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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17. 2019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일이 안 풀리던 날, 유재하의 노래를 듣다 문득

오늘 아침부터 뭔가 안 풀린다 싶었다. 어젯밤 9시도 전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못 일어나는 몸이 시작이었다. 온몸이 쑤셔왔고 발은 돌덩이 같이 무거웠다. 휴일이었던 어제도 오후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잠이라도 푹 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잠으로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남아 있었다.


일단 아이들 등원을 마친 뒤 바윗덩어리 같은 발부터 어떻게 해야지 싶었다. 그래! 발 마사지를 받아보자. 인터넷으로 10시 30분 발마사지샵을 예약을 했다. 서둘러 집안일을 마친 뒤 늦지 않게 샵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약자 명단에 내가 없단다. 예약 신청은 됐지만 확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전엔 이미 예약이 차서 마사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발만 좀 풀면 나을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가게를 나왔다.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다 올라오는 길에 본 다른 층 마사지샵이 생각났다. 일단 가보자. 여기도 오전 예약은 다 찼다. 대신 1시엔 가능하단다. 1시면 아이들 하원 시간 전에 들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 예약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을 보니 10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1시까지 뭐하지? 고민하다 근처 서점에 가기로 했다. 서점 건물에 도착하니 10시 40분. 서점이 점점 가까워지자 뭔가 기분이 싸하다. 서점 오픈 시간이 11시였던 거다. 돌 같은 발로 닫힌 서점 앞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다.



다시 ‘어쩌지?’ 하는데, 건너편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플랫화이트가 맛있는 집. 그래! 일단 저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후일을 도모하자. 커피를 주문한 뒤 자리를 잡았다. 곧 예쁜 커피잔에 커피가 나왔다. 아! 이 커피 한 잔. 이거면 됐다. 서점의 11시 오픈 시간이 더 이상 야속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서점에 갔다. 1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책과 문구를 구경하다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골라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내 마음 같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한수희 작가의 ‘온전히 나답게’라는 책이다. 하고 싶은 일(책을 내는 일)이 있어서인지 서점에 가면 에세이 가판대 앞을 서성이곤 하는 내가 처음 본 책이었다. 8쇄나 찍었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계산을 한 뒤 서점을 나왔다.



어라, 갑자기 웬 비가 내리고 있다. 또다시 ‘어쩌지?’ 마사지샵은 바로 옆 건물. 오래 올 비는 아닌 것 같은데 비가 그치길 기다릴까? 아니면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살까? 그것도 아니면 잠깐인데 비를 맞을까? 세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달리느라 신발이 좀 젖었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1시 예약시간에 맞춰 마사지를 받았다. 정말 몸이 풀렸는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에 얹어진 돌덩이를 내려놓은 마음이다. 하루 종일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었는데 어쨌든 목표한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돌아오는 차 안, 노래가 흘러나왔다.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 1집 참 많이 들었는데 오랜만이다. 생각 없이 따라 부르다 가사가 내 마음에 와 박혔다. 특히 이 부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노랫말에 마음을 두지 않고 부를 때는 몰랐는데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단 말인가.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중에서 -



그래, 달리 보면 그만인 거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오전 예약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않았나. 그 서점 또한 11시에 문을 연 덕에 오랜만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또 비록 비는 왔지만 다행히 맞고 걸 수 있는 만큼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예약이 꽉 찬 발마사지샵 덕분에 더 나은 마사지샵에서 돌덩이와 함께 묵은 피로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 없는 6번의 주말을 보냈지만, 이제 한 주만 더 버티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


오늘 되는 일이 없다 생각했는데 달리 보니 전부 좋은 일이었구나. 요즘 내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던 참이다.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우나 싶었는데 가사처럼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그려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더욱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유재하 1집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의 정규 첫 번째 음반이자 유고작이다. 1987 서울음반에서  발매되었다. 음반에 담긴 여러 노래들은 유재하 본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작곡, 작사, 편곡을 혼자서  '음악적 자주(自主) 완전 실현' 일궈낸 기념비적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네이버 바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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