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은 아주 단호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유치원 반 친구가 일본 디즈니랜드에 갔다 왔는데 거기엔 공주가 엄청 많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긴 공주는 관심이 없으니 공주뿐인 디즈니랜드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남편은 그런 아이에게 말했다.
“디즈니랜드에서 공주는 아주 일부일 뿐이야. 공주 말고 디즈니랜드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은데, 지안이가 좋아하는 ‘토이스토리’ 우디랑 버즈도 볼 수 있고, ‘카 3’ 알지? 라이트닝 맥퀸, 그것도 디즈니 꺼야. 아빠가 좋아하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스파이더맨 나오는 ‘어벤저스’도 볼 수 있어. 또 집에 ‘스타워즈’ 장난감 있지? 그것도 다 디즈니 꺼야.”
아이는 어벤저스에 살짝 혹하는 눈치다. 본 적은 없어도 친구들에게 들어서 어벤저스 캐릭터는 익히 알고 있다. 집에 TV가 없는 6세 남아는 디즈니가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엘사로 초대박을 친 ‘겨울왕국’, ‘백설공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모아나’, ‘라이온 킹’ 뿐 아니라 ‘토이스토리’, ‘인크레더블’, ‘코코’, ‘도리를 찾아서’를 만든 픽사도 디즈니 소속이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스파이더맨 등의 ‘어벤저스’의 마블 또한 디즈니가 인수했다.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의 루카스 필름도 디즈니 소유다. 이제 디즈니는 미키마우스와 공주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가 다녀온 디즈니랜드는 한마디로 대단했다. 40대 영화광 남편과, 디즈니의 공주를 사랑했지만 놀이기구는 잘 못 타는 30대 여성인 나, 공주엔 관심 없지만 디즈니 캐릭터는 몇 개 아는 6세 남자아이까지 우리 가족 모두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36개월 이하 둘째 아이가 탈 수 없는 놀이기구가 많아 우리 가족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지만 디즈니랜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다.이곳은 아주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요물 같은 곳이었다.
'스타워즈 갤럭시 엣지'는 영화 속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음식 이름만 보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밀레니엄 팔콘'을 타면 각자 미션카드가 주어진다.
동물 한 마리 없이 정글에 동물원을 만들어 놓은 '정글 쿠르즈'와 스릴 최고인 '마터호른 봅슬레이'와 '빅 썬더 마운틴', 아이들이 좋아했던 '버즈 라이트이어 아스트로 블래스터' 등도 물론 하나 같이 재밌었지만 특히 남편은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워즈 갤럭시 엣지(Star Warz Galaxy’s Edge)를 최고라 평가했다. 영화 속 스타워즈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그곳은 식당이나 일하는 사람도 막 영화에서 나온 듯하다. 특히 남편은 ‘밀레니엄 팔콘(Millennium Falcon)’에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어트랙션은 영화 속 팔콘을 그대로 옮겨 놓았는데 6명이 한 팀을 이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식의 놀이기구로 움직임과 영상이 정말 팔콘을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단다. 기존의 어트랙션은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타는 데에 그쳤다면 밀레니엄 팔콘은 게임을 하듯 각자 자신의 역할에 맞는 임무가 주어지는 신개념 어트랙션이란다. 남편은 이걸 타보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와! 디즈니 진짜 미쳤어. 이걸 해내네!’ 남편은 내가 이곳을 보지 못한 걸 정말 아쉬워했다.
판타지랜드 극장(Fantasyland Theatre)에서의 공연.
하지만 나는 남편이 그곳에 가 있는 동안 아이들과 판타지랜드 극장(Fantasyland Theatre)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디즈니의 유명한 주제곡을 배우들이 직접 춤추고 노래하며 불러준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은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30여 분의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웬만한 뮤지컬 공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퀄리티로 춤과 노래 모두 완벽했다. 디즈니에서 뮤지컬을 보며 느끼는 전율을 느꼈다고 하면 상상이 갈까? 그러고 보니 오후 5시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디즈니랜드에서 공주 한 명을 보지 못했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디즈니랜드에서 오늘 공주 처음 본다. 거봐~ 정말 공주보다 다른 재밌는 게 더 많지?”
그런데 디즈니랜드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디즈니랜드를 자꾸 에버랜드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우린 에버랜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퍼레이드를 생각하며 한 시간 전부터 신데렐라 성 앞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저녁 8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3세, 6세 아이와 한자리에서 1시간 반을 넘게 기다렸다. 아이 엄마들은 알겠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들들은 힘들다고 몸을 배배 꼬고 난리도 아니다. 이제라도 그냥 놀이기구 타러 갈까 싶었지만 그러기에 우린 그 자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그런데 웬걸, 퍼레이드는 신데렐라 성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크게 실망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 퍼레이드엔 1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심지어 보지도 않는다. 그럼 이 사람들은 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 신데렐라 성의 불꽃놀이를 보려고 2시간을 기다리는 건가? 우리도 오기가 생겼다. 뭐가 있으니 다들 이렇게 기다리겠지. 30분을 더 기다리다 첫째 아이는 막 잠이 들려던 참이다. 그때 그곳에서 엄청난 쇼가 펼쳐졌다.
밤이 되면 조용히 빛나던 신레렐라성에서 화려한 쇼가 시작된다.
그날은 마침 올해의 첫 핼러윈 공연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신데렐라 성을 배경으로 하늘엔 유령이 날아다니고, 성을 스크린 삼아 미디어아트 영상이 펼쳐졌다. 그 위로 불꽃이 펑펑 터지고, 화려한 레이저는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30분 가까이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절로 나오는 감탄사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흔들어 깨운 아이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관객을 위해 디즈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을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공연은 우리가 그곳에서 기다린 2시간의 힘듦을 모두 상쇄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 게 바로 이거구나! 이걸 보려고 그 지루함을 견딘 거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죽기 전에 이 공연을 보게 돼서 정말 행복하다!' 레고랜드에서 이틀을 보내고 사흘 째 디즈니랜드에 온 아이들은 불꽃놀이를 끝으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디즈니랜드의 밤은 이 불꽃놀이에 모든 걸 쏟아내고 끝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부부는 잠든 아이를 교대로 안아가며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 또 사람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예약해둔 마지막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타라고 보내고 나는 그곳에서 그 뭔가를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그다음엔 미키 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공연의 스케일도 대단하다. 일종의 디즈니 갈라쇼라고나 할까. 불꽃쇼와 레이저쇼에 분수쇼까지 더해진다. 몇 대의 해적선에서는 피터팬과 후크선장이 대결을 펼치고, 작은 배에서는 왕자와 공주가 춤을 춘다. 그 위로 거대한 유람선이 등장하는데 거기엔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가 관람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오늘 디즈니랜드에서 즐거웠나요?’하고 말을 거는 기분이다. 미키 쇼는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모아 최고의 미디어아트 영상에 상상력을 더해 선보이는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잠든 아이를 안고 있었지만 미키 쇼가 계속되는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을 정도였다.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우리는 잠든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도 뭔가에 홀려 있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힘든 줄을 몰랐다. 밖으로 나오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우리는 디즈니의 마법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마법은 30대 40대의 어른에게도 6살, 3살 아이에게도 상상만 하던 환상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니 디즈니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을 뛰어넘었다.
남편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우린 디즈니랜드 반 밖에 못 본 거잖아. 디즈니랜드가 이 정도인데 어드벤처 파크엔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 죽기 전에 꼭 올랜도 디즈니월드에 가보자!” 나 역시 디즈니랜드 어땠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디즈니랜드엔 꼭 가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