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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26. 2022

안녕 사랑하는 우리 아빠

지난 2월 18일 아빠가 돌아가셨다. 설 즈음 분명 여생이 3~4개월이라고 했는데, 아빠는 채 3주를 넘기시지 못했다. 항암을 하러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입원이 길어졌다. 간호간병실에 배정되는 바람에 보호자 없이 입원하셨는데, 입원 다음날 의사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연락하면 너무 놀랄까 봐 딸인 내게 전화했다고. 아빠의 상태를 얘기하셨다. 내일 아침 회진 도는 시간에 병원에 와서 얘기를 하자고. 그 얘길 듣고 철렁한 가음을 안고 한참 울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빠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냥 이런저런 얘길 에둘러하고는 내게 복도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그리고 말하셨다. 아빠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 이번 입원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장기 중 콩팥의 기능이 멈추는데, 지금 아빠의 경우 콩팥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 좋아지셨다'와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이 말들엔 분명 차이가 있다. 나는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전자일 거라고 마음을 먹고 갔는데, 그것보다 더한 이야기를 들으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일단 들어가서 다시 아빠를 뵙고, 아빠 옆에서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했던 것 같다. 다시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복도 끝에 서서 의사의 말을 전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수화기 너머 엄마도 울고 있다. 엄마는 이번에 올라가시면 입원이 길어질 것 같았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고. 


"일단 엄마가 올라와야 할 것 같아" 엄마에게 말했다. 일단 바로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내일 오전에 동생하고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아빠 혼자 둘 수 없으니. 다음날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올라왔고, 얼마 전 같은 병으로 이모를 떠나보낸 이모부도 함께 오셨다.

 

테트리스 같이 빡빡한 의사의 스케줄에 어렵게 면담을 잡아 잠시 의사를 한 번 더 뵐 기회가 생겼다. 아빠 상태를 여쭙고 하다, 지금이 아니면 아빠가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선생님, 저희 아빠 오늘 퇴원해도 될까요? 오늘 아니면 집에 하루도 못 계실 것 같아요. 왔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기시더라도 일단 집에 갈게요. 아빠가 집에 가고 싶다고 계속 그러셨거든요."  


잠시 고민하던 의사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실 때 이동하시는 게 좋겠어요. 단, 집에 이틀 이상 머무시면 안 됩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다. 우린 그렇게 급작스럽게 퇴원을 결정했다. 하루라도 아빠가 집에 계시려면 수요일 오늘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금요일 요양병원을 예약을 해둔 상황이었으니까. 동생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동안 아빠는 꽤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아빠는 그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셨고, 집에 와 계시던 고모와 작은 아빠는 집에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한참 아빠를 보고 가셨다. 


다음날 나도 짐을 꾸려 친정집으로 향했고, 주말도 없이 일하던 셋째도 아빠를 보러 왔다. 그날 아빠는 밥은커녕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내가 아빠 퇴원을 하자 해서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 무거웠다. 아빠가 집에서 아파하시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빠가 집에 계시던 하루 반나절 사이, 수요일 저녁엔 부축하면 걸어서 화장실에 가시던 아빠가 다음날엔 기어서 가시고, 목요일 밤엔 기어가서도 일어서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걸 보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밤새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몇 번 깼던 아빠를 부축하던 샛째 동생은 아침에 울며 내게 말했다. 아빠 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다고. 화장실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일어서시지도 못한다고. 어제 모인 작은 아빠, 고모,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는 아빠가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자고 얘길 했었는데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아빠를 보며 내가 잘못했다 생각했었다. 그냥 퇴원하지 말걸. 요양병원에라도 갔으면 덜 힘들었을까 하는 후회를 하며. 동생의 얘길 듣고 언니에게 전화하자 언니는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내려왔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수요일 저녁 집에 오신 아빠는 하루 반나절을 아빠가 직접 지은 우리 집에 계시다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요일 오후 돌아가셨다. 고모와 작은 아빠, 아내와 4명의 자식과 사위 그리고 손주가 모두 지켜보시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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