이가 말했다.


“작년에 유치원에서 워터파크 갔을 때 진짜 좋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간대. 코로나 싫어! 가을 싫어!


올해 여름은 영 서운하다. 그 흔한 물놀이 한 번 못했다. 작년엔 마르지 않은 래시가드를 입는 게 일이었는데, 올해는 수영복 한 번 못 입고 여름이 끝나고 있다. 풀빌라나 사람 없는 해수욕장이라도 찾아서 다녀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든 건 요 며칠 전부터였다. 올여름엔 더위가 늦게라도 올 줄 알았는데, 이대로 오지 않고 그냥 가버릴 모양이다.


더위를 별로 안타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어도 꽤나 여름을 즐기는 다. 짧은 옷을 입을 수 있어서 좋고, 좋아하는 국수(콩국수, 비빔국수, 냉면, 메밀소바 모두 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다. 수영장의 물속에 떠 있는 것도 즐긴다. 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 여기가 우주 같기도 하고 무릉도원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내게 이번 여름은 덥다고 생각한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였다.


매년 여름방학이면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일주일쯤 지내다 왔다. 집 앞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밥 먹고 그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수영을 하다 물속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까먹고, 옆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에서 블루베리를 따다 오후 4시쯤 들어와 TV EBS 만화를 실컷 보는 게 첫째 아이의 여름의 낙이었다.


이번 여름엔 친정에서 닷새쯤 머물렀는데, 하도 비가 와서 밖엔 나가지도 못했다. 마당의 블루베리 나무에서 다 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장마가 아이들의 '외갓집 로망'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하긴 장마만이 여름을 빼앗아 간 건 아니지. 올해 여름 도둑으로 치면 코로나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여름이 가나보다. 항상 긴긴 무더위가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 이제 가을이 오나보다 하고 좋아했는데, 올해 여름은 영 보내주고 싶지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오는 게 즐겁지만은 않은 걸 보면 서운함이 큰가 보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아이캔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2020년은 미술시간에 그리던 미래도시와 날아다니는 우주선 같은 자동차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2020년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생각해보면 이건 좀 어릴 때 생각한 미래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바이러스의 출몰)와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그치지 않고 내린 장마만이 기억에 남았다. 평생 올해 여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후루룩 냉면 그릇 비우듯 사라진,

2020년의 여름이었다.



브런치 : @rubisujung

인스타그램 : @rubi_su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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