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에서의 2박 3일을 마치고 LA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근처의 호텔로 이동했다. 이렇게 넓고 좋은 호텔이 100불대라니! 디즈니랜드 근처의 호텔은 싸고 룸 컨디션도 좋다. 호텔 값은 걱정 말고 말고 디즈니랜드에서 맘껏 놀라는 얘기겠지. 애너하임의 호텔은 모두 디즈니랜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린 디즈니랜드 티켓팅을 하는데도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디즈니랜드의 가격도 검색해 보지 않고 미국에 간 나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같지만, 나는 ‘디즈니랜드니까 뭐 에버랜드보다 좀 더 비싸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부 여행을 며칠 앞두고 예약을 하려는데 성인 2명에 아이 한 명의 하루 입장료가 60만 원이 넘었다. 36개월 이하인 둘째 아이는 무료인데도 말이다.
미국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할인 따위 없고, 연간회원권은 600만 원
아이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2개의 테마파크 중 한 곳만 가기로 했으니 이 정도지, 두 군데 다 갈 수 있는 티켓은 1당 50불은 더 비싸다. 애버랜드의 카드 할인처럼 디즈니랜드도 뭔가 할인이 있겠지 싶어 여기저기 할인표를 찾아봤지만 소용없다. 디즈니랜드는 원래 시즌에 따른 가격 차이만 있을 뿐 할인이 없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손을 덜덜 떨며 디즈니랜드를 예약했다.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날 애너하임 근처에서 만난 남편의 지인은 지난해 디즈니랜드의 연간회원권을 끊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격을 알고 우리 부부는 한 번 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부부와 아이 한 명의 연간 회원권이 5000불이란다. 우리나라 돈으로 600만 원. 에버랜드의 1년 연간회원권이 대인 2명 + 소인 1명 가격이 60만 원 정도니 10배쯤 비싼 거다. (이때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놀이공원에 600만 원을 들이는 건 너무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계 최대 규모 디즈니랜드는 일주일 봐야 한다고?
디즈니랜드는 규모도 어마 무시하다. 우리가 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의 첫 번째 작품으로 크게 ‘디즈니랜드 파크’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로 나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있는 관계로 어트랙션이 훌륭하다는 ‘어드벤처 파크’는 가지 않기로 했다(역시 아이와 여행은 포기의 연속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애너하임 디즈니랜드의 반만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이조차 다 돌지는 못했다. 개장 시간인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녔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 애너하임은 그냥 디즈니'랜드' 일뿐,더 큰 곳이 존재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곳은 이름도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디즈니'월드'란다. 이름처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총 6개의 테마파크가 있다. 여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일주일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린 디즈니랜드 1개의 테마파크도 다 못 봤는데,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는 도대체 얼마나 크다는 얘길까? 규모가 상상이 되는가?
디즈니랜드. 돈으로 다되는 세상
비싼 티켓과 엄청난 규모 얘긴 그만하고 이제 디즈니랜드에 가보자. 디즈니랜드로 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지 않는 이상, 모두 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디즈니랜드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고 디즈니랜드에 가야 한다. (규모 얘긴 그만하려 했는데) 또 이 주차장의 규모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아침도 안 먹고 서두른 우리지만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들어서기 전부터 큰 건물에 한번 놀라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동차들에 두 번 놀랐다. 이 차들이 다 디즈니랜드에 간다고? 미리 결제해둔 주차권(요금은 25불)을 보여주고 빙빙 돌아 6층에 주차를 한 뒤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주차권 돈을 받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이곳의 모든 것은 다 돈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디즈니랜드 앱에 접속하면 각 어트랙션의 대기시간을 알 수 있다.
줄 서지 않을 권리를 돈 주고 산다고?
남편은 티켓 결제를 할 때 맥스 패스(Maxpass)권을 살까 말까 고민했다. 인터넷에서 후기들을 보니 이건 무조건 사야 한다 길래 일단 입장권 구매 시 함께 구입을 하긴 했다. 입장권을 사면 한 시간에 한 장씩 줄을 서지 않고 어트랙션을 탈 수 있는 ‘패스트 패스’(Fast Pass)가 나온다. 하지만 놀이기구 입구의 패스트 패스 머신에서 끊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런데 맥스 패스권을 사면 직접 가지 않고 앱으로 시간 맞춰 어트랙션을 예약을 할 수 있다. 시간에 맞춰 가면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뒤로하고 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물론 패스트 패스 라인에서도 줄은 서야 하지만).
줄 서지 않을 권리를 돈으로 산다는 점에서 이게 공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디즈니랜드는 모든 어트랙션을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입장권도 판매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입구에 가면 따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줄을 서지 않는다는 건 기다리는 시간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더운 날씨에 꼼짝없이 몇십 분을 기다려야 하지만 돈을 지불한 사람은 보란 듯이 줄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탄다. 디즈니랜드가 판매하는 맥스 패스나 줄을 서지 않는 회원권의 판매는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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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권의 판매는 정당한가?
몇 해전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며 새치기권을 판매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센트럴파크에서 무료로 공연되는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누군가는 암표상에게 돈을 주고 자리를 산다. 또 다른 이는 자기를 대신 해 줄을 서 줄 ‘라인 스탠더’를 고용한다. 돈만 있으면 누군가는 기다림 없이 그 공연을 볼 수 있다. 이 일화를 보면서 나는 줄을 서지 않을 권리를 판매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실 출생부터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가난하게 태어난다. 그나마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건 시간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디즈니랜드에서 줄을 서지 않을 권리, 즉 새치기권이 판매되는 상황을 목격하며 ‘공평함’이란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돈으로 시간까지 살 수 있는 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있는 곳이 뼈 속까지 자본주의인 미국이구나 싶어 씁쓸하다. 그리고 새치기권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 맥스 패스를 구매해서 정당하게 새치기를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날 맥스 패스가 없었다면 이날 탄 어트랙션의 반도 못 탔을 거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랜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디즈니라는 기업이 비싼 입장료를 받은 입장객에게 상상의 끝을 보여준다고 하면 믿어질까?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