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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Sep 20. 2023

자존감과 기분의 비례관계

이번생이 마지막이야


평소에 일을 할 때면 (아무래도 작은 회사다 보니까) 업무 과정이나 결과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럴 때 마다 칭찬 받고 싶다는 마음이 한쪽 구석에서 피어오른다. 이 정도 했으면 사람들이 잘 했다고 하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보이면, 역시나 나를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긍정적인 피드백을 내어 준다.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그러니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그 마음 자체가 자존감과 직결된다면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인 것 같다.


나는 줄곧 자존감이 낮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엄마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한 이유가 있었던 거 같다. 나는 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더 큰 거다.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사람들을 피해 다닐 때가 많은데, 이전에 한번 말했듯이,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관계에서 회피형일 때가 많다. 누가 쓴소리를 하면 기분 나빠하는 건 잠깐이고 그 사건을 그냥 깔끔하게 머리 뒤편으로 보내버린다. 블랙홀에 나쁜 기억들을 쏟아 보내버리는 듯이 말이다.


물론 자존감이 바닥으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최근 몇 주 동안 또 나는 지옥을 걷다가 돌아왔다. 인간과의 관계 때문에 혼자 힘들어 했고, 주변의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힘든 티를 팍팍 내고 다녔으니, 이마 위에 '나 힘들어요'를 써놓고 다니는 것 마냥 표정을 지었을 거다.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때는 항상 드는 생각인데, 뭐가 그렇게 나를 힘들게 만드냐는 거다. 바로 생각인 거 같다. 평소에 머릿속에 생각을 잘 하지 않고 사는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는 거는 심각해졌다. 그렇게 나를 모래주머니 채운 채로 물 속으로 빠트리는 기분이 든다. 글을 써도 부정적인 글만 써지고,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도 계속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그리고 모든 원인이 나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면 또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힘 없이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마다 나를 물 위로 다시 솟아오르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 때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른데 이번에는 드라마와 책과 노래였다. 영상 없이는 잘 못사는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씩 물로 떠오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아저씨'를 봤다고 썼던 글 이후에 나는 또 악귀에 빠져서 한참을 봤다. 드라마 보는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내 취미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아무튼 컨디션이 저조할 때 하필 악귀를 틀었는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아파트 주차장 벽에 묻은 거뭇거뭇한 기름때 (바퀴에 찍힌 걸로 추정된다)를 보고 악귀의 소굴이라고 생각하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나한테 쌍욕을 날리던 아저씨를 보고 악귀에 씌였다고 생각하는 등 보면서 악귀와 연관된 상상을 내내 하곤 했다. 악귀를 없애는 스토리였는데, 악귀를 없앰과 동시에 나도 조금씩 맑은 영혼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몸도 많이 아팠었는데, 그게 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아플 때는 정말 누가 내 글을 읽어주고 위로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막 썼다면 지금은 정말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솔직 담백하게. 내 마음대로. 주변 사람들이 정말 밉고 싫고 짜증나던 그런 순간은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도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밉고, 밉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일을 하기 싫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있을 때 책 한권을 접했다.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보고 마음이 조금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에세이 작가(책 내용 읽으면 회사원인 거 같기도 하지만)로 쓰는 글을 읽고 있으니까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싶은 그런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좋은 거 보면 공유하는 병이 있는 나는 글귀를 긁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조금씩 물 위로 떠오르려고 모래주머니를 떼어냈고, 깜깜하던 물 속이 조금씩 맑은 바다색을 띄는 거 같았다.


운동을 한답시고 운동 기구도 사고 했는데, 그것들 말고 그냥 맨발걷기를 하고 있다. 오늘 하면 일주일째인가. 꾸준히 하는 것들 리스트에 오르면 좋겠다. 맨발걷기를 하면 처음에는 발이 되게 따끔따끔하지만 보드라운 흙을 밟으면 발가락이 절로 꼬물꼬물대고, 빗물에 젖은 흙 위에 서 있으면 구름을 밟는 느낌이 든다. 진흙 놀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맨발로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하루 40분의 행복이랄까. 점점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겨서 걷고 있다. 주로 걸으면서 하는 일은 오디오북 듣기와, 노래 듣기인데, 오디오북을 들으면 생각을 잠시 접어둘 수 있어서 좋고, 노래듣기를 하면 생각의 꽃이 피어서 좋다.


이번 기분 전환 요소는 드라마, 책, 노래라고 하지만 그 중 최고봉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에서도 에세이를 읽었다고 했는데 또 한번 힘차게 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발장구를 쳤다. 맨발로 흙길을 걸으면서 '전천당'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전천당은 운동과 아예 관련이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나와서 말 그대로 재미있다. 명상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듣는 비투비 노래는 이제 가사를 다 외웠기 때문에 다른 걸 하면서 들어도 재즈 음악을 듣는 것보다 귀에 착착 감긴다. 가사에 귀 기울이려 할 때는 가사를 듣고, 생각을 하고 싶을 때는 배경음악으로 듣고, 자유자재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내가 리스트업한) 아침을 깨우는 비투비 노래 3곡으로 힘을 얻으면서 나만의 명상을 하고 있다.


이렇듯 그냥 사는 게 이런가보다~ 하면서 이번 우울한 시기도 지나쳐 갔다. 기분이 오락가락하지 않는게 제일 좋은데, 감정 기복이 심한 내가 감정 기복 극복하는 과정을 글로 남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기복이 사라져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써본다. 사실 처음 글을 쓰려고 했던 계기는 그냥 칭찬과 자존감 이야기로 끝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고속도로를 거꾸로 탄 듯이 다른 곳으로 휘익 하고 가버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솔직한 이야기를 전한 거 같아서 마음이 후련하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괜찮은 글을 쓴 거 같아서. 이 또한 높은 자존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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