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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17. 2019

서른 여섯이 되도록  진로 걱정을 할 줄이야

일하는 여성은 어떻게 주부가 되어 가는가? ··· 그럼에도 일하고 싶다

‘앞으로 뭘 하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자 나는 이 고민을 시작했다. 36살이 되도록 진로 고민을 하게 될 줄은 20대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쯤은 뭔가를 이뤘을 줄 알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과 직장을 결정하면 내 앞길은 그에 맞게 물 흐르듯 걱정 없이 흘러갈 줄 알았다. 순진했다. 물론 그때 사람들은 ‘평생 직장도 평생 직업도 없다’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얘길 하고 했지만 나는 그게 남 얘긴 줄 알았다. 평생 진로를 고민하며 살 줄이야······.


첫 직장을 결정할 때 나는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가와 내가 그것이 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이 있었지만 그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다행히 그 문은 어렵지 않게 열렸다.


나의 첫 직업 기자는 정말 죽도록 술을 마시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고민하고 글을 쓰며 술을 마셨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악으로 버텼다. 그렇게 몇 년이 계속되자 매일 밤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어느 날 송년회 회식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기절까지 하고 말았다.


이대로 일을 계속하다간 죽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며칠 전 기절까지 한 나의 퇴사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몸도 몸이지만, 사회를 바꾸겠다는 불타는 가슴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잡아먹은 지 오래였다. 직장도 직업도 모두 의미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의 난 너무 지쳐있었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직업을 바꾸기로 했다. 덜 치열하되, 재미있는 일을 안정적으로 했으면 했다. 두 번째 직장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방송 등의 콘텐츠 기획 및 유통에 관한 일이었다. 졸업 시 성적에 따라 원하는 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번듯해 보여서 선택한 두 번째 회사는 실상 다녀보니 껍데기뿐. 이런 회사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타의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게 됐을 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 둘 당시엔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당장 얼마간은 쉬어도 겠다는 마음이 컸다. 이미 결혼을 한 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 같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쉬는 것도 불안하다. 이대로 집에 눌러앉을까 봐 걱정이 됐다. 내 나이 서른 즈음의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면 끝날 줄 알았던 진로 고민은 끝도 없이 계속됐다.


앞으로 뭘 해 먹고살까 고민하던 차에 세 번째 직업을 만났다. 첫 직장 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일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회사 1위도 했던 곳이었다. 나는 적당한 업무량에 적당한 책임감이 따르는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회사 회원에게 일주일에 한 번 보안 관련 레터를 발행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글을 작성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끌어안고 살던 과거의 나를 잊고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길고 긴 터널 같은 육아가 시작됐다. 첫 아이가 돌 즈음이 되자 회사에서는 다시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다.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할 것 인가. 아니면 일단 아이를 보면서 후일을 도모할 것 인가. 고민이 깊었지만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기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제안은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집에서 일을 받아서 하기로 했다.


재택근무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낮엔 아이를 보고 밤에는 자아실현을 했다. 일을 했다기보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주는 만족감이 더 컸다. 그 일은 둘째 아이 낳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게 34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만두면서 내 경력도 뚝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긴 육아의 터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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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정신없이 돌보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니 내 안의 뭔가가 또 꿈틀거린다. 뭔가를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이 둘 있는 36살 여자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다시 또 진로 고민이 시작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출산 전에는 어떤 일을 하던지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나와 함께 아이들을 중심에 함께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취직 한번 하면 평생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내내 진로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남편 역시 이직을 고민하고, 평생 직업 걱정하지 않을 것 같은 공무원 교사 언니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70이 다 된 아빠조차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보면 아주 많은 이들에게 이 고민은 평생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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