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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n 10. 2019

더 이상 내가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흔하지 않은 부부싸움의 단상

나와 남편은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한 번, 결혼하고 한 번 정도가 전부다. 22살에 만난 남편과 6년을 연애를 하고, 지금 8년째 같이 살고 있으니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맞지 싶다.

 

우리의 첫 번째 싸움은 남편이 같이 운동을 하고 싶다며 내게 탁구를 권하면서 벌어졌다. 나는 탁구를 배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때 내가 탁구를 배우지 않은 걸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전혀 아쉽지 않다. 우리의 두 번째 싸움은 첫째가 돌 즈음 돌발진에 걸렸을 때인데 며칠간 고열에 짜증만 부리는 아들을 보다 내가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그럴 일은 아니었는데. 그 일은 후에 남편에게 사과했다.


http://www.freepik.com


그런 우리에게 그날의 언쟁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남편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겐 너무 아픈 칼이었다. 
 
그날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하원한 아이들을 데리고 첫째 아이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6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6시 전에 들어와 저녁 식사 준비를 했을 텐데.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갔다 오느라 힘에 부쳤고, 시간이 늦어진 만큼 나는 마음이 급했다. 곧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김경수 지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응 오늘 구속됐더라” 남편은 격앙된 목소리로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길 늘어놨다. 그는 나와 함께 이 사안에 대해 얘기하며 분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지금 그것보다 아이들 저녁식사가 먼저인데. 나의 “구속될 거 같긴 했어” 이 한마디에 남편은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얘기하는 거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느냐”며 이 말을 남기고 입을 닫아버렸다.
 “이제 너와 이런 얘긴 안 해야겠다”
 “뭐라고?”
 갑자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나는 정치문제에 관심을 끊은   됐었다. 뉴스 속에서 기사를 쓰다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천천히 관심을 덜며 발을 뺐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는 더했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는 건 핑계지만 정말 그랬다. 집에 TV가 없으니 뉴스를 보지 않은 날이 오래되었고, 핸드폰으로도 자연스럽게 뉴스 기사를 읽지 않게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일이 버거운 육아의 나날 속에서 그런 뉴스를 보며 분노하는데 나의 에너지를 쏟을 상황이 못됐다.
 
 “이제 나랑 이런 얘길 안 해야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녁 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그리곤 우리의 긴긴 대화가 시작됐다. 남편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아이들 보느라 힘든데 그런 문제에 관심 둘 여유 없다는 거 아니 이제 자신이 포기하겠다고 했다. 변화된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닐 터. 그런데도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다.


http://www.freepik.com

 내가 남편을 만난 건 학보사 기자를 그만두고 야학을 찾았을 때였다. 그 이후에도 나는 직업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래서 내가 좋았다고 했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던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이과생이던 남편 주위 사람과는 할 수 없던 일을 나와 함께 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분노할 줄 아는 시민이 되어갔다.


그러고 보면 결혼 즈음 내 친구들이 남편에게 나의 어디가 좋았냐고 물었을 때 남편은 내가 개념이 있어서 좋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생각했다. 예비 신부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 같은 대답을 예상했는데. 개념이라는 말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였다. 그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걸 결혼 8년 차가 돼서야 이해했다.
 
그런 그가 이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나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바꾸라는 것도 아니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뭔가 포기하는 사람의 서운함을 나는 읽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뭐랄까.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말 같았다. “나는 네가 예뻐서 좋았어. 근데 지금은 늙어서 예쁘지가 않네. 네가 늙은 건 이해해. 더 이상 예쁘길 바라지는 않을게.”
 
다 이해한다는 남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해는 해도 이제 그 부분을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에 어쩐지 내 한쪽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변화된 상황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을 놓아버리면  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내가 변한 걸까?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변해야 하나?

아니면 인정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누군가 나를 토닥이며 말해줬다. 나의 상황이 바뀐 것이지,내 본질이 바뀐 건 아니라고. 괜찮다며 아이 키울때 다들 그렇다고 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자라서 엄마의 손길이 덜 갈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말이다. 다시 변할 필요가 없다는 그 위로가 내겐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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