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Sep 20. 2022

"아버님, 3개월 남으셨습니다."

그 말은 끝내 전하지 못했다

*올 초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 얘길 정리하고 싶어 작년부터 꾸준히 써 둔 글을 올립니다.


아빠가 많이 안 좋으시다. 아빠가 항암을 시작하신 지 1년이 넘었는데 여태는 그래도 암이 커지지 않고 있다고 해서 괜찮겠지 하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다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1년여 동안 나빠질 경우에 대한 생각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진심 그랬다.


내 탓이다. 누군가는 어떤 일이 닥치면 최악의 상황까지 미리 생각을 해 둔다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뭐든 닥쳐봐야 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지금의 아빠 상황이 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야 나쁜 상황을 예상하다 다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구태여 끄집어내는 중이다. 1년 전부터 미리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다면 달랐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버님, 3~4개월 남으셨습니다." 지난 금요일 의사는 CT 결과를 함께 보며 설명하다가 잠깐 아빠를 나가시라고 한 뒤 엄마와 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꼭 맞진 않지만 경험상 그렇다고. 밖에 아빠가 있으니 엄마와 언니는 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애써 참아냈겠지.


밖에서 아빠가 들을 텐데 어떻게 울 수가 있겠어. 꾹 참을 수밖에. 여태 맞던 항암주사가 들지 않아 입원해서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한다고 해서 의사만 만나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셨다. 내게 그 말을 하는 언니 말을 듣고 나도 울 수가 없었다. 서재방에서 누워계신 아빠가 들을까 봐. 꾹 참고, ㄸ 참고 연신 눈물만 닦아냈다.


아빠도 의사가 잠깐 나가 계시라고 했을 때 안 좋아졌구나 생각은 했다고 했다. 근데 여명이 3~4개월이란 건 아직 모르신다. 엄마는 절대 아빠에게 그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얘길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얘길 들으면 아빠가 희망마저 놓아버릴까 봐. 그래서 우린 더 그 말을 하기가 겁났다.


입장을 바꿔보았다. 나는 내 인생이 3~4개월 남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얘길 해줬으면 좋겠다. 언니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근데 그게 우리 아빠라서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3개월 남았대'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빠가 그 얘길 들으면 우실까?

안 우실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아빠는 원래 그렇게 무던한 사람이다. 평생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화 한 번 안 내고 사신 분. 웬만한 말엔 그냥 "그려~" 하고 대답하는 사람. 그래도 아빠의 인생을 아빠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말씀은 드려야겠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말씀드리는 걸 결사코 반대하셨다. 그래서 결국 말씀드리지 못했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친정 집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가 직접 지은 집. 아빠가 직접 설계하고 시멘트 부어가며 만든 우리 집. 그 집 짓고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때 아빠 나이가 몇 살이었냐면 마흔한 살. 올해 마흔다섯인 내 남편보다 그때의 아빠가 더 젊었다. 아빠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쏟아진다.  


사람 잘 따르는 우리 집 둘째. 손주들 중 외할아버지를 젤 따랐다. 외할아버지가 왔다고 하면 엘리베이터에 내리면서부터 할아버지를 부른다. 누워 계신 아빠 옆에 가 같이 누워 이불 덮고 눕는 아이. 얘 이제 6살인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혹시 외할아버지를 기억 못 하면 어쩌지?



첫째는 좀 크니 기억할 것도 같은데, 둘째가 젤 잘 안기는 손주라 얘는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를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다음날 다시 입원하시기 전, 아이들과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찍어뒀다. 계속 사진 찍으면 또 왜 그러냐 눈치채실까 봐 그러지는 못하고.


뭔가를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는데 그래도 살아야 하니 하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둘째 유치원을 보내고, 첫째랑 책을 읽고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다시 저녁을 하고 씻겨 재우는 일. 하던 일은 하는데, 그냥 하는 거다. 안 할 수는 없으니.


자주 집에 내려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주 찾아뵙는 일뿐.

작가의 이전글 흘려버리는 하루가 미안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