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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18. 2022

김연정 소설-서랍 속 수수밭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서랍이 있다.

김연정 작가의 새 소설집이 나왔다.

첫 소설집 '선글라스를 벗으세요'와 두 번째 소설집 '겨울 정원', 그리고 '오후의 뒤뜰'에 이어 네 번째 소설집이다.

소설 습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사를 권한다면 김연정 소설을 권해왔다. 소설의 필수요소인 구성력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만지고 대해온 작가이기에 그만큼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흔히 소설은 허구라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개인적인 면을 짐작하는 재미가 있는 것처럼 김연정 소설 '서랍 속 수수밭'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허명애가 출판사 직원으로, 시골 중고등학교의 국어교사로 근무한 것을 보고 짐작해 본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온 전후세대로써 공감되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이제는 그때의 감성이 다 메마르고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아 무척 고맙게 읽었다.


-책 속으로-

전쟁이 끝난 5~60년대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엄살이 있었을 정도로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를 많이 할 무렵, 허명애의 아버지 허찬수 가족도 서울로 올라온다. 평온하게 살 수 있었던 지방 유지 자리를 내놓고 오로지 자식들 공부를 위해 올라온 허명애 아버지처럼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허명애 가족의 서울 진입 분투기가 시작된 것이다.

'서랍 속 수수밭'은 연작 소설로 허명애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보여준다. 

'나뭇잎 배'에서 장희성이라는 소년을 통해 첫사랑 비슷한 연정도 가져보고,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문순애 선생님을 통해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허명애는 성장하면서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 차신혜와의 우정을 비롯해 일본 혼혈 친구 김민숙 등을 거치며 성장한다. 

작품 속 허명애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이후로도 많은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어서 흥미롭게 읽힌다. 여기에 다양한 음악도 함께 흐르면서 가난했지만 정신은 풍요로운 시대였다는 착각도 하게 해 준다. 내 개인적으론 'When a child is born'을 흥얼거리며 추억에 젖어보았다. 영화 '나자리노' 삽입곡이었다는 부연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서랍 속 수수밭'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토리에 따라 삽입이 된 것임에도 인상 깊게 본 것이 '김평소'라는 인물이다. 을지로에서 가게를 하느라 바쁜 김평소나 아이들 때문에 귀가시간이 바쁜 주부 허명애나 시조창 강의에서 만난 학우 사이지만 아주 잠깐 덕수궁에 들러 시조창을 하기로 한다. 인적이 드문 석조전 뒤뜰에서 소리를 해보지만 생각만큼 시원치 않자, 멋쩍어진 김평소는 태평소를 꺼내 연주한다. 지나가던 관객을 불러들일 만큼 강렬한 태평소 연주는 김평소의 가정사와 더불어 영화 서편제가 생각날 정도로 강렬한 영상으로 남았다. TV에서 태평소를 연주하는 김평소를 보며 그의 꿈이 이루어진 처럼 허명애도 소설가가 되어 꿈을 이룬다.    

이처럼 '서랍 속 수수밭'은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각각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저마다의 사연들이 허명애를 통해 그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자기만의 서랍이 있겠지만 점점 잊혀 가는 것을 느낀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오늘 밤 내 마음속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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