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은 충분했다

by 루달


​벌써 25년 전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인데도 완벽을 고집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시집을 가야 할 이유도 알지 못했다.


삶은 개인의 욕망보다 가족에 대한 책무로 유지되는 구조였다.
이름 없는 가장으로 살며 집안의 몫을 먼저 감당했다.
정신적 만족은 그 뒤에 남는 여분이면 충분했다.

혼자 살기로 한 것은 필연에 의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교회에서 피아노를 칠 때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한 공간 안에 각자의 희로애락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소리는 연주가 아니라 정서적 지지이길 바랐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평생 '종교인'의 형식과 '신앙인'의 본질 그 경계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삶이면 족하며 살아갔는데...




"루달아, 선 들어왔으니까 시집이나 가!”
엄마는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주변은 이미 연애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
서른을 넘기면 노처녀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평소대로 검정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리고 손에는 부채를 들었다. 열이 많았다.

나의 인생은 늘 더웠고, 그때도 더웠다.


첫 번째는 잠실역 근처 커피숍에 만났다.

그 남자는 공무원이었고, 선한 세포가 전해졌다.

마주 앉자마자 얼굴 근육하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둘 다 커피잔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컵은 출렁이고,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손수건을 곱게 접어 이마를 닦았고, 나는 부채로 얼굴을 부쳤다.



그를 힐끔힐끔 관찰했다. 여드름 자국 없이 피부 깨끗했고 콧구멍 잔털도 없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근데 신발 쪽을 보는데 양말이 회색이었다.

친오빠가 회색 양말을 자주 신어서 그냥 싫었다.


남자는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루달 씨…”

그 글자로 내 갈비뼈 어딘가에 췌장이 간지러웠다.

‘씨’가 붙는 걸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입 밖에 내면 내가 먼저 기절할 것 같아서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그가 또 말했다.

“영화 보실래요?”

거절하는 방법을 몰랐고 영화관에 따라갔다.

영화는 쉬리였다.

극장 안에서도 그의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루달 씨 팝콘 드실래요?”

루달 씨 음료수 드실래요?”

"루달 씨 부채질 해드릴까요?"


난 익숙하지가 않아서 속으로

'그냥 알아서 사와 짜샤!'

배려인 건 알겠는데, 자꾸 그러니까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간섭받는 느낌이었고

설명은 못 하겠는데 싫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남자는 내가 마음에 든다고.

그리고 그다음에 택배가 왔다.

상자를 열었더니 신형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고맙다보다 먼저, 목에 뭐가 걸린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 나 만나면 불행해질 것 같은데.’

나는 핸드폰을 돌려주고 끝냈다.

엄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눈을 흘겨 쳐다봤다.

“착한 사람인데! 공무원인데! 네가 뭐가 잘났다고 퇴짜야!”

“그 사람 나 만나면 제명에 못 살아!”


주 뒤에 두 번째 선이 들어왔다.

“선 들어왔어. 이번엔 은행원이래.”

또 잠실. 또 커피. 그리고 또 영화관.

또 쉬리.


세 번째 남자는 회사원

또 잠실. 커피. 그리고 영화관.

또 쉬리...

이 정도면 꿈속에도 물고기가 간섭할 정도였다.

그냥 푹 쉬고 싶었다.



1999년 나는 쉬리를 세 번 봤다.

연애는 못 했지만 국가 안보엔 꽤 성실했다.


4번째는 말이 너무 많은 남자였다.

커피가 반도 안 줄었는데 말이 열 잔을 마신 느낌이었다.

본인 얘기, 회사 얘기, 인생철학, 결혼관, 부동산, 군대, 학창 시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귀는 먼저 퇴근했다.

헤어졌다.

5번째는 자영업자였는데 옷이 전부 하얀색이었다.

위도 하얗고 아래도 하얀색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흰색 콘셉트였다.

커피 마시고 헤어졌다.


6번째는 중국집에서 접선이었다.

상대는 작은아버지 친구였다.

나이 차이 열다섯.

재정적으로 약간 풍족하다고 했지만

요리 풀코스보다 먼저 세대 차이가 올라왔다.

그분도 내가 맘에 안 들었지 모른다. 헤어졌다.

7번째는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상대는 회사원이었고 말투가 자신감에 절어 있었다.

젓가락을 들 때도 거만한 향기가 찌를듯했다.

물 마실 때도 투명한 액체가 삿대질하듯 흔들거렸다.

'제가요' 할 때마다 우주가 본인위주로 운행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밥을 먹다가 마음이 먼저 내려앉았다.

헤어졌다.


8번째 드디어 또래가 나왔다.

게다가 꽃다발을 들고 나왔다.

꽃다발이라는 물건은 사람을 잠깐 정상으로 만든다.

나도 그 순간만큼은 한쪽 머리를 새초롱 넘기는

여자였다.

장소는 잠실 TGI.

그 시절 TGI는 큰 레스토랑이었다.

어깨 펴고 들어가야 할 것 같고, “오늘은 인생이 국제화된다” 같은 느낌.

나는 그날 처음 먹는 것들이 많았다.

수프도 그렇고, 빵도 그렇고, 뭔가 소스에 절여진 고기들도 그렇고.

문제는 내 배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거다.

식사 끝나고 석촌호수를 한 바퀴 걷자고 했다.

나는 괜찮은 척하며 걸었다.

근데 배가…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인생이 끝장나는 속도로 내려앉았다.

“저… 화장실 좀…”



나는 공중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진짜 절망을 만났다.

휴지가 없었다.

그 순간 선택지가 없었다.

살색 팬티스타킹을 벗어 닦았다.

내 것이었지만, 급하게 이별을 치르고 나왔다.


남자는 몰랐을 것이다.

아마 냄새가 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화를 했는데

자꾸 동문서답이 튀어나왔다.

내 머리는 이미 호수에 없었고, 코만 킁킁거렸다.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낯선 남자들과 차를 마셨고, 세 번은 쉬리를 봤고,

한 번은 스타킹을 버렸다.

독신으로 살아야겠다는 당연한 의지 속에

아니, 정확히 체념이 나를 감싸고 살아가다가

며칠 뒤 친구가 다가왔다.


“루달아, IT 하는 오빠 있는데…
네 사진 보여줬더니 난리 났어.
첫눈에 푹 빠졌다면서 당장 소개해 달라고 조른다”



나는 믿지 않았다.

소개팅 열 번을 하고 나면 믿음은 사라지고, 의심만 남고

쉬리 PTSD만 감싼다.

근데…

내 꼬락서니를 보고도 사진 한 장에 난리 난 남자는

운명의 반쪽 퍼즐로 끼워져 버리는데...



다음 화에 납치사건 전개가 흘러갑니다.


참! 걱정해 주신 작가님들 덕분에 빨리 치료되었고 벌떡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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