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내 엄마] 딸은 불안하기만 한데... 코로나19 극복 위한 행렬
지난 3월 말쯤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1939년생 김** 이 75세 이상으로 백신 접종 대상자이니 주민센터에 방문해 ‘접종 동의서’를 작성해 달라는 문자였다. 엄마는 바로 다음날 ‘동의서’를 제출하고 접종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접종 시작일인 4월 1일이 지나도 주민센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문의 전화를 하니 ‘우리 시는 조금 늦어지고 있다며 아마도 15일 이후부터 접종이 시작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15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또 전화를 걸었다. ‘백신 수급 사정이 좋지 않아 조금 지연되고 있으며 날짜가 결정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언론매체를 통해 백신 수급과 접종 상황이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차이가 생각보다 커서 약간 의아했다.
며칠 후 엄마의 ‘백신 접종 예정일은 4월 20일’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엄마의 생신 기념 여행일 전 날이었다. 4인 이상 여행 불가라는 방역지침에 따라 큰언니 내외와 조촐하게 다녀오기로 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백신 접종 이튿날 여행은 무리일 듯하여 여행일을 2주 후로 연기했다. 그런데 접종일이 또 연기되었다. 몇 번의 연기를 통해 엄마의 백신 접종일은 75세 이상 고령층 접종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인 5월 1일로 확정되었다.
백신 접종 일정이 늦어지고 연기되는 데에 대해 불평하거나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엄마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시중에 떠도는 가짜 뉴스들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예민하게 굴었다. 더욱이 엄마의 백신 접종일이 확정되고 나니 ‘백신 부작용’ 뉴스들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포털과 TV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백신 부작용’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 않는가. 백신과 사망과의 인과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 겁나지 않아?”
“뭐가?” 오히려 엄마는 덤덤했다.
“백신 맞고 잘못될 수도 있다잖아.”
“그거 다 호들갑이야. 그 사람이 백신 때문에 죽었겠니? 그렇게 될 운명이니까 그렇게 된 거지. 다 그 사람 운이다.”
“혹시 엄마도 백신 맞고 안 좋으면 어떡해?”
“그게 엄마의 명인 거지.”
“걱정하지 마라. 그동안 엄마 주사 맞고 이상한 적 있었냐? 엄마 주사 잘 맞잖아.”
내가 엄마를 안심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거꾸로 엄마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접종하는 날 엄마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주사 놓기 편하라고 반팔 티 입고 왔다.”
“오늘 날도 추운데 긴팔 입지…”
백신 접종하는 날 비도 오고 쌀쌀했는데도 엄마는 지침서에 적힌 대로 반팔티를 입고 온 것이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늘 그랬다. ‘위’에서 하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 ‘우직함’이 미련 맞고 몽매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센터는 의외로 한산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의아했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으니 ‘오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정신이 없었다’며 ‘백신이 부족하다는 뉴스에 노인분들이 제 시간보다 일찍 방문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열체크와 QR 인증 후 센터에 입장 후 접수를 마치고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니 잠시 후 엄마 이름이 호출되고 예진실로 안내되었다. 예진실에서 기저질환 유무, 복용하는 약 등을 점검한 후 접종실로 이동해 옷을 걷으니 숙련된 간호사가 순식간에 엄마 팔에 백신을 접종했다. 주사기를 꽂았다가 빼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자원봉사자가 대기 시간을 적은 포스트잇을 팔에 붙여주며 15분 동안 대기실에서 안정을 취한 후 귀가하라고 일러주었다. 엄마의 백신 접종은 이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백신 접종 전에 긴장하고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였다.
대기실에는 먼저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풍경이 버스나 기차 대합실을 연상시켰다. 우두커니 앉아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 듯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풍경… 특이점은 승객들이 모두 7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라는 것이었다.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었다. 21세기 인류가 처해있는 코로나 19 시대의 새로운 풍경 중의 하나이다. 백신을 맞으면 인류는 코로나 19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상황을 인내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백신 접종도 그런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나와 공동체를 위한. 백신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와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행렬에 동참하는 어르신들을 보니 울컥했다. 그들 중에는 팔순의 내 엄마도 있었다.
# 접종 후
“엄마 어때? 아파? 욱신대지 않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두통은 없어?”
“응. 없어.”
다행히 엄마는 괜찮았다. 열도 나지 않았고 근육통이나 두통도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접종 당일 밤에 선제적으로 타이레놀을 복용하셨다고 한다. 접종 후 일주일 후 미루었던 꽃구경도 무사히 다녀오셨다. 며칠 후면 2차 접종일이다.
“엄마, 2차 접종은 더 아프대.”
“그래?” 하고 끝이다.
“엄마 2차 접종까지 하면 훨씬 안심이다. 그지?”
“그래도 마스크는 계속 써야 돼.”
엄마라고 왜 시중에 떠도는 갖은 얘기들을 듣지 못하겠는가. 엄마라고 왜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을까. 엄마라고 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싶지 않을까. 많은 시민들이 노래방, 교회 집단 감염 뉴스와 백신에 대한 가짜 뉴스에 분노하는 이유일 것이다.
‘엄마 장해. 그리고 고마워. 주사도 잘 맞아주고.’
[202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