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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Oct 18. 2021

9년째 의료기 체험관에 가는 엄마의 속마음

[팔순의 내 엄마] 이제야 '엄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엄마의 코와 입에 요상하게 생긴 고무튜브들이 연결되어 있다. 꼭 중환자실의 환자처럼. 덜컥 겁이 났다.


"엄마 이게 뭐야? 어디 아파?" 


놀라서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한테 뛰어들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이걸 하고 있으면 피를 맑게 해서 머리도 안 아프고, 치매예방 효과도 있단다." 


 엄마는 코와 입에서 고무호스를 제거하면서 말했다. 대충 감이 왔다. 


 "엄마 그거 또 OO에서 사 온 거지? 그게 진짜 효과가 있긴 한 거야?"


"모르지 아직. 이제 처음 하는 거니까. 근데 벌써 사서 쓰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아프던 머리가 싹 나았다'라고 하더라."



엄마는 리모컨 크기만 한 컨트롤박스와 호스를 보여주었다. 생소한 제품이었다. 엄마는 벌써 9년째 OO의료기 체험관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의료기 체험관으로 출근하는 엄마


             

엄마는 아침상을 치우고 나면 으레 찜질복을 넣은 검은색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아침상을 치우고 나면 으레 찜질복을 넣은 검은색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복더위거나 영하 10도의 추위거나. 그러다 어떤 날은 진짜 '개근상'처럼 비누나 소금을 받아오기도 한다. 떡이나 음식 또는 사은품이라도 나눠주는 날에는 엄마는 세상없어도 체험관엘 가야 한다.  


예전에 엄마를 체험관에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 시장 안에 있는 마트 건물 6층 체험관에는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의료용 온열침대들과 온열매트들이 있었고, 한쪽에는 창고 겸 사무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땀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네헬스장보다 좁은 체험관에는 의료기구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의료기구를 한번 이용하려면 한참 차례를 기다려야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오래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한 시간 걸려 체험관에 와서 온열침대에서 20~30분 정도 땀이 나도록 지지고, 온열매트 잠깐 허리에 둘러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집에 있는 매트에서 해도 될 텐데 굳이 왜 여길 오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고 좋아서 오는 엄마를 말릴 수도 없었다.


체험관에서 엄마는 분명 VIP 손님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9년 동안 성실히 출석하는 것도 모자라 신상품이 나오는 족족 현금일시불로 주고 사 오는 충성고객인데... 게다가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거나 공짜 제품을 챙겨주기를 바라며 '진상'을 떠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체험관에서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엄마가 체험관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어느 날 "거기서 나한테 뭐래는 줄 아니? 엄마 같은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런다"라며 신나 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 답을 찾았다. 그것은 체험관에서 엄마에게 보이는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 



"내가 거길 왜 가는지 아냐"라고 묻는 엄마



그곳에서는 어른들을 '엄마'라고 부른다. 생일날에는 꼬박꼬박 '사랑하는 여사님~"로 시작하는 생일카드를 써주고, 그 달에 생일인 분들을 모아서 미역국과 떡으로 생일상을 차려준다. 봄, 가을로는 근교로 모시고 나가 콧바람도 쐬어준다.  


 그러니까 체험관은 마치 자식처럼, 아니 자식보다도 훨씬 더 살뜰하게 어른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다. 매일매일 '말 상대해주고, 칭찬해 주고, 선물 주고, 구경까지 시켜'주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엄마의 체험관 출근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엄마가 사 오는 물건들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고가의 상품도 심심찮게 사 들이셨다. 허리찜질기를 시작으로 침대 매트에 의료용 레이저 조사기까지. 그리고 당신이 좋다고 생각이 들면 우리에게도 사라고  '집요하게' 설득하셨다. 


 "엄마 꼭 거기 영업사원 같아. 그렇게 팔아주면 뭐 좀 주나?"


"주긴 뭘 주니? 다 너 건강 생각해서 사라는 거지. 딴 거 있는 줄 알아?" 


 


엄마의 기분이 좀 상한 듯 보였지만 체험관에서 '노인들 잘 모른다고 너무 바가지 씌우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실 '마진'이 엄청나니깐 그 많은 사람들한테 떡을 해 먹이고, 밥을 해 먹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차마 이 말을 엄마 앞에서 하지는 못했다. 엄마에게 너무나 '불경'스러운 얘기일 것이므로. 


 


그래도 한 번은 제동을 걸어야 할 듯싶었다.  아무리 엄마를 이해한다 해도, 또 '당신 돈 당신이 쓰는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라고 해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 체험관에 너무 열심히 나가는 거 아냐? 물건도 좀 많이 사는 거 같고." 


"내가 거기 왜 나가는 줄 알아?"


"뭐 몸에 좋으니까 가시겠지."


"그것도 있지만, 내가 거기 안 가면 하루종일 갈 데도 없고, 우두커니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데. 그럼 자꾸 이상한 생각만 나고… 그래서 거길 매일 나가는 거야. 살살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



"엄마가 그렇게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니들도 마음이 그렇잖니?"  


 


그 말을 들으니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고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6개월 동안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셨다. 어두운 집에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때 엄마의 절망과 우울의 깊이는 끝이 없어 보였다.



평생 처음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


             

노인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문화시설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아버지가 엄마만 혼자 두고 그렇게 가신 것이 못내 용서가 안 되셨던 모양이다. 또 아버지를 혼자 허망하게 보낸 데 대해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이 혼자 살아내야 할 시간을 두려워하셨다. 그랬던 엄마가 OO체험관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나아갔고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엄마는 오랫동안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물건을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과분할 정도로 '자식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사는 동안 엄마는 지나치게 며느리, 아내, 엄마의 테두리에 갇혀 살았다. 당신보다는 아버지 약을 먼저 챙겼고, 당신보다는 딸의 화장품과 옷을 먼저 들여놓으셨고, 당신보다는 허리가 안 좋은 아들의 찜질기를 더 먼저 사 왔다. 


 그러니까 엄마는 당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홀로 사람들과 대면하고, 스스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고, 당신을 위해 소비하고, 시장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을 줄 아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엄마가 씩씩해지니까 나는 또 노인네의 '대책 없는 의료기구 사랑'과 '노년의 귀차니즘'으로 엄마를 몰아가고 엄마를 제지하려 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체험관에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혼자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고, 나아가 엄마가 자존감을 느끼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비록 저들에게는 상술일 뿐이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사 오든, 돈을 얼마를 쓰든 절대 상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명품 가방 사고, 취미 활동한다고 월급을 털어 넣기도 하지 않는가. 노인들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나.


덧붙이자면 어느새 나와 우리 식구들은 엄마가 '하나 써 봐'라며 준 물건들에 중독이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물건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엄마 중독'에 걸린 것은 아닐까라는. 엄마가 해준 음식은 뭐든지 맛있었던 것처럼 엄마가 주는 것은 다 좋은, 뭐 그런 거 말이다.



엄마는 오늘도 체험관에 가셨다. 그리고 또 언제 어떤 물건을 사 올지 모른다. 그래도 좋다. 엄마가 갇힌 듯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지 않고, 어딘가 갈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우리 엄마 사고 싶은 거 다 사. 그리고 건강하기만 해.'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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