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 얘길 정리하고 싶어 작년부터 꾸준히 써 둔 글을 올립니다.
아빠는 자주 누워 계셨다. 어쩜 그렇게 흰머리만 두고 검은 머리만 죄다 빠졌는지. 듬성듬성한 머리 탓에 아빠는 전보다 더 아파 보였다.
아빠가 손주들을 보면 더 기운이 난다거나 어떤 의욕 따위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히 내 기대일 뿐이었다. 아빠는 그저 뜨뜻한 바닥에 누워 항암 뒤 속이 좋지 않은 지금을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견디고 있는 아빠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이다.
"항암은 소주 3병을 마시고, 숙취에 몸살감기가 오고 떡 먹고 체했는데 누가 길 가다가 나를 밟은 느낌"이라고 난소암으로 항암치료를 했던 홍진경씨가 말한 적이 있다. 항암은 그 정도로 힘들단다.
아빠의 항암을 어렴풋이 힘들 거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녀의 비유는 그 힘듦의 정도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아빠는 항상 괜찮다고만 하니까.
첫째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방학을 시작하자 나는 일주일만 넘겨보자 생각했었다. 뭘 하려고 하기보단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셈이었다. 그러다 엄마 밥이 있는 친정으로 방학을 떠나 피신을 왔다.
아빠가 누워 견디는 시간은 얼른 나아 보통의 날을 찾기 위함일 텐데, 나는 그 하루가 그저 빨리 흘러가길 바라고 있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 적이 있다.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어도 모르겠더라. 하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은 일일 테지. 그러니 그 많은 철학자가 여전히 몰두하고 있겠지. 철학자나 작가의 사색의 결과보다 누워 있는 아빠의 모습이 나를 더 철들게 한다. 내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야겠다.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뭐 그리 대단히 열심히 살아야겠다기보다는 그저 흐르기만을 바라지는 말아야지.
그냥저냥 사는 것 말고,
살아지는 것 말고 살아야겠다.
능동적으로 말이다.
하루에 충실해야지. 그저 그렇게 넘겨 버리지 말아야지. 그러지는 말아야지. 그저 살아내는 것 말고 하루하루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겠다.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꽤 괜찮은 하루였다 말할 수 있는 그런 매일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