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의 일입니다. 췌장암으로 지난해 이모가 돌아가셨고, 올 초 같은 병으로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 얘길 정리하고 싶어 그동안 써둔 글을 올립니다.
이모는 아빠와 같은 병으로 같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계셨다. 이모가 암에 걸리셨단 걸 안 건 아빠가 의사로부터 큰 병원을 가보시란 얘길 듣고 난 뒤였다.
아빠는 그 얘길 듣고 이모부께 전화를 했다. 같은 병이었고, 이모 담당의를 예약해서 검사를 한 뒤 항암을 시작했다.
이모와 아빠는 종종 입원 기간이 겹쳤지만, 코로나로 보호자 1인 외에는 면회가 안되기도 하고 코로나로 서로 조심해야 하는 때였으므로 나는 이모 얼굴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아빠도 이모가 좀 나아지면 보라고 하셨기도 했고.
그리고 갑자기 이모가 위독해지셨다. 투병한 지 1년 여가 됐을 때의 일. 외할머니는 이모가 암에 걸리셨단 걸 이모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이셨다. 외할머니가 1년 만에 이모를 본 날, 이모는 엄마와 언니들을 본 뒤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그리고 그 주 목요일 이모의 마지막을 위해 외할머니와 이모 7남매가 모였지만 누구도 곁을 지키지는 못했다.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았을 뿐.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은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그날 아빠가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고 계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아빠가 환자복을 입고 계셨으니까.
이모는 한 번의 고비를 넘긴 뒤 그 주 수요일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딸의 장례식장에 오시지 못했다. 아들 딸들이 거기까진 오지 말라고 한사코 말렸다고 했다. 외숙모 말에 의하면, 외할머니는 집에서 식사도 안 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모 장례식장에 모인 우리 4남매는 외할머니에게 더 일찍 알리는 게 좋았을까 하는 얘기도 했지만, 그것도 나은 답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눈이 벌게져 우는 엄마에게서는 다른 이모들보다 더 큰 두려움이 느껴졌다. 여태는, 아빠도 치료를 잘 받으시면 괜찮을 거라고 긍정적인 생각만을 했다면, 이모의 죽음을 보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지. 나는 그래도 우리 아빠는 다를 거라 믿었다(그때는 그랬지....). 그 와중에 아빠 걱정을 하는 나도 참 이기적이다.
1년 동안 이모의 항암치료를 혼자 감당하셨던 이모부는 제 손을 잡고 울면서 말씀하셨어요. "아빠는 이겨내실 거라고 걱정 말라고." 그 얘길 들으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모부께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참이나 어린 조카가 이모 장례식장에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아 끝내 삼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
장례식장에 가면 흔히 하는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찾아본 적이 있다.
'삼가'는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정중하게, '명복'이란 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을 말한다. 이승에서의 삶이 끝나면 정말 저승의 삶이 펼쳐질까? 내가 죽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혹 그런 게 있다면 이모가 그곳에서 부디 복 받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다들 이런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인 빕니다'하고 말했던 거구나.
항상 곱고 친절했던 이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