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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31. 2019

17년 만에 그 아이를 만났다

넌 특별할 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아이 엄마가 됐구나

그 아이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봤으니 햇수로 17년 만이다. 하지만 나는 첫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 여름방학을 보내러 친정에 왔다 잠깐 들른 읍내의 한 가게에서였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는 하지 않았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그 아이와 대화를 해본 건 한두 번쯤 되나?

그 아이를 지나친 나는 가게 안의 거울을 찾아 머리 매무새를 매만졌다. 더 밝은 색 립스틱을 칠하지 않은걸 후회했다. 옷도 좀 더 화려한 걸 입을걸. 다행히 맨 얼굴은 아니다.

고향의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단 얘긴 들었다. 옆엔 부리부리한 남편과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딸이 있었다. 둘째를 가졌나 보다. 배가 많이 부른 걸로 보아 후기쯤 되겠다.


참 예뻤는데 그 아이도 나이를 먹는구나.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과 눈가 주름이 계속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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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지도 않은 동창을 보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내 그 아이를 부러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격지심 같은 거다. 노는 부류가 달라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해봤지만 그녀에게 난 분명 그런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기억 속 그 아이는 참 예뻤다. 눈에 띄게 예뻤다. 김희선을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때는 공부도 곧잘 했고 중학교 2학년 땐 1등도 한 번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아니지만. 옷을 예쁘게 잘 입었다. 그 당시 여학생들이 많이 보던 쎄씨 같은 잡지에 나오는 그런 옷이었다.

피아노도 잘 쳤다. 피아노를 못 치는 내겐 들리는 모든 곡을 바로 연주할 수 있는 그 아이가 무척 부러웠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했다. 그 아이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와 친하지 않았던 이유는 노는 부류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아인 소위 노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아이도 적극적으로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은 그랬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얘기해 같이 어울리자고 했는데 한두 번 어울리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한 번은 내 친한 친구와 그 친구 무리 중 한 명과 큰 싸움이 난 적도 있다. 결국 둘은 학교를 옮겼다. 그 아이의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 상극이어서 그 뒤에도 절대 말 한 번 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대화를 안 할 정도로 나쁘게 지낼 것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렇지 않게 대화쯤은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뒤 일을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휴대폰 카메라에 자꾸 내 모습을 비춰 보며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의식하고 있구나.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대단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중고등학교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 그 를 만났다 했다. 한 친구는 그게 누구냐 하고, 다른 친구는 얼굴을 알아본 게 신기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그냥 동창 중 한 명인걸 보면 아마 그 아이는 내게만 그렇게 특별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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