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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an 22. 2020

'뛸 수 있는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층간소음 해방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벌써 3번의 이사를 했지만 이번 집을 떠나면서는 아쉬움은 없고 후련함만 남았다. 우린 더 이상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혼내지 않아도 된다. 아랫집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미안하다며 마음 졸이는 일 또한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 이사한 집은 몇 달 동안 집을 보러 다니다 지쳐갈 때쯤 만났다. 동네 아파트 필로티라길래 무조건 보겠다고 했다. 집 구조가 어떤지, 집이 얼마나 깨끗한지 등은 고려할 처지가 아니다. 아래층이 없는 필로티라지 않은가! 문제는 이사 날짜가 1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원래 이사 오기로 했던 사람이 계약을 파기하면서 우리한테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린 지금 사는 집만 빼면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몇 됐다. 초등학교 신학기 전에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집 값이 계속 오름세를 보이자 집주인들이 매매로 내놨던 물건들을 거둬들이면서 전세난을 보탰다. 문제는 역시 이사까지의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려는 사람도 한 달 안에 자기 집을 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보통은 2~3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움직이는데, 한 달은 좀 빠듯하긴 했다.


부동산에서는 집을 보지 않고도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며 집을 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직접 들어올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 집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왔다. 그 사람에게 첫째 아이가 갑자기 이런다. "우리 집은 뛰면 안 돼요. 뛰면 아랫집에서 전화와요." 그 얘길 듣고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 다행히 집을 보러 온 사람은 다 큰 중학생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이 사람은 우리 집을 맘에 들어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는 처음 말한 사람이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집도 안 보고 계약하겠다는 그 사람은 초등학교 고학년 한 명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필로티 집을 계약했다.


이사 가기 전날 나는 온 바닥에 깔려 있는 두꺼운 층간소음 매트를 팔았다. 이사 갈 집엔 매트 따위 필요없다. 총 6개의 매트 중 2개는 최근 같은 아파트 3동에서 8동으로 이사를 한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랫집 인터폰을 받고 있다는 첫째 친구네 집에 줬다. 아랫집에서는 시끄럽다며 뭐라 하고, 윗집은 또 엄청 뛰고 중간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머지 3개는 중고장터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네 사람 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중 오늘 밤에 가져간다는 까다롭지 않은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다. 깜박하고 처분 못한 나머지 1개의 매트는 그날 밤 아파트 카페에 드림으로 올리니 가져가시겠다는 분이 있어 얼른 넘겼다. 이렇게 우리 집을 뒤덮었던 매트를 모두 없애버렸다.


이사 전 날, 집에 깔려 있던 매트를 모두 처분했다.


이사 날, 별 일 없이 이사가 끝났다. 정리는 어차피 남편이 직접 하는 성격이라 이삿짐센터 분들은 오후 4쯤이 되자 다 돌아가셨다. 정리해야 할 짐이 한 무더기지만 아이들은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알콩달콩 잘도 논다. 그 덕에 우리는 늦도록 짐을 풀 수가 있었다. 늦게까지 아이들이 깨있다고 뭐라 할 아랫집이 없지 않은가!


첫째는 습관이 돼서 이사 온 집에서도 발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여기서는 그냥 걸어도 된다고 얘기해도 매일 혼나며 체득한 습관인지라 쉬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둘째 걷는 소리가 그렇게 신경 쓰였는데 이 집에서 듣고 보니 또 별거 아니다. 같은 걸 보면서도 상황에 따라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는구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말이다. 걸음걸이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 둘째를 더 혼내기 전, 이사하길 잘했다.


남편은 나와 만나서 사귀고 결혼해 사는 16년 동안 내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지난 2년 동안은 화를 참 많이 냈다. 그것도 아이들에게. 옆에서 보는 나도 무서울 정도였다. 아이들이 걷고 뛰고 노는 것조차 혼내야 했던 남편의 스트레스를 나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사 첫날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미간의 주름이 다 펴질 것 같은 미소다. 이사 첫날부터 우리 가족은 이사하길 잘했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이사 둘째 날 저녁, 첫째를 씻기고 나와 로션을 발라주고 있는데 문득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엄마, 이 집 너무 좋아! 왜 엄마 아빠가 이 집으로 이사했는지 알겠어"

"왜 이사한 것 같은데?"

"나를 천국에 데려오려고~" 


이 말 한마디에 이사로 인한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그 시간과 노력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지난 2년의 시간이 미안해졌다. 항상 가장 신이 나있을 때 뛴다고 혼이 나곤 했던 아이였다.


아이가 좋다니 이걸로 됐다. 그거 하나를 위해 이사한 것 아닌가. 어제도 한 생각이지만 오늘도 같은 마음이다. 이사오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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