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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13. 2020

나는 나와 사이가 좋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 생기는 일

“혹시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 있으세요?”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후 깨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멀뚱히 천장을 쳐다보다 침대 맡에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 맘 카페에 올라온 이 글을 보게 된 거다. 글쓰기 멤버를 모집하는 글이었다. 글쓴이는 책을 내보고 싶은 생각에 혼자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지만, 저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홀린 듯 댓글을 달았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성보다는 ‘하고 싶다!’는 감정이 앞서 있는 상태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단 댓글에 답장이 왔다. 그렇게 다소 '즉흥적으로' 글쓰기 모임에 합류했다.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던 걸 보면 그때의 나는 귀가 큰 임금님의 왕관을 만든 복두장의 마음을 닮아 있었나 보다. 내게 비밀이랄 건 없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소리치고 싶은 심정은 매한가지였다. 글이 내게 '대나무 숲'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나란 사람이 본디 그렇다.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다. 하고 싶은 게 불현듯 떠오르면, 생각을 실행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그렇다고 뭘 그렇게 자주 시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다소 충동적이라고 얘기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실행력 있다고 말한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그만 그만두면 된다.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제 내가 무슨 결정을 한 거지? 내가 글을 쓸 시간이 어디 있다고!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라는 충고는 사양한다. 아이 둘 키우는 엄마의 일상은 누군가가 그리 쉽게 얘기할 만한 것이 아니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거다.      


일단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다시 모임 리더에게 연락했다. “다른 분들도 다 바쁘신 분들이겠지만 제가 아이 둘 키우는 엄마라서요. 괜찮다면 한 달 뒤에 합류해도 될까요?” 한 달이면 3월 어린이집 입소를 앞둔 둘째 아이가 넉넉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 아이가 낮잠을 시작한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의 룰은 간단하다. 일주일에 한 번 마감 전까지 밴드에 글을 올릴 것, 그리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아 줄 것. 분량도 소재도 자유다. 대신 첫 글에 앞서 자기소개를 써 달라고 했다.     


자기소개라. 나를 소개하는 건, 입사 원서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몇 번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한 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밴드에 올렸다. 다행히 멤버들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쓴 첫 글이 ‘서른여섯, 안녕한가요?’다. 제일 쓰고 싶었던 글이 내게 안녕한지 묻는 것이었다니!   


글을 모아 브런치북을 발행했고, 그 글은 이제 <나는 나와 사이가 좋다>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오랫동안 내려놓았던 글을 다시 쓰면서, 뭔가 쾌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글로 밥 벌어먹던 사람은 안다. 마감이 끝난 뒤에 느끼는 날아갈 듯한 해방감과 가끔(자주는 절대 아니고) 글을 완성한 뒤 느끼는 심장 쫄깃한 기분을 말이다. 그제야 알았다. 글이 쓰고 싶었다는 것을. 글이 쓰고 싶어진 건 참 오랜만이다.     


그렇게 매주 한 편씩 썼다. 글을 쓴다는 의무감과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긴장감이 생겼다.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정도다. 무료하던 일상에 탄력이 생겼다. 핸드폰 메모장에는 쓰고 싶은 글 아이템이 쌓여갔다. 그렇게 글쓰기가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내겐 다른 누구의 위로보다 내 위로가 절실했다. 글이 내게 그 위로란 걸 해줬다. 심통이 나 삐죽 대던 마음이, 힘들고 지쳐 비틀대던 몸이 글을 쓰자 그제야 서로를 보듬기 시작했다. 글은 내 대나무 숲이 되어 주었다.     

운동하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춤을 추겠다.



열심히 다이어트댄스 수업을 하며 땀 흘린 나를 위해 점심엔 떡볶이를 먹으련다.

(맛있게 먹은 떡볶이는 0kcal 맞죠?)

지극히 외향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혼자도 충분히 좋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쉬고 있는 거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최고는 아닐 수 있다. 괜찮다. 

남들 사는 대로 말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리라.     


글이 된 내 마음은 나를 쓰다듬으며 내게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아등바등하는 나도, 그렇지 않은 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모든 게 멈춘 듯한 지금도 다 의미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무엇도 다 괜찮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글을 쓰며 나는 나와 사이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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