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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Feb 03. 2020

엄마의 회식은 셀프

외향적이지만 혼자도 충분히 좋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혼자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식사를 하는 것. 이른바 ‘셀프 회식이다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2(둘째 아이는 1월생이라 27개월 차에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육아기간 동안 나는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나는 태생이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이다그렇게 36년을 살았다술은  좋아해도 술자리는 좋아했고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인간이라고 믿어왔다그런 나임에도 2년을 꼬박 육아에 전념하고 나니 다른 사람과의 시간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이 무척 그리워졌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시간 말고아이 엄마들과 만나 한시도 끊기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시간 말고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볼륨을 낮추고 영화를 보는 그런 시간 말고대낮에 혼자 고요하게 있을 그런 시간 말이다.
 
 
그런 시간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하고 싶은 일들을 다이어리에 적었다그중 하나가 바로 혼자 밥을 먹는 일이었다초밥집에 가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식사를 하리라 굳게 다짐했었더랬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면 보통 일주일 정도는 엄마와 함께 1~2시간 정도 있다가 오고그다음 주엔 점심을 먹고 집에 온다아이가  적응하면 그다음 주부터는 낮잠을 시작한다아이가 원에서 낮잠을 자면 오후 3 넘어서 하원   있다처음엔 아이와 떨어져 있는 1시간도 감지덕지다점심을 먹고 오면 점심 준비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그러나  시간도 잠시등원 준비  난리가  집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후다닥 밥을 먹고 나면 금방 하원 시간이 돌아온다그래서  아이가  낮잠을 자는 날을 디데이로 정했다.
 
 
 낮잠을 자는 나는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외출 준비를 했다정말 오랜만에 갖는 나와의 데이트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고 평소  입지 않는 옷도 꺼내 입었다.
 
 
그리고 한참 전부터 점찍어  초밥집으로 향한다가게 오픈 시간은 11 30나와의 데이트에 설레어서 혼자 너무 일찍 도착했다. 15분쯤 밖을 서성이다  손님으로 가게에 입장했다일단 점심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참치 뱃살 초밥과 연어 뱃살 초밥을 추가했다 12시가 가까워지니 가게에는 하나  손님이 는다혼자  손님은 나뿐이지만 상관없다그리고 조용히  식사를 즐긴다.
 

내게 초밥은 언제나 옮다!

아이가 있기 전엔 몰랐다 식당은 다들 주메뉴와는 상관없는 돈가스를 파는지감자탕 집엔  놀이방이 있는지를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아이가 어린 엄마 아빠의 외식 메뉴는 아이가  먹을  파는 식당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렇게 외식을 해도 아이 밥을 먹이느라  밥은  식은 뒤에나 먹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역시 그랬기에 혼자 하는 외식이 그렇게 그리웠다내가 가고 싶은 식당에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고   속에 나만을 위한 초밥을 넣는 이게 뭐라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닌  같아도 나는 이게 그렇게 그리웠더랬다.
 
 
식사를 마친 좋아하는 커피숍에 들렀다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한  자리를 잡았다평소 아이와 함께였다면 분명 테이크아웃을 했을 것이다커피를 마실 동안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있어줄 아이가 아님을 알기에  잔의 커피는 피곤함을 떨쳐 내기 위해 마시던 커피와 다르다마실 타이밍을 놓쳐 식어버린 커피가 아니다이제  나온 커피를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마실  있다니 시간이 호사스럽게 여겨진다.
 
 
그리고 건너편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배는 부르고 카페인이 충전됐으며 손엔 읽고 싶던 책이 들려 있다아니 이게 뭐라고  한 번 벅차게 행복하다아이와 지지고 볶는 시간도 참으로 행복하지만나는 혼자서도 이렇게  행복할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종종 회사를 다닐 때의 회식자리가 생각난다 시끌벅적함과 함께  몸에 달라붙은 삼겹살집의 기름 냄새. 가끔 남편이 회식으로 늦는 남편의 옷에서 나는  기름 냄새를 맡을 때면 일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그때의 내 모습이 소환되곤 했다.
 
 
그런 날은 다음날 혼자만의 회식을 한다아무도 없는 집에서 점심부터 기름 냄새를 풍기며 삼겹살을 굽는다남편은 출근하고아이들은 원에   시간나는  수고를 치하하며 야무지게 상추쌈을 크게  입에 넣는다. 역시 엄마의 회식은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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