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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16. 2020

신박한 아이의 계산법

그만의 시계를 기다려주는 일

남편은 저녁에 아이와 연산 연습을 다. 연산이라고 하니 거창한데 그냥 3+4= 같은 거다. 더해서 10이 넘지 않는 두 숫자의 덧셈. 공부라고 하면 거부감을 느낄까 봐 '집중력 연습'이라고 이름 붙였다. 

24문제의 한 장을 푸는데, 다 푼 시간을 그래프로 그려서 2분 안으로 찍힌 점이 3번 이상일 때 선물 하나를 사줬고, 1분 30초 안에 3번 들어왔을 때 또 작은 선물을 사줬다. (단 덧셈을 할 때 손가락은 쓰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2분 넘기던 게 신기하게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눈에 띄게 연산 시간이 줄었다. 그런데 1분 30초 언저리에서 영 시간이 줄지 않는 거다.

정체기가 오래 계속되자 남편이 첫째에게 어떻게 풀고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첫째가 "여기에 답이 다 있어"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하는 설명이 가관이다.


1은 꼭짓점(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편의상 꼭짓점이라고 ) 1개, 2는 꼭짓점 2개, 3은 꼭짓점 3개, 4는 꼭짓점 4개가 있어서(스스로 셀 꼭짓점을 정한 거다.) 그 꼭짓점을 더하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1+3의 경우, 1의 꼭짓점 하나와 3의 꼭짓점 3개를 세서 더한 4가 답이다.

남편이 물었다. 그럼 5, 6, 7, 8, 9는 꼭짓점 개수가 수랑 안 맞아 보이는데 어떻게 하냐? 아이는 5부터는 그냥 숫자로 보고 이어 세기 하듯 그 앞의 작은 수의 꼭짓점을 더해서 답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에 10이 넘는 답은 나오지 않으니 9는 더할 필요가 없고, 8은 무조건 8+1이니 9다. 그럼 5, 6, 7의 경우만 해당 숫자에 더하는 숫자의 꼭짓점을 세면 된다는 설명.

아니 그냥 직관적으로 더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그건 내 생각이고, 아이는 이 별 것도 아닌 10이 넘지 않는 한자릿수 덧셈에서 스스로 이런 규칙을 찾아낸 것이다.

남편은 적어도 10이 넘지 않는 덧셈은 직관적으로 하길 바라서 계속 집중력의 탈을 쓴 연산을 연습하게 한 건데, 아이는 손가락은 쓰지 말라니 꼭짓점 개수를 세고 있었던 거다. 꼭짓점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으니 시간은 더 줄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꾀를 부렸단 생각이 들었는지, 멋쩍어했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 푸는 법을 찾아낸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해 안 가면 그냥 외우는 거라고 배운 나와는 달랐다. 그래서 스스로 문제의 규칙을 찾아낸 게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로 보니 아이는 한글을 배울 때도 특이했다. 6세쯤 되면 혼자 한글을 터득할지 모른다고 기대를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글자의 음절 개념이 생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한 글자인지 영 감을 못 잡는 거다. 그러다 6세 중반기가 넘어서 음절 개념이 생겼길래 7세를 앞둔 지난겨울 방학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 다 한다는 기적의 한글 학습을 사다 같이 풀었다. 책에서는 모음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가 처음 나오고 거기에 ㄱ ㄴ ㄷ 을 붙여 글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글자를 알려줬다. 혹자는 단어를 통째로 배우는 게 효과적이라고도 했으나 나는 자음과 모음의 소리만 익히면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세종대왕을 믿었다.

근데 ㄱㄴㄷㄹㅁㅂ을 지나도록 아이가 글씨를 영 못 읽는 거다. 분명 세종대왕께서는 똑똑한 사람이면 반나절이면 다 익힐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 (한글 가르쳐 본 엄마라면 알겠지만 진짜 속이 터진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이가 글씨를 읽는데 숫자를 세듯 손가락을 세는 거다. 그런 다음 그 글자가 뭔지 읽는다. 그래서 아이에게 손가락은 왜 세냐고 물었다. 아이는 열개의 손가락에 10개의 모음을 아야어여 순으로 순서대로 정해주고 그 모양의 모음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몇 번째 모음인지 세서 글자를 읽는 거다.

아니 그냥 그 모음이 어떤 글자인지 외우는 게 빠를 거 같은데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손가락을 세서 글자를 읽었다. 답답한 마음에 초등학교 선생님인 언니에게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읽는 경우는 본 적이 없긴 하다며 그래도 스스로 한글 읽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니 기다려주라고 했다. 아이는 그 뒤로도 한참을 더 그렇게 읽더니 점점 손가락을 쓰지 않게 됐다.

앞으로도 아이는 분명 남들 다 하는 공부란 걸 하게 될 거다.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잘하면 땡큐지만 못해도 뭐 이젠 공부만 잘한다고 다 잘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하고 쿨한 마음을 가져야지 하고 지금부터 다짐한다.(하지만 물론 공부를 못하면 속으로는 답답은 하겠지)


그래도 한글 읽는 법을 스스로 만들고, 덧셈 푸는 문제의 방법과 규칙을 스스로 찾아낸 것처럼 앞으로도 공부든 세상 사는 법이든 뭐든 간에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하긴 그러기 위해서는 늦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아이만의 시계를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어야 하겠지.


내가 성격이 급한 편인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중에라도 아이에 대해 조급한 생각이 들면 마음을 가다듬고 이 글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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