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내엄마]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누가 해 준 음식'
"엄마, 엄마는 무슨 음식 좋아해?"
"엄마는 그런 거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는 엄마.
"어떻게 그래요? 사람이?"
물어볼 때마다 엄마의 답은 늘 똑같다. 혹시나 하고 한번 더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매한가지다. '엄마가 그런 거 말하는 거 봤니?' 오히려 나에게 '넌 모가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많니?' 하면서 타박을 준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엄마도 사람인데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최소한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 한 잔과 파전, 추운 날에는 뜨근한 국물, 스트레스받은 날에는 매콤한 불닭발이 당긴다고 하지 않나. 하여간 시시때때로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수십 년을 한결같이 '먹고 싶은 거 없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 없다'라고 대답하는 엄마가 정말 수수께끼다.
갓 중학생이 된 조카는 선호도가 너무 분명하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조카는 어지간해서는 돼지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고, 소고기 중에서도 한우, 한우 중에서도 꽃등심만 밝힌다. 같은 소고기여도 양념된 고기는 잘 안 먹고 오직 구워 먹는 것만 좋아한다. 할머니가 사 온 고기를 먹으면서 "왜 아빠가 사 오는 고기는 이런 맛이 안 나지?"라고 해서 어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우와 수입 고기의 차이를 기가 막히게 아는 것이다.
큰 조카는 김치찌개를 최고로 좋아한다. 세상의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할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와 만둣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수한 입맛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까탈스럽다. 김은 입천장에 들러붙어서, 미역은 미끌거리는 식감이 이상해서, 생선은 가시 발라내는 것이 싫어서 안 먹는다.
아이들도 이렇게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한데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싫어하는 음식도 없단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도 메뉴는 늘 우리 보고 정하라고 한다. 다른 집 엄마들도 그럴까. 오랜 생각 끝에 내가 찾은 해답은 이렇다.
'엄마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단지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다행인 것은 정말 내키지 않는 것을 먹자고 할 때에는 소극적이나 의사 표시를 하신다는 것이다. '싫다'가 아니고 '그거 좀 별로지 않니?'라는 정도로 말이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음식을 해 드렸다
성탄절 주일을 너무 밍숭하게 보내기가 뭐해서 '월남쌈' 재료를 사 들고 엄마 집으로 갔다. 요즘 통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엄마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며칠 전 큰언니가 점심 사 드리러 왔다가 '사람 많은 식당에 안 간다'라고 한 일도 있고 해서 집에서 해 드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오롯이 엄마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엄마 월남쌈 좋아해?"
"있으면 먹지. 뭐."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
"그냥 먹어."
엄마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곱게 야채를 썰어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당근도 가늘게 채 썰어 살짝 볶아 싸 먹으니까 좋더라."
TV를 보다가 엄마가 슬쩍 훈수를 둔다. 접시에 수북하게 담긴 야채를 보더니, "어휴, 뭐가 그렇게 많아? 그걸 언제 다 먹니?"라면서 또 훈수를 둔다. 그 바람에 엄마가 넣으라고 했던 당근을 깜빡했다.
상을 차려놓고 보니 처음 한 것 치고는 그런대로 근사해 보였다. 성탄 인사도 건네고 와인으로 건배도 했다. 동생과 내가 와인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는 반짱(라이스페이퍼)을 물에 적시는 동시에 젓가락으로 야채를 집고 있었다.
"엄마 잠깐만, 사진 몇 장만 찍을게."
"엄만 이런 거 정말 싫어. 음식 다 차려놓고 사진 찍는다고 기다리게 하는 거. 음식도 다 식는데."
예전 같지 않게 싫은 소리를 하신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찡그린 얼굴로 사진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엄마는 영락없이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해서 골이 난 열 살 먹은 어린애였다.
서둘러 3, 4장의 인증숏을 찍고 휴대폰을 내려놓는 사이, 엄마는 어느새 쌈을 싸서 드시기 시작하더니 식사 내내 거의 말도 안 하고 잡수시기만 했다. '허겁지겁'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그런 엄마를 보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맛있으면 한번 해 달라고 하지 그랬어, 엄마?"
"언제는 이렇게 안 먹니? 엄마는 뭐든지 있으면 맛있게 먹어."
'아닌데... 엄마가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거는 맛있다는 거잖아.'
엄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맛이 있네, 없네' 같은 군소리를 일절 안 하신다. 우리가 맛없다고 투덜거리면 '그냥 잠자코 먹어' 하면서 할당된 양을 다 드신다. 한참 후에야 '그때 그 음식은 정말 맛없었어', '그게 뭔 맛이니?', '니들은 그게 맛있었니?'라고 해서 우리를 당황시키기는 하지만.
그래서 엄마가 특별히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이제는 엄마가 입에 맞는 음식은 '말도 안 하고, 허겁지겁' 드신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것도 어느 특정 음식을 늘 그렇게 드시는 것이 아니라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물론 엄마 말대로 진짜로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을 수도 있다. 엄마 세대엔 먹을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했던 시절이니까.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으니까.
"당근도 살짝 볶아 놓으면 달짝지근한 것이 아주 맛있는데…"
끝까지 당근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면서도 야채가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젓가락을 놓지 않으셨다. 접시에 야채 부스러기만 남게 되자 "엄마 이제 그만 먹는다"라며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엄마가 잘 드시니까 너무 좋았다.
"엄마 맛있었어?"
"그럼~. 엄마 먹으라고 해 준 건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또 코 끝이 시큰해졌다. '뭐야 엄마, 겨우 월남쌈 먹고 무슨 고맙다는 말까지 해…. 미안하게.'
"엄마는 누가 해 준 거면 다 맛있어."
이따금씩 엄마가 하는 말이다. 이제 음식 끓여 드시는 것이 힘드시니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 먹으라고 해 준 건데 맛있지"라는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다.
여태 엄마 먹으라고 뭘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엄마를 먼저 챙겨본 기억도 별로 없다. 늘 엄마는 뒷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 아버지가 잘 잡수시는 것들을 사 가지고 갔다.
그런 것들이 다 서운했을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이거 엄마 드리려고 사 온 거야', '엄마 잡수시라고 사 왔어', '엄마 이거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많이 해야겠다.
"엄마 담에 월남쌈 또 해줄게~."
"그래~."
해맑게 대답하는 엄마가 왜 이렇게 짠한 건지… 이제야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것은 '엄마 먹으라고 누가 해준 음식'이다.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