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이것이 재즈닭

첫 자영업

by 루달


엄마가 팔려고 한 분식점을

내가 하겠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김밥도 못 싸는 인간이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인생 루트를 탔다.

문제는 금방 드러났다. 나는 밥을 못 했다.

정확히는, 밥알이 손에 붙는 순간

인생도 같이 붙어버리는 타입이었다.

김밥은커녕, 단무지 정렬만 봐도 인격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분식집은 포기했다.

대신 업종을 바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닭볶음탕!

천장에는 긴 파란색 형광등으로 달았다.
형광등이 아니라 거의 수족관 조명이었다.


불을 켜면 가게 전체가
살짝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파래졌다.
사람 얼굴도, 테이블도, 소주병도,
닭볶음탕 김까지 전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재즈는 뉴욕에서 흘러나오는데,
조명은 속초 바닷속이었다.


밖에서 보면 더 이상했다.
유리문 너머로 파란 불빛이 새어 나오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꼭 한 번씩 속도를 줄였다.
“저 집 뭐야…?”
닭볶음탕집인지, 술집인지,
아니면 잠수함인지.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부가세도 구청도 암것도 몰랐다.


집에 있던 파나소닉 미니오디오를 들고 와서

하루 종일 재즈만 틀어놨다.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 빌리 홀리데이. 이소라..

닭은 한국에서 볶고,
음악은 맨해튼에서 튀겼다.


메뉴는 단출했다. 색상지를 사다가 써 붙였다.

닭볶음탕 하나.

닭똥집 볶음 (고추장 / 안 고추장).

오돌뼈.

황도.

끝.

카페도 아니고, 분식집도 아니고, 술집도 아니고.

그냥 내 취향 전문점이었다.


심야영업 제한이 아직 남아 있던 시절.

가게는 12평.

주방은 숨 쉬기 힘들 만큼 작았고,

홀에는 테이블이 일곱 개.

그중 두 개는 붙여서 단체석으로 만들어놨다.

이유는 없다. 기준이 나였다.


밤 12시가 되면 앞문을 닫고,

간판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리고 주방 쪽 뒷문을 열었다.

손님들은 정문이 아니라

인생의 비상구로 입장했다.

장사라기보다는
이상한 지하 재즈 소굴이 됐다.


닭볶음탕 김이 올라오면

형광등 불빛에 반사돼서

영화 아바타 나비족이었다


손님들은 재즈를 들으며

와인대신 소주 2천 원에마셨고,

나는 그 옆에서 똥집을 '뚜비드 밥'볶았다.

난 밥은 못해도 뚜비두 밥은 했다.

가게의 정체성은 끝내 규정되지 않았다.


이것이 재즈닭!


낮에는 레슨을 끝내고

신당역으로 가서 닭이랑 똥집, 오도독뼈를 사 왔다.

냉장고에 넣고, 파, 마늘, 고춧가루를 미리 준비했다.


요리는 이상하게도 손맛이었다.

레시피는 없고, 계량도 없고,끝에서

“어, 그만” 하면 끝이었다.

김밥은 못 쌌지만,

닭볶음탕은 잘 끓였다.

똥집도 양파만 넣고 볶아서 소금, 참기름 주면 된다.

인생이 그런다.

주식도 못 하고, 쓸모없는 데서 재능이 터진다.

하필 그게 닭.


간판도 그대로 ‘○○분식 ’이었다.

손님은 첫날부터 몰렸다.

홍보도 안 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내 친구들이었다.

무용, 음악, 디자인하는 애들. 자칭 심은하..

세련 지고 예뻤다.계산은 안했다.


1층 가게라 지나가던 남자들이 문을 열면

우르르 들어왔다.

가게의 간판은 사실 친구들이었다.


장사 초기에 '아이러브스쿨'로 모인

초등학교 동창회가 우리 가게에서 열렸다.

애들은 이미 사회인이었고,

막 돈 쓰는 재미 붙일 때였다.

“야 너 그대로네.”

“넌 왜 그렇게 됐냐.”

직장 어디야?”


나는 주방에서 오돌뼈를 오독오독 볶고,

홀에서는 초등학생 시절 애들이 소주를 마셨다.

가게는 점점 식당도 아니고,

타임머신이 됐다.


한 달 순수입은 600만 원이었다.

장사 끝나면 만 원짜리로 앞치마가 터지려 했다.

'건물을 사버려?'



그러다 사건이 났다.

남자 손님 둘이서

내 친구 자칭 심은하 한 명을 두고, 시비가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다.

그런데 남자애들 눈빛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 좁은 가게에서 싸우기 시작했고,

테이블이 넘어지고, 그릇이 깨지고, 바닥에 피가 묻었다.

신고했다.

그날, 가게는 엉망이 됐다.


무서웠다.

다음 날 바로 가게를 내놨다. 근처에도 안 갔다.

장사한 지 3개월 만에 접었다.

중요한 건 권리금이 천만 원 올랐다.

내가 투자한 건 파란 형광등, 색상지, 재즈CD..

엄마에게 식당설거지 하지 말라고 돈을 다 드렸다.


김밥은 못 쌌고,

닭도리탕은 잘 끓였고,

사람은 좋아했지만,

사람이 무서운 순간도 있다는 걸 배웠다.

그게 내 첫 장사였다.

그래도 닭들은 끝까지 나보다 장사를 잘했다.


며칠 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선 들어온 거 있으니까, 시집이나 가라 ”

나는 가게를 접고,

인생 2호점을 열었다.

장소는 분식집도 아니고, 닭도리탕집도 아니고,

소개팅 테이블이었다.




아빠랑 마지막 찍은 사진. 이때부터 난 노란 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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