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청계산 입구에서 글지회 회원들과 함께 김승옥 선생님을 만났다.
작년 타샤의 책방 행사 때 뵌 후 꽤 오랜만이다.
선생님은 요즘 순천에 있는 김승옥 문학관에서 지내시는데 지난밤에 기차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우리가 선생님 건강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선생님은 전보다 더 기력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늘 지니고 다니는 메모지를 이용해 필담을 나누는데, 전보다 훨씬 소통이 잘 될 정도로 표현력도 좋아지셔서 반가웠다.
작년 남한산성에서 찍은 이 사진을 선생님이 보여주기도 하셨다
김승옥 선생님과 우리 글지회원들의 인연은 강남의 한 문화센터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소설의 대가 김승옥 선생님이 소설 강의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엔 드라마 극본에 열중하고 있어 나는 한참 뒤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다른 소설가 지망생들처럼 막연히 동경했던 김승옥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되는 영광은 그러나 오래가질 못했다. 이문구 선생님 장례식장에 가시던 중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선생님은 소설보다는 영화 쪽으로 더 오랜 일을 하셔서인지 우리가 유일하게 소설가 제자들이 되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만 기억하시는지 우리 글지회원들을 소개할 때면 나를 희곡작가라고 말씀하신다. 하긴 선생님이 쓰러지신 후 소설로 등단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건강했을 때보다 쓰러지신 이후의 시간을 더 함께 해왔다. 조금 더 일찍 강의를 들은 다른 회원들이 더 많은 추억을 얘기할 때면 소외감마저 느낄 정도로 선생님과의 짧은 인연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엊그제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필담을 나누면서 그런 마음은 이미 부질없음을 느꼈다. 우리 글지회원들과의 인연은 계속 진행형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것이다.
선생님이 쓰러진 후 여러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과 함께 행사 때 뵈었던 유명인 친구들의 부음 소식을 기사로 접하면서 선생님의 건강을 확인하는 아이러니라니.
게다가 지난겨울엔 우리 글지회원 김영애 작가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있었다. 너무나 황망해 언급조차 하기 싫은 슬픈 소식이지만 산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 만나 소설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인연은 언제까지 일까?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는지 인생은 정말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