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Dec 02. 2019

살(Buy) 집 말고 살(Live) 집을 찾습니다

빚 내서 집 안 산 내가 바보인가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문자가 왔다. ‘대기 중인 유치원에 등록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대기 1번이었다. 인기 있는 유치원이라 대기 1번도 쉽지 않다는 얘길 듣고 반은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선발이 됐다니. 이사를 가면 가장 보내고 싶었던 유치원이었지만 막상 선발 문자를 받고도 기쁘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도 없이 유치원 등록부터 하는 모험을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집 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

지금 사는 동네에 온 지 4년. 그동안 아이 친구 엄마들은 하나 둘 집을 샀다.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싼 거라며 하루라도 빨리 사는 게 이익이라고 했다. 은행에 가면 다 알아서 해주는데 뭐가 걱정이냐고도 했다. 몇 억을 빌리는 게 아무렇지 않은 상황이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금리는 그들의 선택을 합리화해줬다. 엄마들 사이에서 하루아침에 몇 천 씩 오르는 아파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진짜 지금이라도 빚을 내 집을 사야 하나?

집 값은 이렇게 계속 오르기만 했다.

사실 2년 전 지금 집에 오기 전 집을 매매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2017년 여름 끝 무렵이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산 밑의 조용한 아파트였다. 집은 마음에 들었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우리가 가진 돈만큼의 대출이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과 부동산에서는 다 그렇게 집을 산다며 뭐가 걱정이냐고 했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절대 떨어질 리 없다며 대출 이자를 내도 무조건 남는 장사라 했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우리는 사지 않기로 했다. 원래 물건은 돈이 있어야 사는 것이다. 대출을 해서 집을 사는 건 뭐랄까 일반적인 경제학적 매매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지금의 집에 전세로 들어왔다. 그 이후 부동산 광풍이 불었고 자고 나면 매매가가 몇 천씩 올랐다. 우리가 사려했던 그 아파트는 그때의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가가 다.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솟구치는 매매가를 보며 속이 쓰렸더랬다. 천정 부지로 오르던 아파트 값은 정부의 규제에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또 오름세로 돌아섰다.


돈이 없어서 집을 안 산 게 잘못인가?

‘돈이 없으면 물건은 사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물음의 답으로 내린 우리의 결정이 바보의 선택이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남편은 이제야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는 8년 전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전세를 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선대인의 말을 믿은 자신이 틀렸다며. 그럼에도 그는 아직 믿고 있다. 지금의 집값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2년에 한 번 1억씩 올려 달라는 전셋집을 두 번 돌고 매매가가 치솟는 와중에 집을 판 전 집주인을 거쳐 지금의 집에 전세로 들어왔다. 세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집값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오르기만 했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 집을 살까 싶었지만 이 동네 오르기 전 집값을 아는지라 오른 값을 다 주고 선뜻 집을 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긴 무주택 기간을 그냥 포기하긴 아까웠다. 결국 우린 아파트 분양을 넣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집으로 가자!

문제는 지금의 전셋집에서도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집이 유발하는 층간소음 때문이다. 아이들은 매일 살살 걸으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고, 그러다 한 번 뛰기라도 하면 거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남편은 무섭게 변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혼내는 일만 아니면 자기가 화낼 일이 없을 것 같다며 이 집을 떠나자고 했다.

집엔 이렇게 매트가 깔려 있지만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우린 이사를 결정했다.

여름에 이사 가려던 게 남편의 해외 출장 일정으로 미뤄지다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가 집을 찾으며 내걸었던 조건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파트 1층 혹은 필로티이거나 주택이어야 한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남편은 아파트 1층은 절대 싫다고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주택을 알아보기로 했다. 두 번째 조건은 근처에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단독주택보다는 관리가 편한 타운하우스였으면 다. 네 번째는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조건을 들고 집을 찾다 보니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집이 맘에 들면 초등학교, 유치원이 멀었고, 이런 시설과 가까우면 집값이 너무 비쌌다.


살(Buy) 집 말고 살(Live) 집

그러다 찾은 곳이 남편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타운하우스 단지였다. 처음엔 매매를 고려했으나 분양을 넣어 보기로 한 점, 주택의 경우 나중에 팔기가 힘들다는 점들을 고려해 한 번 더 전세를 살기로 했다. 살다 정말 맘에 들면 그때 매매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집을 거쳐 정원이 맘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문제는 이 집은 1달 안에 들어올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맘 같아선 당장 들어가고 싶지만, 지금 사는 집에 1달 안으로 들어올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그 집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됐다. 그 집이 나가고 난 뒤 전세로 내놨던 다른 집이 물건을 거둬들이며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돈을 벌 수 있는 살(Buy) 집 말고, 그냥 아이들이 맘 편히 뛰놀 수 있는 살(Live) 집을 찾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 중이다. 유치원 선발 문자를 보고 더 막막해졌다. 살집을 찾으면서도 긴 무주택 기간과 청약 통장 가입 기간 등을 계산하는 걸 보면 나 역시 마음 한 켠에는 집으로 돈을 벌 생각을 포기하지 못했나 보다. 앉아서 몇 억 씩 버는 사람들을 보며 초연해지기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집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 집 하나가 없다.


http://www.freepik.com



작가의 이전글 굿즈를 사는 건지, 책을 사는 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